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실록, 세 번째 이야기
전날 잠을 거의 못 잤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코 스프레이를 자기 전에 코 안에 뿌린 것이 머리를 아프게 한 건 아니었을까. 억울하다. 덥고 습해지니 알러지 비염이 심해져서 받아온 건데, 코가 막히지 않는 대신 잠을 잃다니. 잠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멍한 상태로 요가원에 갔다. 출발이 늦어 수련 시작 5-6분 전에 간신히 도착. 신발을 벗자마자 본 사람이 너무 오랜만이라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경기도에 사는 나나* 언니였다.
"꿈속에서만 보다 만나네!"
"언니! 안 그래도 언니 생각 했었는데."
수련실에 들어가니 나나 언니만큼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선생님도 있었다.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많이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여서 정말 좋았다. 주말에 수련을 오니 평일 수련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잠을 못 자 멍해서인지 반가움에 기분이 붕 떠서인지, 신희 선생님의 수업 의도는 듣자마자 잊어버렸다. 그 순간 생각했다.
'아, 의도를 기억해야 글에 쓸 텐데.'
그리고 연이어 불량한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러면 어때?'
잊어버린다고 내가 내 몸 움직여 느끼는 수련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나쁜 수련생이 되는 것도 아닌데. 죄를 짓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뭐,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몸은 사실 천근만근이었다. 이틀 전에 웨이트 운동에서 해본 푸쉬업으로 가슴 주변이 여태 뻐근했다. Sitted Side Bend에서 되는 만큼만 팔을 뻗었다. 한 다리를 쭉 펴고, 다른 한 다리는 몸 쪽으로 접은 상태에서 상체를 기울이는 자세이다. 펴진 다리 쪽으로 몸을 기울인 뒤, 신희 선생님의 손이 안내해 주시는 방향으로 가슴을 펴고 숨을 쉬었다. 숨이 더 많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기울기를 할 때면, 내게 편한 것보다 더 깊은 각도의 기울기로 하는 경향을 발견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 내지는 어떤 자세든 깊게 하려는 습관 때문이다. 왜 그런 마음과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안주하여 도태되지 않겠다는 다짐, 늘어져 있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에 반하여 도전하고 성장하려는 욕구가 있다. 한때는 그런 마음이 다 애씀(struggle)이라고 생각해 놓아버리려고 한 적도 있다. 요즘엔 어떤 마음에 어떤 이름표도 붙이지 않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그렇게 하니 뭘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급해지거나, 고쳐야 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나 자신이 갑자기 싫어지고 화가 나는 일이 없다.
다른 때 같으면 잘하고 싶어서, 또는 습관대로 움직이며 불필요하게 힘을 주는 곳에 힘이 들어가 있게 마련인데, 피곤하기도 하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되는 만큼만 하되, 할 수 있는 만큼은 전부 했다.
인텐시브 수업은 두 시간 반의 긴 수련이다 보니, 역자세가 빠지지 않는다. 벽 앞으로 매트를 붙이기 위해서 벽 바로 앞에 앉아있던 나나 언니의 옆 자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우리의 건너편 창가 쪽에 자리를 잡은 체리** 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짓했다.
"자리 좀 만들어줘."
벽 앞의 빈 공간을 찾지 못한 다른 수련생이 매트를 들고 서 있었다. 별생각 없이 매트를 들고 일어났다. 체리 언니가 있는 창가 쪽 벽으로 갔다.
"아니, 네 옆에 자리를 만들어주라고."
아, 그 뜻이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매트를 나나 언니 쪽으로 붙여서 공간을 만들었다. 마침 다른 쪽에서 자리를 만들어주어 그 수련생은 그쪽으로 갔다. 체리 언니가 한참 웃는 소리가 들렸다.
선 자세에서는 뻐근한 가슴께를 더 풀고 싶어서, 이틀 전에 했던 오픈북 스트레칭에서 가슴이 열렸던 느낌을 기억하며 Triangle(트리코나아사나: 삼각 자세)을 했다. 평소 수련에서 같은 자세를 할 때보다 훨씬 시원했다. 어깨가 아닌 배에서 회전이 일어나니 가슴이 더 열리고, 그러니까 가슴이 열리는 방향으로 팔이 저절로 열려서 상체가 시원해지는 느낌. 역시, 호흡과 함께 일어나는 몸의 열림을 따라가는 것은 언제나 옳다 (삼각 자세에서 많이들 하는 실수가 몸의 열림보다 모양을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여겨 가슴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어깨만 제껴 팔을 넘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 자세가 주는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암발란스인 바카아사나는 블럭 위에 머리를 대고 해야 했는데, 목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발아래 블럭을 두고 했다. 블럭에 머리를 대더라도 앞으로 무게가 쏟아지지 않도록 주의하면 목이 괜찮겠지만. 수업에 어시스트로 들어온 베리 선생님이 다가와서 말했다.
"블럭 머리에 대고 하는 거예요."
"아는데,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아, 진짜요?"
팔로 균형을 잡으며 배를 들고, 다리 힘을 끌어올리느라 - 영끌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안내하는 수업이 아닌 수련 중에, 자세를 하면서 말을 하려니 이렇게 힘들 수가 없다.
나는 대체로 하라는 대로 잘 따라 하는 순한 학생이지만, 몸 상태가 영 아니다 싶거나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는 내 결정을 우선으로 한다. 이럴 때 보면 참 꼰대다 싶기도 한데, 요가를 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내 결정보다 선생님의 말을 우선적으로 따르라는 가르침을 받거나 가르쳐 본 적이 없다. 그런 게 요가라고 배웠었으면, 진작에 때려쳤을 것이다.
두 번째 바카아사나에서는 머리를 블럭에 두고 했다. 그렇게 하라고 하는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도에 머리를 대지 않고 오랜만에 하는 자세를 몸과 만나게 해 준 덕분에, 두 번째에서는 머리를 블럭에 밀어 목에 부담이 가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블럭에 머리를 대는 일은 벽에서 핸드 스탠드를 연습할 때 일어났는데, 정말 힘들었다. 안 되는 역자세를 하느라 머리에 피가 쏠리는 등의 문제보다, 목을 벽에 무차별하게 밀어대는 무지막지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목이 참 애를 쓴다 싶었다.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으니 배를 들어 다리를 올리기란 참으로 요원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는 거지?!"
"글쎄, 나도 모르겠어."
헤매는 건 옆에 있는 나나 언니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보다 훨씬 오래 수련하고 몸을 잘 쓰는 사람이라 금방 해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부럽다거나,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주 예전에 막 요가를 시작했을 때는, 사람들은 다 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이 너무 분하고 화가 나고 그랬었다. 이제는 안다. 핸드 스탠드를 한 번 해내게 된다고 매번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매번 할 수 있게 된다고 더 행복해지거나 삶이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자세를 몇 번을 해봐도 안 될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하다 보면 늘기 때문에 계속 절망에 빠져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속으로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핸드 스탠드 못한다고 세상이 망하지는 않아.’
자세의 성공 여부를 떠나 마음이 괜찮을 때, 삶은 무던하고 평온하게 흘러간다.
"설마, 다른 사람 자리 만들어주고 니 자리를 빼라고 하겠니."
수련 후, 메밀 막국수 집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체리 언니가 말했다. 나나 언니와 셋이서 메밀 전과 동치미 막국수를 호로록 먹었다. 전은 바삭바삭하고, 막국수는 담백하고. 뭔가 아쉬워서, 일행이 한 명 더 오고 난 뒤에 전을 한 접시 더 시켜서 먹었다.
"오후부터 비 온다던데."
"아이, 비 오면 역에서 우산 사가지 뭐."
어쩐지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 무더운 낮이었다.
2023.7.22 요가실록 <끝>
* 쓰다 보니 언니들이 자주 등장할 것 같아서, 각자의 선호도를 반영한 별명을 붙였다.
** 요가실록 02에서 수련실 가운데에 앉았던 언니이다. 02에는 체리 언니와 역자세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피치 언니가 나온다. 요가실록 01에서 함께 했던 언니는 레몬이다. 01, 02 본문에도 모두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