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이 객관식인 줄만 알았지 뭐야

by 뇽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20150709_230%2Fenglish_endeavor_1436404519301Nu60j_JPEG%2Funtitled.jpg&type=sc960_832

다른 사람의 욕망을 따라가기 바빴던 지난 날들.



왜 그랬을까 생각했는데

그때는 인생이 객관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1.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고르시오. ( )



① 도박 등으로 초중반부터 나락 가는 인생

② 그저 그렇게 살다가 노후에 쫄딱 망하는 인생

③ 열심히 살았지만 직장 안에서만 발버둥 치다가 노후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인생

④ 젊었을 때 바짝 고생했다가 중년부터 여유 있게 사는 인생

⑤ 노력과 운이 겹쳐 젊었을 때부터 여유 있게 사는 인생





당연히 4번이나 5번을 고르고 싶었다.






나는 젊었을 때 조금 고생했다가
중년부터는 여유 있게 살아야지.

운대가 잘 맞으면 젊을 때부터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거야.




그때에는 저 다섯 가지만 보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쫓으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포트폴리오나 작품 평가에 가깝다.



헝가리의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는 소설 <열정>에서

'중요한 문제는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라고 썼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이냐?"라는 질문에

사람은 살아가면서

삶이라는 포트폴리오나 장면, 작품으로 정리하여

나 자신에게 답하게 된다.



그런데 겨우 5가지의 선택지 안에서

정하려 했다는 게 가장 큰 오판이었다.



거기다 저 다섯 가지 선택지 안에서도

인생은 언제나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었다.



나락 가는 것 같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좀 살만한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의 선망을 받더라도

곧바로 추락하는 게 인생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고

뉴스의 사회, 연예 면에서 매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저 선택지는

오롯이 '경제력'에 대한 얘기뿐이다.



물론 노후까지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은 그것뿐이 아니다.



image.png?type=w1



매슬로우의 욕구체계 이론에서는

인간이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가 충족되면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소속감과 사랑을

원하게 된다고 한다.



안전하다고 느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면

그 이후에는

스스로가 성장하고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도 필요하고,

가족을 비롯한 그룹에 속해 있으면서

그 안에서의 애정과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라는

무겁고 어려운 질문이라서

흔히 사람들은 나처럼 이 질문을 객관식으로 만들어서

할 수 있는 답을 좁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답하는 것을 피하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것이 정답이 어디 있고

또 무작정 옳은 것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모두에게 각자에 맞는 답을 찾아가며 사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답을 내리지 않아도 되니,

스스로가 생각하는 괜찮은 인생은 무엇일지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고

고민해 보며 찾아보는 게 필요하다.







keyword
이전 06화불안은 바쁨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