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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초인 Apr 26. 2021

마케터는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을까?

치트키라 생각했던 경험들이 치명적인 '독'이었더라.




10년 넘게 일을 해온 한 마케터가 있다.

이 마케터는 다양한 콘텐츠와 디지털 채널을 활용하며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소비자 경험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은 본인만의 채널을 만들기로 하였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업에서 해왔던 익숙한 일이니까. 그렇게 채널을 오픈하고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마케터는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을까?


디지털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마케터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 될 이야기

회사 일을 하며 본인의 채널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




변두리의 디지털이 중심에 오다


미디어 &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을 거쳐 일을 해온 것이 열두 해를 맞이하고 있다. 7~8년 전만 하더라도 마케팅에서 '디지털 마케팅'은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주류가 아니었고, 마케터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보직은 아니었다. (셀프디스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약간 있었다)


영화 산업에 있을 때, TV 산업에 있을 때 보면 모두 그러했다. 여기서 디지털 마케팅은 어떤 프로젝트를 서포트해주는 업무, 중요하지만 티가 잘 안 나고 필요하지만 많은 손이 가는. 그러나 빛이 많이 나지는 않는 자리?



그렇게 디지털 마케팅은
지원군 같은 존재였다. 


대신 프로젝트 리더 (PM) 역할을 하는 마케터가 꽃이었다. 이 PM이 컨셉을 잡고 메시지를 잡으면, 디지털은 그에 맞춰서 움직이는 프로세스였다.


그렇게 '디지털'이 사이드 공격 수단이었다면 점점 시간이 지나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마케팅의 메인이 되고 꽃이 되면서 여기저기 디지털 마케터를 뽑고 마케팅을 한다 하면, 기본적으로 디지털 환경이나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는 필수로 여긴다.


디지털 중심으로 커리어를 쌓아온 이 마케터는 예능이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 브랜드 SNS 계정을 운영해왔다. 트위터, 피키캐스트, 네이버, 카카오 등 각 시기마다 존재감이 컸던 플레이어들과 제휴도 하고 웹툰 콜라보나 유튜버 콜라보도 시도하며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왔다. 모바일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오디오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다.

(선구적이란 말은 실험적이란 말로 해석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여러 프로젝트가 말 그대로 실험에 그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환경에 맞게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콜라보와 함께 다양한 APP 플랫폼 협업을 함께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디지털 마케터'라기보다는 '디지털 환경에 밝은 'PM'(Project Manager)' 이라는 표현이 좀 더 맞을 것 같은데, 스마트폰의 태동기부터 함께하며 디지털이라는 분야와 다이나믹한 변화와 함께 해왔다.





마케터의 출사표


그리고 어느 날 마케터는 마음먹었다.


이제는 회사의 브랜드가 아닌, 나의 브랜드를

회사의 콘텐츠가 아닌, 나의 콘텐츠를 만들어보자고.

그렇게 출사표를 던지고 선언하였다.


인플루언서,
나도 해보겠다고



그리고 지난 2년의 시간들,

어떻게 되었을까?


다양한 디지털 업무의 경험을 가지고,

계속 힙한 플레이어들과 협업을 해오던

12년 차 마케터는 어떠한 인플루언서로 거듭났을까?





놀랍게도..

아무 인플루언서가 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접은 채널만 여러 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0년 넘게 업력을 쌓아오며,

링크드인에도 디.지.털. 을 가장 첫 줄에 올려놓았던 사람에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미 만들어진 거대한 함선을 조종하는 것과
새로운 보트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처음엔 이걸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디지털 환경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각 플랫폼마다의 특성들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내 채널은 타깃과 컨셉, 콘텐츠 방향성 등 시대의 흐름과 맞게 탄탄하게 기획되어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금방 반응이 올 거고, 채널은 자라나 있을 거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건축가라고 반드시 톱질 잘하는 게 아니고, 

문학평론가라고 꼭 문학을 잘 쓰는 게 아니고,

연예기획자라고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고,

축구 감독이라고 전부 축구 잘하는 게 아니다.

(물론 천재적 소질을 가지고 영역 넘나들며 잘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만)



내가 그간 해왔던 것

이미 만들어진 브랜드를 회사라는 등에 업고 SNS 나 여러 채널의 디지털 환경에 잘 담아 매니저 역할을 하고 만들어내고 안정적으로 키워내는 것이었고,


내가 새로 하려 했던 것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 않던 새 아이(브랜드)를 낳아 디지털 환경에 놓아 걸음마부터 말 한두 마디 할 수 있게 키워내는 것이었다.


그 두 개는 전혀 다른 것인데, 후자의 것을 전자의 입장으로 들이밀었으니 잘 안 되었던 것.


이를테면 나무집 (새로운 디지털 채널) 을 짓는다고 해보자. 나무를 베어 하나하나 자르고 모으고 짓다 보면 좋은 집이든 그냥 그런 집이든 어쨌든 만들어지는 것인데


계속 숲을 바라보며 이 나무가 아니야, 다른 나무로 가보자. 저 나무는 어떨까, 숲에 어울릴까, 어떤 숲에 가볼까 이렇게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하며 저기 옆집 나무집 지어지는 동안 계속 숲의 실험만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 나무집을 쌓던 '옆집'은 그 과정에서 노하우가 생겨, 자기만의 나무가 생기고 그 나무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고 그러면서 재미를 붙이고 집을 키워간다.


나는 오롯이 숲만 생각하며, 너무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이나무 저나무로 재료와 설계는 그럴싸하지만 나무부터 제대로 모으고 쌓지 못해 집이 되지 않는 모양새였던 것이었다. 나는 마케터의 독을 마신 것이었다.


치트키라고 생각했던 나의 디지털 마케팅 경험이 
이렇게 나만의 집을 위해 첫걸음을 떼는 과정에서
외려 독으로 작용했던 것이었다.



마케터의 독을 마시고 알게 된 것


그럼 내가 그간 쌓아왔던 업무 경험들이 부족하거나 빈약했던 것일까?


곰곰이 떠올려보니 그건 아니다.

업무에서 하고 있는 일들은 마케팅에 있어서 후반, 성숙단계에 걸쳐 진화시켜나가는 과정들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 옷을 입히며 쌓은 역량들은 숲을 바라보고 만들어가는 일이었고, 이 숲그리기에 익숙하다 보니 직접 숲에 들어와 나무를 매일 잘라내는 것에는 익숙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이걸 깨닫는 순간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내 콘텐츠를 만들 때 업으로 하는 마케터의 입장이 아닌 초심자의 마음으로 맞이하자.


저명한 건축가라 해도 톱질을 할 땐 목수에게 제대로 배우고,

프로 문학평론가라 해도 문학을 쓸 때는 초보 문학도로 임하고,

연예기획자가 직접 춤을 추고 연기를 땐 하나씩 익혀야 하고,

세계적인 축구심판이라 해도 축구할 땐 동네 선수에게 배울 수 있는 마인드로

(내가 저명하단 건 아니지만 나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다양한 전략들과 단계적 플랜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처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내가 채널을 갖고자 했던 동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스타 만화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는 분야의 이야기에 대해 매주 알면 좋을 내용들을 담아 인스타에 올린다.


아직 작은 채널에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은 작은 집이다.


이전 같았으면 초조하고 불안하고 혹시 자존심이 다칠까 주위에 공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는 인스타의 초보자야! 하고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반응 하나하나에 연연치 않고 편한 마음으로 매주 끌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이러했었다.

"유튜브 시작했다며?"

"응. 베트남어도 배우고 있고, 이거 지금 트렌드 하고도 잘 맞고 이거 잘 키워서 한베 가교 역할 @#%@#%@#%@#@#%%......."

"(오..장황.. 뭔 이야긴지 잘 모르겠지만) 응.. 화이팅"

(그리고 이 채널은 코로나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편해진 마음으로 요즘에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

"응. 요즘 부동산으로 만화 그리고 있어."

"부동산...? 그거 전문가들이 하는 거 아냐?"


쌩뚱맞나. 그래도 어쩔쏘냐.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담는 재미인데.

이번 주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아볼까.

이 순간은 전과 다르게 머리가 맑고 마음이 차분하다.

구독자와 반응도에 연연하기보다는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을 한다.


지금 나의 진짜 고객은 10년 뒤의 나이다.

"그래서 구독자가 몇인데?"

10년 뒤의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10년 뒤의 나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너 재밌게 하고 있지? 근데 왜 하는 거야?"

"왜냐하면,"  



https://www.instagram.com/boomiboomi2/






숲이라는 마케터, 나무라는 채널


이렇게 숲이라는 마케팅을 업으로, 디지털 분야를 무기로 살아온 마케터는

나무 같은 본인의 채널에서 초심자가 되어 지내고 있다.


요즘 들어 본인의 채널을 만들고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들어 콘텐츠를 만드는 마케터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중에는 잘 되는 케이스도 있지만, 잘 안 되는 케이스도 종종 보게 된다. 아마 일부 누군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나 이거 본업인데, 내 채널은 왜 잘 안되지?"


여러 채널을 말아먹고 작은 채널부터 다시 쌓아가고 있는 마케터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숲을 그리기보단 숲에 들어와서 나무부터 하나하나 잘라가는 일을 해보자고. 넓디넓은 숲보다는 작은 집부터 만들어가 보자고.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이고 하다.


그리고 이 실험을 하면서 키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우는 인사이트도 글도 조금씩 전해보려고 한다. 왜냐? 세상은 놀이니까. 놀이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 시간이 지나서 시대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어떤 채널을 운영했었느냐, 어떤 브랜드를 담당했었느냐 가 아니라. 지금 어떤 너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냐고. 너의 어떤 브랜드를 가지고 있냐고.


이것이 초인이라는 마케터가 생각하는 세상에 살아남는 방식이자, 살기 위해 가야 할 길이다. 물론 나무 자르며 손 베기도 하고, 잘못 잘라서 삐뚤빼뚤하기도 하겠지만.


디지털 마케터를 하고 있거나, 되고 싶거나. 혹은 본업의 일을 가진 채 자기만의 채널과 콘텐츠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 기억하면 언젠가 도움이 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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