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를 전문인 수준까지 해야 할까?
새로운 것의 창조는 지능이 아니라 내적 필요에 의한 놀기 본능을 통해 달성된다.
창의적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 놀기 좋아한다. <칼 융>
한 분야를 전문인 수준까지 해야 할까? 여러 분야를 시도하는 것이 좋을까? 엄마의 욕심에는, 아이가 어느 한 분야에서 특출 나 전문인 수준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엄마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갈 때가 많습니다.
94년 생 아들이 9학년 (중3) 때 럭비를 시작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방과 후 럭비반에 들어가 보겠다는데, 환영하는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운동복만 180불이 넘었고, 다른 활동도 많이 하고 있어서, 굳이 럭비를 해야겠냐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렇다고 운동복이 비싸다는 이유로 생전 처음 럭비를 해 보겠다는 걸 못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운동을 좋아하는 편도 잘하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적극 환영할 수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운동복과 관련된 썩 내키지 않은 사건 때문입니다. 한국 초등 시절, 검정 검도복과 남성스러운 검이 마음에 들어, 아들은 검도를 꽤 즐기며 배우고 있었습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은 느닷없이 다음 날부터 태권도장에 다녀야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학교 앞에서 그날 등록을 한 학생에게는 태권도복을 무료로 준다고 하여 자기 이름을 쓰고 왔다는 것. 검도를 단까지 올린 후에 태권도를 시작하라고 했지만, 이미 마음은 태권도 복에 가있었습니다. 아들은 태권도를 배우면 검도도 더 잘하게 될 테니 걱정은 하지 말라며 운동에 대한 대단한 각오를 보였습니다. 다음 날, 하얀 태권도복을 받아 왔습니다. 검정 검도복만 입다, 하얀 태권도 복을 입으니, 하얀 얼굴이 더 환해 보이고, 만족한 함박웃음까지 짓고 있으니, 연유야 어떻듯 나도 행복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느낌은 잠시, 두 달도 못 가서 훈은 검도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설명했습니다. 두 개를 다 하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데, 무료로 받은 태권도 복은 적어도 1년을 다녀야 하니 태권도만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합니다. 그 후 캐나다로 가게 되어 태권도, 검도는 모두 그저 그런 수준으로 막을 내리고 더 배울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얀 태권도 복만 아니었으면, 검도 하나라도 어느 경지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 텐데, 엄마의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중도에 그만둔다 해도
이런 사건이 있은지라, 태권도복을 들추며, 럭비는 끝까지 해 보라고 다짐을 시켰습니다. 아들은 럭비는 예전부터 꼭 해 보고 싶었던 운동이니 열심히 할 것이라고 여러 번 다짐을 했습니다. 빨간색 럭비 옷을 입은 훈은 세상의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는 얼굴, 태권도복 그때의 얼굴이었습니다. 럭비 팀은 학교별 대회에 출전하는 ‘대표팀’과 학생들끼리 재미로 경기하는 ‘준비팀’으로 나뉘는데 아들은 당연 준비팀에 들어갔습니다. 비싼 옷을 생각하면 학교 대표팀에서 활약해도 모자란데, 준비팀에 들어갔다니 실망스러웠지만, 이것도 엄마의 바람뿐이었습니다.
한 달쯤 지났는데 훈이 조심스레 말합니다. 아무래도 럭비를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럭비 경기 중, 한 친구가 피 흘리며 구급차에 실려 가는 걸 보니 운동할 맛이 딱 떨어졌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럭비는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한 운동이고 한번 다치면 치명적으로 될 수도 있으니 다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고 설명합니다. 전 한 말을 잃고, 머리로는 180불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아까운 180불과 피 흘리며 들어오는 아들의 모습이 하나씩 보입니다. 구급차에 실려 간 친구에 대한 아들의 자세한 설명 때문에, 피를 흘리는 아들 모습이 선명해지니, 180불이 더 이상 아깝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워 보이던지.
"뭐든 배울 수 있으면 되지 뭐. 이 럭비 경험에서 뭐 좀 배운 게 있어?”
쿨한 엄마처럼 말이 나왔습니다.
"엄마, 저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뭘 시작하기 전에 잘 생각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정말, 이번에는 확실하게 배웠다니까요."
“어떤 식으로든 배움이 있었다니 다행이다.”
한 번 더 쿨한 엄마처럼 말을 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을 보니 후회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어쨌건 입어 보고 싶었던 럭비복을 입어 보았고, 해 보고 싶었던 럭비도 해 보았습니다. 게다가 배움도 있었으니.
아들은 다양한 것들을 많이 시도했습니다. 마술, 바둑, 서예, 태권도, 검도, 피아노, 바이올린, 베이스 기타, 트럼펫, 비트박스, 댄스, 노래, 요리 등, 어느 경지에 이른 것이 하나도 없이 시도해 본 것이 많은 아이로 자랐습니다. 아빠는 이런 모습을 오랫동안 못마땅해하고 있었는지 대학을 졸업한 아들에게 뼈가 있는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넌 뭐하나 제대로 끝낸 게 없잖아. 정말 잘한다고 할만한 거 하나 있어?"
이 말에 아들은 정색하며 대꾸합니다.
"아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이런저런 것들을 내가 시도해 봐서 전 누구보다도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다고요. 팀 프로젝트할 때, 친구들이 저와 같은 팀이 되려고 하는 거 모르시죠. 독창적인 아이디어 맨이 바로 저예요. 그게 다 다양하게 시도해 본 게 많아서 그렇다고요. 탤런트 쇼(장기 자랑)에서도 제가 있는 팀은 꼭 상 받는 거 모르셨죠?"
저도 아들 편이 되어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꼭 하나를 잘해야만 하나요? 하고 싶은 거, 시도해 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지……."
(저도 속으로 좀 찔리는 게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시도는 많이 했는데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을 닮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해 보고 싶은 것을 해 본 기쁨에도 가치를!
제 속마음은, 아들이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는 중에도, 하나 정도는 전문가 수준이 되면 좋겠는데, 마음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며 나도 행복했다는 그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해 보고 싶은 것을 시도해 본 경험은, 앞으로도 또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고 시도해 볼 자신감이 되었으니, 꼭 전문가 수준이 아니어도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아까운 180불이 아주 잘 쓴 돈이 되고 있습니다. ,
아이가 크고 보니 더 잘 보이는 것, (그때는 잘 몰랐는데)
아이가 자라고 보니, 어린 시절의 아주 사소한 사건들 속에서 아이의 자존심, 자신감이 자라기도 하고 크게 손상되기도 한다는 것이 더 잘 보입니다. 어떤 사소한 사건에서, 아이가 힘을 얻고 혹은 마음이 크게 상한지 그 당시에는 잘 모릅니다.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 더 많습니다. 검도와 태권도, 운동복에 마음이 쏠려해 봤다 해도, 해 보고 싶은 것을 해 보았을 때의 기쁨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닐 수 있지만, 반대 상황이었다면 큰 상실감을 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아이에 따라 다르게 느끼겠지만, 어쨌건 이런 사소한 일들의 경험이 아이를 만드는 건 확실합니다. 그러니 엄마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크게 가정 경제가 흔들릴 정도가 아니라면)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자존감을 상하게 하거나, 자신감을 키우거나, 호기심의 싹을 자르거나, 키우거나 등, 모두 별거 아닌 일이 쌓이면서 일어납니다.
둘러보면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엄마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못하게 할 이유가 별로 없는 사소한 것들을 미리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 자신을 돌이켜 보세요. 엄마 맘대로 못하게 막는 것이 없는지. 4차 산업혁명 시대 필요하다는, 창의성, 호기심, 상상력 이런 능력은 거창한 것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보게 하는 작은 일에서 자라날 수 있습니다.
호기심, 상상력, 창의력에 관심이 있는 엄마를 위한 팁!
아이들이 해 보고 싶어 하는 일, 중도에 그만둔다 해도, 시작해 보게 해 보세요.
여러 활동을 시도하고, 포기도 하는 가운데, 아이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하게 됩니다.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은 호기심에서, ‘해 보면 어떨까’는 상상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이, 아이 방식으로 연결되면서 창의력이 생깁니다.
아이들이 관심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도와주세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역량에 집중하는 엄마'의 자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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