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언제부터였을까. 낡은 책상에 시트지를 붙여가며 리폼하고, 커튼 달 돈이 없어, 조각난 천을 모아 햇살 강한 창문을 가리고...
인천 옥련동, (가수 정승환은 나의 과외제자였다. 그 넘의 #옥련동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자동적으로 인생을 반추하곤 한다.)
나는 옥련동에 살 때, 그 작은 동네에서 아파트 이사를 무려 다섯 번이나 했다.
이미 차를 7번이나 바꾼 이력도 설명했으니, 소유물이나 공간에 대한 애착이 [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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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옥련동에서 송도 신도시로 이사를 가면서 그곳에서도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아우, 집을 자주 옮기시네요.
변명하거나 합리화로 방어하지 않았다. 사실이니.
-힘들지 않으세요, 짐 싸고 풀고 꾸미고.
-전혀요, 하루 정도 아프면 돼요.
그렇다. 이사를 할 때의 힘듦보다 이사를 하고 난 후의 나의 공간의 변화에 [나 사롸있네!] 세포가 호흡하는 게 느껴졌다. 기쁘다는 것이다.
통계를 내보니 2년에 한 번씩 집을 옮긴 것 같다. 그럼, 집을 옮겨서 변화를 주지 않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에니어그램 7번이 말이다.
가끔 나는 내가 장애인 것을 잊는다.
책장도 옮기고, 책상도 옮기고, 커튼도 바꾸고, 결벽증처럼 이불은 늘 호텔식이다.
신도시에서 내 능력의 절정기였을 때, 좀 과도하게 크다 싶은 공간으로 이사를 갔을 때였다. 55평형 아파트를 전세로 취하고 나는 제일 먼저, 부동산 중개인에게 그 집의 열쇠를 받았다. 부동산 문외한인 나는 열쇠를 받고 제일 먼저 그 공간을 북카페처럼 인테리어를 했다.
문제는 주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했다는 것.
일주일 정도 공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지금 생각해도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날카로운 얼굴을 한 주인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뭐하는 짓이에요!
허허, 그녀의 얼굴이 가보지도 못한 서울의 평창동, 압구정, 뭐 그런 집에 사는 주인 얼굴이었다.
옷은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었고 비싼 마룻바닥 위를 구두를 신은 채 또각또각 들어와서는 소리쳤다.
-공사한 것 다 부수고 원상복구 하세요!
-네??
집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마치 내 집인양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인데, 이 바보가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장애인이어서 공간을 사랑해요... 밖에 다니질 못하니 제 공간이 예뻐야 하는데, 과외를 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미리 인테리어를 했어요... 봐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울었다.(챵피한 기억이다)
어떻게 됐을까?
그 날카로운 주인마님의 입에서 긍휼 한 마음 표출될까 기대했건만 전혀다.
다행히, 부수지는 않았지만 계약서에 추가 목록이 들어갔다. [원상복구] 그리고 주인의 허락 없이 인테리어를 한 대가로 부동산 중개인 몰래 100만 원을 챙겨갔다.
대가를 치르는 경험이었는데 그 이후에 그 주인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자기 집을 깨끗이 쓰라고 쏘아붙였다.
-선생님 전화받지 마세요. 주인이 갑질이네요
-맞아요 진상이다.
아이들의 위로에도 잔상으로 남는 주인 여자의 모습은 [더 이상 전세는 안 살 거야!] 오기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인천 차이나 타운, 낡은 주택을 개조해서 카페와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3개월 공사하는 기간 동안 나는, 리모델링 전문가였고, 건축사였다. 활개를 치면서 좋아했다는 것이다.
#카페관동 1층은 아들의 취향대로 꾸몄지만 #여기그대로(路) 2층은 나의 공간이니, 주택이 개조되어 가는 동안 행복했다.(민원신고로 마음을 졸인 거 외에는...)
이미 유명한 공간이니, 이 공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 창가 책상이다.
나는, 지하상가를 좋아했다. 비용 대비 좋은 옷을 살 수 있고, 천천히 걸어가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니 좋고, 다양한 먹거리 또한 즐비하니 나는 지하상가를 좋아했다. 그 지하상가를 내려가는 수많은 계단도 사실 장애를 인지하지 못하게 했는데, 세상 수많은 직업군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나의 20대는 지금도 아픈 기억이다. 면접조차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선택한 직업은 Free-lancer.
그 프리 하다는 것이 새벽까지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 오전까지 늘어지게 자도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글을 쓰고 상담을 하며 가끔 그림을 그리는 어찌 보면 선비 같은 나의 일상에 그 프리라는 것을 접목하면 아침 늘어지게 자는 일상이 명분이 될 수 없었다. 내게는 말이다.
-출근해야지, 일어나.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출근하자.
혼자 하는 대화다.
블로그에 포스팅할 낙관적인 대화, 어찌 보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벤트리가 혼자 중얼거리며 놀 때나 쓰는 그 대화법이다.
나는 책상으로 출근을 한다.
-자 오늘은 무엇을 할까?
-그렇지 잘하고 있어.
.
네 칸짜리 폴딩 창문을 열어젖히면 맞은편 경찰청 별장에서 초록 내 가득한 나무향을 준다. 봄에는 벚꽃이 흩날리고, 늦게 개화해서 미안한 개나리가 빼꼼 고개 내밀며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초록이 덥다 느껴지면, 빨간 장미꽃 만개한 그 경찰청 별장 정원의 붉은 향기가 나의 책상으로 내려앉는다.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상담을 하고 글을 쓴다.
행복한 공간이다.
나는 오늘도 책상으로 출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