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
‘완벽한 순간은 절대 오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다만, 한계에 부딪혔을 때 능동적으로 맞서지 않고 수동적으로 버티거나 상황을 회피하면 이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착각하면 어려운 상황에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운이 좋지 않았다며 세상 탓을 하게된다. 불완전함을 일단 수용하고 그것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숙할 기회를 얻지만 완벽주의 신화에 빠져있으면 경험을 통해 배우기가 어렵다. 게다가 완벽주의자가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일 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을 쉽게 합리화하기도 한다. 자신의 기준에서 이상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세상에는 '불가능'도 있고 '적당히'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정 심리학에서는 앞서 여대생 K처럼 항상 최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맥시마이저maximizer’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기 측정의 기준이 높은 데다가 매사에 그 기준을 깐깐하게 적용하다 보니 항상 자신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앞서 말한 ‘불가능’과 ‘적당히’를 ‘포기’나 ‘타협’으로 치부하고 여기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완벽을 목표로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성취하기 어렵고, 따라서 완벽주의자는 필연적으로 성취감보다는 좌절감을 자주 느낄수 밖에 없다. 감정도 행동과 마찬가지로 습관이 패턴을 만든다. 그래서 좌절감을 느끼는 뇌가 자주 자극을 받으면 그 부위가 예민해지고 쉽게 좌절감을 느끼는 뇌로 바뀌어버린다. 이른바 ‘습관적 좌절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도전적인 과제도 완벽주의자에게는 극기훈련처럼 느껴진다. 완벽주의자는 자신을 끝까지 몰아세우며 어떻게든 해 내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
절대로 포기해선 안 돼!
현실과 타협할 순 없어!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유롭게 성공하는 사람들과 매 순간이 고통스러운 완벽주의자의 동기부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L의 별명은 칸트다. 늘 같은 시각에 산책했다던 칸트가 환생이라도 한 듯,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다. 아주 가끔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에는 예외지만 평소에는 점심을 거르거나 주말에 출근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 동기들보다 진급도 빠르고 회사생활도 꽤 즐거워 보인다. 그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조금 망설이기는 했지만 과감히 이직한 것을 보면 회사에 특별한 인맥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그에게 비결을 물으면 늘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L의 성공비결은 그가 말한 대로 항상 '최선을 다한 것'에 있었다. 그는 어떤 일도 쉬엄쉬엄하는 법이 없지만 일단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멈춘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는 비축해두었다가 다음번에 다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때 쓴다. 스스로 ‘이것이 최선인가?’를 묻고 그렇다고 생각되면 최선을 다한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을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완벽주의자와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이 그의 성공비결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한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면 결국은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자신을 소진하게 된다. 이것이 마지막에 다시 이야기 나눌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마감직전까지 일거리를 붙들고 있거나 크게 진전이 없는 수정을 반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충전이 덜 된 전동 드라이버를 무리해서 사용하면 계속 시원찮게 돌아가다가 결국은 작은 나사못 하나 제대로 박지 못하고 멈춰버린다. 충전만 잘 해 주었어도 한참 동안 잘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아예 못쓰게 되어버린다. 이렇듯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끝도 없는 ‘완벽’을 목표로 소모전을 벌이게 된다. 끝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는 것만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자신을 공격하며 쥐어짜는 대신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친절한 명언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동기부여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손실을 피하려는 '회피 동기'이고 다른 한 가지는 좋은 것을 얻기위한 '접근 동기'이다. 만일 단기간에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절실한 각오에서 나오는 위기감이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일을 끝마치지 못했을 때 닥칠 어려움을 떠올려보면 정신이 번뜩 드는 것이다. 그러나 ‘회피동기’에 따라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행복하지 않다. 성취보다는 불안에 집중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고방식은 의식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익숙한 방향대로 흘러간다. 무엇을 성취하건 습관적으로 또 다른 두려움을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해 온 사람은 불안한 마음때문에 닥치는대로 자신을 소진시키며 ‘최선’을 남용한다. 이것이 ‘회피 동기’의 어두운 면이다.
'성공'은 단기적인 성과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접근 동기’가 강하다. 이들의 관심은 당면한 프로젝트의 성패 보다는 최종 목적인 긍정적인 결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회피동기가 버티는 힘을 지탱한다면 접근 동기는 이겨내는 힘을 보태준다.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은 매순간 최종 목적지를 상기시키는 ‘접근 동기’에서 나온다. 닥쳐올 불안을 예측하여 맷집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해 낼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설령 단기적인 성과가 부족하더라도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는 심리적 자산이 된다. 우리는 결국 자신을 대하는 방식대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완벽한 것이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으면서 완벽주의를 버리겠다고
오늘도 다짐하는 내 안의 '완벽주의자'에게,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 세상에 완벽은 없다.
to be continued...
완벽주의자가 느끼는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게으른 완벽주의자에 대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BkKffynQmr0
알고 보니 그렇군요.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는 것. 작가님의 글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나무 아.. 작가님. 한동안 아예 쓰지를 못하다가 최근에 다짐 같은 글들을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잊어버릴까 봐 잘 보이는 데다 남겨두는, 저에게는 반성문 같은 글이랍니다. 저한테 다짐해 두는 글이 다른 작가님들께 읽힐 때도 비슷한 느낌일까 해서 가끔은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답니다. 투박한 글도 빈틈을 메꿔 읽어주시는 작가님들이 계셔서 늘 부족한 글도 겁 없이 남깁니다.
언젠가 한 번은 겨울나무 님의 깊이로 제 고민을 들여다본다면 속이 후련해지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전에는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한참씩 머무르게 되는 날이 많아졌거든요. 피곤하다 바쁘다 하는 것도 다~ 싹 다 핑계인지ㅎㅎ 오늘 밤도 아주 당연한 문장을 하나 놓고 골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ㅎㅎ 제 맘 아는지, 귀뚜라미가 엄청나게 우네요~ 작가님도 행복한 가을 밤 되세요~
네.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 세상에 완벽은 없어요. 네 맞아요.
@꽃뜰 네~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얼마나 따듯한 격려인지요~돌아보니 그 동안 오해했던 많은 말들 중에 하나였어요. 전 이런 진리라면 아직 투박하게 쓸 줄 밖에는 모르지만 꽃뜰 작가님 글에는 항상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편안하고 품위있게 녹아 있어서 참 좋습니다~(나중에 덧붙인 글이라 못보셨음 어쩌죠..글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다’는 말씀 동감입니다.
그리고 말미에
‘~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 세상에 완벽은 없다.’를
‘ ~ 나는 매 순간 완벽해지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
완벽주의를 버릴 것이 아니라 보완 절충한다면 버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완벽.. 저하곤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아요. 제 스스로는 만족하지만 멀리서보면 늘 어설프고 불안하고.. 그리고 또 때로는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하다고 하지만 제가 스스로 생각할 때 절대 완벽하지 못한 제가 있거든요. 그래서 완벽은 없나봐요.
결국 자기만족이 자신에게는 최선의 결과이고 완벽이 되는 것일까요? 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만족하지 못하면 완벽이 안되는것.. 너무 가혹해요. 완벽하지 않으면 좀 어때요. ㅎㅎ 오늘도 최선을 다한 우리 자신에게 토닥토닥 해주기로 해요~ 아침 저녁 쌀쌀해졌어요. 완벽하지 못한 우리들 감기조심해요~^^
@정 혜 네~정말 공감합니다~ 버리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요. 이 주제의 마지막에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완벽주의 성향이 누군가에게는 기질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어디서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겨우 버틸만한 세상에서 완벽주의자가 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다독여가며 험한 세상을 잘 버텨가야지 싶습니다~ 성의 있게 남겨주신 댓글에 제대로 답글을 쓰려고 조용히 브런치에 접속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어요ㅎㅎ 가을밤이 깊어갑니다. 코로나도 못 막는 대보름 입니다~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고맙습니다~
@달달슈가 완벽이라는 말을 어쩜 이렇게 따뜻하게 풀어주셨나요..정말로 그래서 완벽은 없나봐요.
완벽주의자에게는 '최선을 다함'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오랫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과로로 쓰러지도록 일하면서도 저는 제가 최선을 다 한 줄 몰랐어요. 최선을 다 했는데도 결과가 이 정도라면 너무 한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요. 정말 바보같죠? ㅎㅎ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사람에게 완벽이란 신기루 같아요. 그 신기루를 현실의 차원으로 끌고 내려와 결과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애쓰는 과정에서 건강한 완벽주의자로 성장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도 그렇고, 작가님께 답글을 쓰다 보면 하고싶은 말이 많아져요. 아마 직접 만났다면 제가 엄청 귀찮게 굴었을 것 같아용ㅎㅎ (본문에 완벽주의자J의 딱한 사연을 조금 덧붙여야 겠습니다~)
밤에는 연애편지만 잘 써 지는 게 아닌가 봐요. 한바탕 명절 뒷풀이를 마치고 지금은 식구들이 모두 잠들었어요. 조용히 앉아있으려니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일기장을 꺼냈다가 덮고, 다시 브런치를 열고 작가님께 답글을 남깁니다~
지금은 밖에 비가 와요~ 귀뚜라미는 여전히 우렁차고요~참 이상하네요~어디서 비를 피하면서 저렇게 우나 봐요~
완벽은 없고 최선을 다한다는 말씀을 잘 읽었습니다. 약간 다른 관점이지만, 인간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평소에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음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본다는 결심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노력의 과정에서 원래 생각했거나 의도했던 노력이 모두 실천되지 않는 경우를 스스로 자주 경험합니다. 어제의 최선의 내용과 오늘의 최선의 내용이 바뀌는 연약함이 드러나는 경험말입니다.
@탈퇴한 회원 글보다 더 생각하게 하는 댓글. 정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댓글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잠시 마음이 힘들었지 모에요~ 게으르다고 자책하면서 덮어 두려던 더 연약한 모습을 발견하고 는 실망스럽기도 했구요. 어제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다시 읽었는데요. 개인적으론 이 시기를 이겨나갈 새 힘을 얻었답니다~작가님도 오늘 하루 더욱 화이팅이에요~!
힘찬 하루를 보내세요. 가을의 꽃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탈퇴한 회원 네~ 작가님두요~!^^
뭔가 공통점이 많은 거 같아요^^
@오작가우연히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걸 알게되면, 그것만으로 반가운 맘이 들기도 하는것 같아요. 좋은 하루되세요~
@윤혜진 코치그러니까요~^^ 진짜 좋은 밤 느끼시길~
작가님 글에서 나오는 불가능과 적당히를 전 뭐라고 부르는지 궁금해집니다.^^ 최선에 관한 많은 생각이 펼쳐져서 행복하네요. 작가님 감사합니다.
@반창고 한계란 없다고 저를 몰아 부치던 날들을 반성하면서 쓴 기억이 나요~ 작가님의 최선에서 좋은 에너지가 느껴지네요~ 저도 오늘은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으랏차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