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왜? #질문의 출발점 #좋은 질문법
버킹엄 궁전, 트라팔가 광장, 내셔널갤러리, 영국박물관… 런던에서의 빠듯한 첫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도심 속 공원 ‘하이드 파크’를 가로지르다 문득 올려본 하늘, 예쁜 별들이 반짝반짝 우리 가족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만난 북두칠성이 신기하다 생각했는지 민 군이 얼른 사진을 찍어 보라고 하네요.
그런데 어쩌죠? 저는 알고 있거든요.
스마트폰으로는 별을 제대로 찍어내기 어렵다는 걸.
물론, 좋은 사양의 카메라를 특정한 모드로 설정하고 흔들림 방지를 위한 삼각대와 같은 장비들을 설치해 많은 공을 들인다면 별을 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보통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잖아요? ㅎㅎ
아! 그러게요… 그러고보니,
‘맨눈으로도 깨끗하게 볼 수 있는 저 별들을
현대 IT 기술의 집약체랄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왜 아직까지 담아내지 못하는 거지?’
이런 궁금증을 품어본 적 조차 없네요.
때때로 어린 아이의 호기심은
우리가 늘 보고도 지나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계기를 만들어주곤 합니다.
호기심이 중요한 이유는 이렇듯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창의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상한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늘 새로운 것을 찾고 요구하지만,
우리는 과연 ‘관성’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바로 여기서
아이와 함께 창의성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 토드 카쉬단Todd Kashdan 조지메이슨 대학 교수, 호기심 전문가*
*세상에나… ‘호기심 전문가’라는 직업도 있군요!
영화 <올드보이>(박찬욱 감독, 2003) 중 한 장면.
영화가 한참이 지나도록 오대수(최민식 분)는
‘대체 누가, 왜, 나를 15년 동안이나 가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만 찾아내려 애씁니다.
그러다 이우진(유지태 분)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죠.
“당신의 실수는 답을 못 찾은 게 아냐.
‘이우진은 오대수를 왜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를 물었어야지.”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의 순간.
미래 인재상으로 손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창의적, 종합적 문제 해결 능력이죠.
그런데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어떤 주어진 문제에 대해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보다 더 주목 받는 관점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좋은 질문을 하는 것’,
그게 그렇게나 중요한 이유, 그건 바로
질문이 그 자체로 강력한 ‘틀 지우기framing’ 효과를 갖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질문하는가’가
곧 답을 결정짓는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일단 어떤 문제, 질문과 맞닥뜨리면
주어진 그 틀frame, 프레임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해요.
그 안에만 갇혀서 답을 골몰하게 되는 거죠.
조금 더 시야를 넓혀, 더 풍부한 상상력으로
더 나은 답을 찾을 가능성의 문이 닫혀버립니다.
게다가 오대수처럼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경우라면?
애써 찾은 답도 말짱 의미가 없어져 버릴 테죠.
두 명의 청소부가 굴뚝 청소를 하고 나와 밝은 곳에서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A의 얼굴에는 숯 검댕이 묻어 시커멓고 B는 얼굴이 하얗습니다. 세수를 하기 위해 세면대로 뛰어 간 사람은 A일까요, B일까요? 흔히 얼굴이 시커멓게 된 A가 아니라, 검댕이 묻지 않은 하얀 얼굴의 B가 세수를 하러 갔을 거라고 말하죠. B는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얼굴만 볼 수 있었을 테니 A의 검은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도 검댕이 묻어 더러울 거라고 믿었을 거라는 거죠.
1990년대 나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끈 철학 입문서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새길, 1994)에 나오는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논리를 따라가 보면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바로, 문제 설정이 잘못됐을 가능성.
문제가 제시되면 그냥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문제 자체가 잘못됐을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치의 의심 없이 받아 들여지는 것까지도
‘정말 그럴까?’
한 번쯤 의심해 보는 버릇을 들이는 데서부터 남다른 생각이 출발합니다.
-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 심리학자
오늘날 가장 ‘혁신적’이라고 손꼽히는 기업들은
대부분, 기존 시장에서 경험하던 불편함과 부족함에
해결책을 찾아 제시한 성공 사례들입니다.
‘왜’라는 질문과, 그에 따른 ‘문제 설정’ 자체가 남달랐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환호할 멋진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었죠.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진 틀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아이의 가장 큰 롤 모델이 되는 우리 부모부터 ‘좋은 질문법’으로 모범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은연 중에 그런 모습을 다 따라 배우니까요.
‘유대인의 교육법’으로 유명한 하브루타 교육법은 우리 교육이 흔히 비판을 받듯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열린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이어나가면서 스스로 지혜를 얻고 사유하도록 만드는 문답식, 토론식 교육을 지향한다 합니다.
즉, 단 하나의 정해진 답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질문, 기발한 질문, 다양한 질문을 하는 걸 더 칭찬하고 격려하는 거지요.
질문이 없고,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이들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경계합니다.
지혜의 원천은 끊임없이 사고하고,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지요.
그래서, 하브루타 교육법에서는 ‘정답’이란 것을 싫어합니다. 독창적인 질문과 창의적인 답만이 최고의 질문이고 답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대여섯 살 정도까지는
두뇌가 아주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입니다.
모든 것을 신기해 하고, ‘왜?’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삽니다.
아이의 질문을 귀찮다고 외면하거나, 억누를 게 아니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합니다.
또, 좋은 질문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 계속해서 의문을 갖도록 자극해 줘야 합니다.
유치원을 지나 학교에 갈 나이가 돼서도 학습지 문제 풀듯, 주어진 문제의 정답만 찾는 식으로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기 어려워요.
한 발 더 나가서, 어떤 질문에 대해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문제 설정인지 항상 의문을 제기하고, 다시 들여다보고 고민해 보도록 하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스스로 던진 질문이든, 다른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질문이든 말이죠.
바로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니?”라고 확인하기보다
“오늘 학교에서 뭘 질문했니?”라고
배움에 있어서도 ‘질문하기’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지식을 쌓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펼쳐 보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의문을 갖고,
또 스스로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남다른 질문, 차별화된 질문,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 결국 더 멋진 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질문을 하는 ‘높은 질문력’은 그러한 바탕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부모도 함께 공부하고 고민해야 아이들 곁에서 가이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 정헌석 성신여대 명예교수, 『실례 좀 하겠습니다』(흔들의자, 2018)
런던 V&A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던 특별 전시회. “I HAVE BEEN TO THE FUTURE”라는 말에서 ‘미래’와 ‘과거완료’의 시제의 혼합이 가져다 주는 묘한 부조화가 마음에 들어 에코백을 하나 샀다.
유럽은 건물 층수를 매기는 방식이 우리와는 다르죠.
우리로 말하자면 1층이 유럽에서는 0층이에요.
엘리베이터에도 보통 0,
또는 G ground floor, 지상층 라고 표기합니다.
이런 차이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보통은 ‘어, 그래요?’ 잠깐 신기해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이내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한 걸음 더 들어가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해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문제 의식을 가져볼 법한 무언가를,
다른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발견해 내고,
알아볼 수 있는 눈썰미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관찰력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거기서 그쳐선 안됩니다.
반드시 ‘왜?’라는 의문이 따라 붙어야 합니다.
아이 때는 누구나 갖고 있는
이 자연스런 호기심이
커 가면서 점점 사라져 버려요.
저 자신만 해도
‘유럽의 0층’에 대해
과거부터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고 말았거든요.
누구나 ‘선물처럼’ 호기심과 질문의 힘을 갖고 태어납니다.
다들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이 있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우리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관찰하길 그만두고, 놀라워하기를 그만두고,
질문하기를 그만두게 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앨버트 아인슈타인,
찰스 다윈과 같은 이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의 궁금증, 호기심, 관찰력을
늙어서까지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바라볼 때
으레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왜,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질문을 던지고,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창의적 발상, 혁신의 출발점입니다.
- 김병완, 『초서독서법』(청림출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