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엄마는 사나워, 근데 아빠는 점잖아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 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빗방울이 뚝뚝뚝뚝
떨어지는 날에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엄마 찾아 음메~~
아빠 찾아 음메~~
신나는 아기 염소들!
아이들은 외출할 때마다 이 노래를 박자에 맞춰 신나게 불렀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인서와 인후는 TV 속 또래 아이들처럼 몸을 곧추세우고
리듬을 타며 머리를 장난스럽게 갸웃거렸다.
작은 몸에서 길게 뻗어 나오는 목소리는
유리잔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경쾌했다.
종소리처럼 또랑또랑 울려 퍼졌다.
경이는 뒷좌석의 아이들을 거울로 훔쳐보았다.
창밖을 스치는 가로등 불빛이 아이들의 볼을 번갈아 비추었다.
아직 볼에 살이 오동통하게 차오른, 웃음이 많은 얼굴들.
그날도 오랜만에 돌아온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노랫소리를 들으며 경이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초록빛 언덕 위를 뛰노는 아기 염소들,
햇살처럼 빛나는 눈동자와 해사한 미소들
비가 내리면 조그만 이마를 찡그리며 엄마 아빠를 찾다가
해가 다시 피어나면 다시 폴짝폴짝, 빛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
그 광경은 경이의 아이들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남편 석훈은 싱가포르에서 6개월 만에 돌아왔다.
한국에 있을 때도 출장으로 집을 비웠지만
해외 발령이후 ‘아빠의 부재’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 함께 있을 때면
아이들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 신이 났다.
세 식구뿐인 식탁은 왠지 허전했다.
가족이란 네 사람이 모여야 완성되는 걸까.
경이는 이 질문을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었다.
석훈은 귀국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빠가 되려 애썼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인형,
조그만 머리핀과 액세서리를 빠짐없이 챙겨 왔다.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 곁에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를 존경했고,
그때만큼은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았다.
경이도 그 순간만은 안심할 수 있었다.
경이도 마치 정말 괜찮은 가족처럼 느껴졌다.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은 늘 하던 역할놀이를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아프대.”
“우리 엄마는 시장에 갔대.”
“너희 아빠는?”
“출장 갔지.”
“언제 와?”
“몰라, 열 밤, 서른 밤, 백 밤 자야 한대.”
“와, 왜 그렇게 오래 있대?”
“돈 벌어야 하니까.”
“우리 엄마는 사나워. 근데 아빠는 점잖아.”
아이들의 말이 차 안을 채웠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빠는 점잖고 다정한 역할이고,
엄마는 늘 사나운 존재라는 걸.
경이는 그 말을 묵묵히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에서 마귀 역할은 자연스레 자기 몫이 되었다.
‘사나운 엄마’라는 악역으로 박제된 존재.
역할극 속 진실은 농담처럼 흘러가지만, 경이는 안다.
그 말들이 웃으며 넘길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경이는 지금 마귀의 껍질을 입고
차안의 따뜻한 웃음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석훈은 운전석에서 미묘하게 미소 지으며 백미러를 힐끗 봤다.
그의 눈빛은 ‘아이들 참 많이 컸네’라는 자부심과
‘내가 없을 때 힘들었겠어’하는 동정이 뒤섞여 있었다.
차가 식당 앞에 멈추자 아이들은 먼저 뛰어내렸다.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경이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딸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좋아?”
경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은 대답 대신 웃었다.
이미 아이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석훈이 시킨 돈가스와 파스타가 놓여 있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를 잔에 따랐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석훈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경이는 조용히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다
피자를 한입 베어물고 나서야, 아무것도 삼켜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러고 나서야 음식에 손이 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재창작한 창작물입니다.
일부 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어 있으며, 실존 인물이나 단체와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