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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Nov 04. 2023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울리는 문장을 써라 9

무언가를 오래 관찰하는 것은 당신을 성숙하게 하고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빈센트 반 고흐

정희진 작가는 "독서는 내 몸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글을 시작하고 글을 마치는 동안 몸 전체가 통과하는 것이고, 통과하는 동안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구상이 완벽히 끝나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글을 쓰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가게 되고 또 처음과 다른 결론에 다다를 때도 많다.

이 경우는 처음 시작할 때 잘못된 구상을 한 것일까? 아니면 신이라도 내린 것일까?

아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에는 시간이 존재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르고 나의 사고도 흐른다. 글을 시작할 때의 나와 글을 마칠 때의 나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돼지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순전히 돼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우리가 거의 매일 먹다시피 하는 삼겹살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그 삼겹살이 되는 돼지는 도대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돼지에 관련한 책, 영화 등을 찾아서 한 편씩 글을 썼고, 그 글을 쓰다 보니 우리나라에 도축되기 직전 구한 돼지를 키우는 생츄어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생츄어리에 정기 기부를 하게 되었다.

나는 돼지에 관한 글을 시작할 때 '결론'을 정해놓지 않았다. 고기 얘기를 하면 결론이 비건으로 가는 다소 뻔한 결론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글을 쓰는 동안 나를 어떤 결론으로 데려다 줄 지 궁금했다. 만약 내가 '고기를 먹지 말고 비건이 되어야 한다'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글을 썼다면 생츄어리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 충실히 쫓아가다 보니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있다는 생츄어리를 알게 되었고 새벽이(그곳에서 생활하는 돼지의 이름) 존재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단편 소설 <레이먼드 카버>를 쓰고 있다. 인물 설정과 대략의 스토리는 정해놨지만 결말은 정하지 않았다. 혹자는 어찌 구상 없이 쓰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야기는 살아 있고, 이야기 자체는 흘러가고 또 나도 쓰는 동안 변한다고 생각했기에 결말을 과정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결말을 쓰게 되면 다시 시작 부분을 수정할지도 모르지만, 글은 유기체고 언제나 변화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아래와 같이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과거를 반영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흘러가고 있다. 

이런 시간의 인식 차이는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과거의 일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거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며 현재를 쓰더라도 미래의 기대가 담겨있다. 그러니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르고 글을 마친 후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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