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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명물, CWNC라고 들어봤슈?

왜 그리 시골에 베이커리카페가 많은지.

[아래 D양의 말은 원래 엄청난 충청도 사투리이나 독자의 이해를 위해 표준어로 표기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충청도 시골소녀 D라고 합니다. 올해 19살이에요. 충청도 사투리가 좀 그렇죠? 예쁘게 봐주세요. 저도 알아요, 안 예쁜 거. 그래도 꽃다운 19살이라고 하잖아요. 맞죠?


저는 충청도 토박이는 아니에요. 어릴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서울에 살다가 여기로 내려왔어요. 하지만 친화력이 좋아서 친구들과 금방 어울렸어요. 남들은 아버지 사업 망해서 내려왔다고 하면 불쌍하게 보는데, 저는 이게 참 좋았어요. 서울에서는 친구들이 학원에 가야 만날 수 있었는데, 여기선 다 같이 산으로 들로 나가는 거예요. 서울에서는 돈 주고 했던 자연 관찰 학습인데 여기서는 그냥 나가기만 하면 자연 그 잡채였어요. 아, 요즘 말 모르세요? 누가 '자체'라고 해요? '잡채'죠 (웃음). 아무튼 돈 많이 번 기분이었어요.


초등학교 친구들은 절반 이상이 외국 친구들이었어요. 필리핀, 러시아, 베트남... 분명 충청도 시골의 초등학교인데 글로벌 학교였죠. 서울에서는 방학 때마다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로 영어 연수를 보내면서 돈을 쓴다던데, 여기는 학교만 가면 외국어 천지인 거예요. 저는 러시아어랑 베트남어 생활회화는 기본으로 할 수 있어요. 친구들도 착하고 좋았어요. 한국 친구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서 다 서울로 갔지만, 다른 친구들은 다 여기에 있어요.


고3 되니까 선생님이 지역균형전형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집이 망했다고 했잖아요? 서울 가면 학비도 내야 하고, 잘 곳도 필요한데 그런 돈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제가 딱 잘라서 안 간다고 했어요. 공부가 그렇게 재밌지도 않았고요.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했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이랑 같이 시골에서 농사일을 했어요. 한국 사람이 시골 일 하면 돈 많이 받는 거 모르시죠? 외국인이 넘쳐나다 보니 한국말 통하는 사람이 오면 농부들이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영 못마땅하셨나 봐요. 저는 괜찮다는데 굳이 동네에 꽤 오래된 베이커리 카페 자리를 알아봐 주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인가 갑자기 동네에 베이커리 카페가 생겼거든요. 근데 좀 이상하긴 했어요. 온 천지가 논과 산인데 떡하니 베이커리 카페가 생겼으니까요. 서울에 부잣집에서 취미로 하는 거라고 처음에 만들었을 때는 굉장히 크게 지었어요. 제가 다닌 초등학교만큼 큰 베이커리와 주차장을 만들었으니까요. 동네 어르신들은 저기서 무슨 장사가 되겠냐며 혀를 찼죠.


아니나 다를까, 장사는 전혀 안 됐어요. 알바생이 가끔 와서 설렁설렁 치우고 문 열었다 닫았다 했어요. 그럴 만도 한 게 커피 한 잔에 만원씩 받아버리니 누가 오겠어요. 장사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할 정도였죠. 그러다가 어머니가 사람 구한다는 걸 들으신 거죠. 


이력서에 쓸 말도 별로 없어서 대충 적어가지고 베이커리 카페에 갔어요. 넓은 주차장과 정원, 지은 지 오래되어 낡은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청 젊은 여자가 앉아있었어요. 잘해봐야 20대 중반? 저보다 몇 살 더 많은데 저를 면접 보니 기분이 좀 그랬어요. 그래도 일하러 온 거니 어쩌겠어요. 물어보는 말에 잘 대답했죠. 제가 사는 집이 가깝다고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자기보고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래요. 매일 오전에 카페 문 열고, 청소하고, 손님 오면 커피 만들어주고 빵 팔라고 하더라고요. 문도 저녁 6시 넘으면 아무 때나 닫으래요. 근무도 자유롭게 하라면서요. 사장 없이 알바하면 좋잖아요? 거기다 시급도 최저임금보다 높게 만원이나 준대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자리가 있다니, 바로 열심히 하겠다고 했죠. 농사일하는 것보다는 돈은 적지만 몸이 편해서 좋았어요.

근데 그 언니가 신신당부한 게 있었어요. 누가 와서 다른 직원이나 주인 찾으면 잠깐 나갔다고 하고 바로 전화를 하라는 거예요. 언니는 멀리 서울에 있을 건데, 거기 있는 척하래요. 뭐 그게 어렵겠어요. 바로 알았다고 했죠.


그리고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한 달은 문 열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도 손님이 1명도 안 오는 거예요. 아니, 이렇게 큰 베이커리 카페를 열어놨는데 전기세만 해도 많이 나올텐데..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그래도 핸드폰 게임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근데 그것도 한두 달이지, 핸드폰 게임 다 하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 뭐냐, 서울 사람들이 직장에서 한다는 월급 루팡? 딱 그거였어요. 루팡질이 할 게 못 되더라고요. 세 번째 달 접어드니 주인도 아닌데 주인 정신이 생기더라고요. 매일 청소를 해서 그런가... 그래서 할 것도 없겠다 해서 공부를 시작했죠. 읍내 나가서 인스타그램 마케팅 책도 사고, 바리스타 책도 사 왔어요. 월급 받은 걸로 바리스타 동영상 강의도 들었죠. 아, 유튜브에는 없는 게 없더라고요. 정말로 사람이 배울 마음만 있으면 다 있는 세상이에요. 가게에 있는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보면서 배웠어요. 고등학교 3년 동안 배운 것보다 여기서 세 달 동안 배운 게 더 많아요.


아니 이 넓은 카페를 맨날 불을 켜 두고 하루 매출이 만 원, 이만 원이라는 건 너무하잖아요. 그렇다고 제 가게도 아닌데 간판을 바꾸거나 인테리어를 바꿀 수도 없고요. 그래서 온라인 마케팅을 했어요. 뭐 사실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좀 특이한 걸 했죠.


매일 카페 마당에 자라는 꽃을 찍어 올리고, 먹이를 좀 뿌려 놓으면 산새들이랑 다람쥐가 와서 먹는 것도 찍어서 올렸어요. 카페에 워낙 사람이 안오니까 짐승들이 보기에 여기가 딱 맛집인 거죠. 매일매일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찍어서 올렸어요. 가끔은 산에서 반달곰도 내려왔어요. 이런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안 믿는데, 진짜예요. 저도 많이 놀랐죠. 곰도 오는 상황이니 카페를 조금 바꿔봤어요. 어차피 사람도 안 오니까 산짐승 카페도 재밌겠다 싶어서, 뒷마당에 곰 먹이, 토끼 먹이, 다람쥐 먹이, 새 먹이를 매일 두었죠. 그리고 동물들이 무서워하지 않게 사람들은 숨어서 구경할 수 있게 유리창도 막고 그랬어요. 뭐랄까... 천연 동물 카페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렇게 꾸며 놓고 인스타그램이랑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조금씩 찾아오는 거예요. 제가 바리스타 책 보고 대충 커피를 만들어서 팔았는데, 그것도 맛있다고 해 주더라고요. 저도 재밌었어요. 일주일에 한 명 올까 말까 할 때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좋았죠. 그러다가 어떤 여행 유튜버가 다녀갔는데, 그때부터 이야기가 확 달라졌어요. 구독자가 많은 유명한 사람이었나 봐요. 와 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스태프들이랑 와서 한참을 찍어 갔어요. 커피랑 빵도 많이 사 주고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갑자기 미친 듯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인스타그램 DM으로 촬영하고 싶다는 요청이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참, 이게 뭔 난리인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카페 이름도 붙이더라고요. '충청 와일드 네이처 카페', CWNC라고요. 참 재밌는 사람들이에요. 


AI가 그려준 CWNC 카페. (출처:Dall E)



그동안 사실 커피야 제가 대충 내렸지만, 빵은 며칠에 한 번씩 다른 데서 사왔어요. 베이커리 카페니까 빵 굽는 설비는 있는데, 사장 언니가 그냥 사다 팔자고 해서 가끔 주문해서 가져왔던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갑자기 몰리니까 늘 다 팔렸어요. 그래서 맨날 가게 밖에 ‘재고 소진’이라는 간판을 걸었어요.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이러니까 이게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거예요. 새벽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아니, 이게 뭐라고. 다른데서 구워온 빵인데 그거 먹겠다고 시골에서 밤이슬 맞으며 줄을 서고 있는 건지... 사람 심리가 참 재밌어요. 처음에는 산짐승 보러 오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사람들은 ‘여기 왔다는 사실 자체’를 자랑하는 거더라고요.


매출이 갑자기 폭발하니까 서울에 있는 언니가 놀라서 전화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대로 설명했죠. 인스타랑 블로그에 올렸더니 난리가 났다고요. 그런데 그 언니가 갑자기 화를 내는 거예요.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냐고요. 아니, 가게 사장이면 매출 오르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참나... 나름 열심히 해서 도와준 건데...




“D 양, 이야기 너무 잘 들었어요. 그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너무 고마워요.”


지적이지만 날카로운 분위기의 안경을 쓴 여성 조사관이 D의 손을 잡고 말했다. D의 말처럼 카페 안 밖은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시골처녀 D와 이야기하고 있는 양복 정장 차림의 여성, 남성 두사람은 참 이질적으로 보였다.

D의 옆에 앉아있던 D의 어머니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선상님들.. 저희 D는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어유. 근디 뭔 일 있는건 아니쥬? 저희 딸 잡아 가는건가유?”


여자 조사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잡아가다니요. 저희는 경찰이 아니에요. 국세청에서 나왔다니까요”


옆의 남성이 거들며 말했다. 


“이 베이커리 카페는 D양이 말한 서울언니의 아버지가 대표로 있는 카페입니다. 이 남자는 중소기업 대표였던 사람이에요. 자산이 500억 정도 되고요. 이분이 자녀 상속세를 안내려고 이 산골에 베이커리 카페를 차린 겁니다.”


“아니 이런 산속에 카페를 내는거랑 상속세랑 무슨 상관이 있는건가유?”


D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라에서 걷어가는 세금이 왜 카페와 연관이 있는걸까.


“이 대표님이 원래 자녀에게 본인의 재산 500억을 상속하려면 적어도 200억원 이상을 상속세로 내야 해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세금을 줄이려고 해요.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데요. 우리나라 상속세법에 가업상속공제라는게 있어요. 빵집, 음식점, 세차장 등 상속세법에 정해진 업종은요. 10년이상 된 업장인데 자녀가 대표이사로 2년만 있으면 최대 300억까지 세금을 면제해 줍니다. 30년 이상된 업장이면 600억까지요.”


D와 D의 어머님은 300억, 600억 하는 말들이 잘 와 닫지 않았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큰 돈이었다. 


“커피전문점은 공제 대상이 아니에요. 그래서 베이커리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커피까지 같이 파는거죠. 시골길 지나가다 보시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들이 다 이런 식이에요. 이 업장도 처음부터 잘 되려고 만든 곳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남자 조사관은 D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D양이 혼자서 너무 잘 한 덕에 여기가 너무 유명해진거죠. 너무 주목받게 되니까 저희도 나와보게 된 것이고요. 원래 관내에 이런 업장이 있으면 실제로 대상이 맞는지 봐야 하는데 인원도 부족하고… 실제로 확인하는 게 쉽지 않네요.”


D는 사실 복잡한 이야기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한 것일 것? 아니면 잘한 것일까? 여자 조사관은 서류를 가방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당장 뭘 어떻게 하진 않아요. 여기 대표님을 어떻게 할 방법도 없구요. 다만 실제로 가업상속공제를 신청한다면 오늘 저희가 확인한 내용은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D양 덕분에 나라 곳간을 지킨 거네요. ”


D는 일어서는 조사관들에게 물었다.


“아니 그래서.. 지한테는 뭐가 좋은 거에유? 서울언니가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는 건 알겠는디.. 지는유? 그냥 여기서 일 잘 하고 싶을 뿐인디. 나랏님들이 세금을 더 받건 덜 받건 그건 모르겠구유.”


조사관 두사람은 나중에 표창장을 추천해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D의 어머니는 별일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집으로 돌아갔다. D는 혼란스러웠다. 서울언니나 그 아빠라는 사람이 뭘 잘못한건지, 그 조사관이란 사람들은 또 뭐였는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건지.


한달 뒤 D는 국세청의 표창장을 받았다. 상장에는 세정협조자에게 감사한다고 써 있었다. 표창장 상금은 없었다. 베이커리 카페에서는 이미 해고된 뒤였다. 그러나 D는 곧 서울의 유명한 온라인 마케팅 회사에 스카우트되었다. 그리고 한참 뒤 동네 부동산 아저씨를 통해 서울언니가 시골의 베이커리 카페를 팔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상속세는 어떻게되었을까? 팔았다는 걸 보면 세금을 다 낸 거겠지? D는 궁금했지만 더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이후 시골을 지나다가 큰 베이커리 카페를 보면 CWNC 가 생각났다. 가업상속공제 같은 제도를 자신이 쓸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저 이 나라가 참 재미나다고 D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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