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내 할 것을 하는 연습과 자유의 상관관계

요가실록, 두 번째 이야기

by 지반티카


오늘은 허둥대지 않았다. 지난 토요일과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고, 좋아하는 자리에 매트를 까는 데도 성공했다. 수업에 어시스트로 들어오게 된 피치 언니가 말했다.


"토요일에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지난주에도 왔어."

"그래?"


언니의 얼굴을 보니 반갑고 마음이 편했다. 발리에서 포레스트 요가 파운데이션 과정을 같이 했던 피치 언니는, 과정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부터 더욱 친해졌다.


옆 자리에는 수업 시작하기 거의 직전에 도착한 체리 언니가 앉게 되었다. 먼저 도착해 그 자리에 매트를 깐 사람이 있었는데, 막 들어온 체리 언니를 보곤 여기 앉으라고, 자기는 다른 자리로 가겠다고 했다. 언니는 사양하듯 "괜찮은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렇지만 그 자리는 결국 언니의 자리가 되고 말았다. 오랜만이라고 인사하는 내게 언니가 속삭였다.


"너무 앞이야."


체리 언니의 바로 앞에는 예신희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나는 앞이라서 좋아하는 자리를 누군가는 부담스러워한다. 사람 마음은 이렇게 다 다르다. 뒤에 앉으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잘 보여서 나에게 집중하기가 어렵고, 구석진 자리로 가면 막힌 모서리가 답답하다. 그래서 어디서 어느 선생님과 수련을 하든 앞에서도 가운데에 앉곤 하는데, 사람들은 다른 이유로 자신이 선호하는 다른 자리를 찾아간다. 서로 다 다른 마음, 할 줄 아는 것도 다 다르니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겠지.


이번 수업 의도 (intent)*는 자유로움이었다. 나는 그 자유로움을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이나 몸의 통증을 붙들고 있지 않고 숨 쉬고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이해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 파도를. 수련실, 건물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몸을. 그런 것들에 끌려가지 않고 내 할 것을 하는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브롤가 (Brolga)*. 포레스트 요가의 복부 운동 중 하나. 하고 나면 골반과 허벅지가 시원하다. 하다가 집중을 잃기 쉬워 도전적인 자세이기도 하다.

또다시 머릿속의 생각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선 살루테이션 A와 B를 교차로 수련하는 동안 오간 생각은 그런 것들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도 생각은 홍수처럼 밀려든다. 그리고 숨을 쉬면서 생각들과 조금씩 거리를 두면, 몸이 느껴지는 순간을 만난다.








"선행학습반이야, 우리는."


옆에 있던 체리 언니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선생님 안내에 앞서 비슷한 속도로 선 살루테이션 B를 끝내고 서 있었다. 언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언니가 한 마디 덧붙였다.


"성격 나오는 거 봐."


기다리지 않고 척척 해버리고 마는 성격. 너무 웃겨서 깔깔대고 웃었다. 선생님은 수업에 온 지 얼마 안 된 수련생들을 지도하느라 바쁘셨다. 포레스트 요가 수련을 좋아하는 점 중에 하나는, 학교에 온 것처럼 웃고 떠드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대화와 웃음이었다.


"선생님이 가서 손을 대야만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스스로 움직이는 방법을 찾으세요."



수업을 안내하는 선생님이 있지만, 수련 중에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몸에서 집중이 떠나갈 때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 반복으로 수련이 익숙해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은, 자세들 속에서 내 몸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자세 모양만 만들어놓고, 숨에서조차 멀어져 있을 때가 잦다. 이 자세를 여러 번 해봤고, 그래서 이미 알고 있으니 더 뭘 해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리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그렇다.


그럴 때 다시 해야 하는 것은 집중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집중이 잘 되지 않고 여러 생각이 드니 괴로워졌다. 오래 수련해도 잘 늘지 않는 '꼬라지'를 보는 것이 싫었다. 나는 요가와 맞지 않으니, 영원히 매트 위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생각까지도 보면서 계속 움직이는 것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내 할 것을 하는 연습. 그 사이 또는 그 끝 어딘가 자유로움도 있겠지, 하면서.


벽에 매트를 붙이고 하는 수련이 오늘도 이어졌다. 사람이 많아 이 벽, 저 벽 왔다 갔다 하면서 수련을 했다. 다리를 벽에 대고 하는 런지, 스플릿 (split), 피존 (pigeon)은 공기 청정기 왼편에 있는 벽에서. 포어암 발란스와 핸드 스탠드 (hand stand)는 공기 청정기 오른편 벽에서.


핸드 스탠드를 준비할 때는 벽에서 손이 너무 멀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벽에 더 가까운 바닥에 손을 두었다. 몇 번의 점프 끝에 퍽 가볍게 벽에 뒤꿈치가 닿았다. 발바닥끼리 붙이고 나비 자세의 다리를 만들었다. 호흡을 하고 있는데, 수련실 다른 쪽에서 어시스트를 하고 있었던 피치 언니가 다가와서 말로 도와주었다.



받다코나아사나 인 핸드 스탠드. 배를 들어올리는 것은 정말이지 별일이다.


"갈비뼈를 더 모아야 돼."


몸이 뒤집어져 있어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어떻게 모아 보기는 했다.


"어, 그치. 이제 배를 더 들어."


피치 언니가 손을 댄 부분을 들어 올리려는데 너무나 힘이 들었다. 아, 역시 또 불필요한 부분들이 일을 더 하고 있었구나. 힘을 정말 써야 하는 배는 힘을 안 쓰고 있었구나. 하지만 이건 너무 힘들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 죽을 거 같아!"


하고 자세에서 내려왔다. 생각하기 전에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반문했다.


"죽을 거 같다고?"


그리고 체리 언니가 옆에서 말했다.


"죽을 거 같으면 안 돼, 살아야지!"


체리 언니의 말에 또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죽을 거 같다고 말했지?


힘들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예전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닌데. 일상에서도 그런 말을 할 정도로 힘들게 느껴지는 상황 속에 있지 않은데. 그 말을 내뱉을 만한 특정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과거 힘들 때마다 반복적으로 되뇌었던 생각의 관성이 이렇게 센 건가 싶었다. 이제 거의 하지 않지만, 아직 내 안에 남아있는 생각이 메아리친 게 아닐까. 그럼 아직도, 오랜 습관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자유롭지 못하니 답답해해야 할까?


그렇지만 스스로 뱉어 놓은 말에 놀랐다는 것은, 달리 보면 죽을 거 같다는 그 말이 이제는 자주 하지 않는 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내 안에서 그렇게 큰 힘을 가지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보다 그 말과 생각에서 훨씬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리고 이건, 포기하고 싶었지만 엉덩이를 바닥에 딱 붙이고 내 할 것을 하는 연습을 명상으로 해온 결과였다.


이 모든 생각들을 짧은 시간 동안 하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엄청 울컥하거나 기쁘거나 그런 것보다도, 정말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자잘하게 골고루 섞여 뭐가 뭔지 모르겠는 느낌이랄까. 기분이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아까와는 달리, 매트 위에서 내 모습 하나를 보고 사유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일부러 분석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무의식 중에 내뱉은 말이 어디로부터 온 것이고 내가 그 말로부터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며 전체를 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내가 지금,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메타 인지'니 '인공지능'과 같은 말에 겁먹거나 압도되지 말고 할 거 하라고, 수련생들에게도 누누이 이야기한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나와 연결하는 기회를 가지려고 수련을 하는 거였지, 싶었다. 내 할 것을 하는 연습, 그리고 나를 봄으로 얻는 자유로움.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남은 수련이 꿈처럼 흘러갔다.


"글 올리면 알려줘."


매트를 들고나갈 때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 문자 보낼게요,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명랑해져 있음을 느꼈다. 아침보다는 조금 더워진 날씨로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다. 유부가 많이 들어가 통통한 김밥을 사들고 천천히 걸었다.


2023.7.9 요가실록 <끝>





• 수업 의도 (intent): 포레스트 요가에서는 수업 시작 때 의도를 꼭 수련생들에게 전달한다. 수업을 안내하는 사람의 경험담이 녹아들어 간 수업 주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필자는 포레스트 요가 수련과 안내를 시작하기 전에도 수업 의도를 수련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며 수업을 해왔었다. 그리고 물론, 좋은 수업은 수업 의도의 유무와 상관없이 수련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 브롤가 How To (영문): https://www.forrest.yoga/portfolio/brol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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