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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Oct 17. 2024

너 아니면 어쩔뻔했어!

산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산이 하나 있었다. 바로 진안의 마이산이다. 마이산은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암만 봐도 내가 키우는 반려견 홍시의 쫑긋한 귀로 보였다. 그래서 ‘저 귀여운 산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추운 어느 겨울날에 홍삼으로 유명한 진안에 '홍삼 스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한겨울에 몸을 뜨끈하게 담그고 다음날 등산도 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우리는 등산 채비를 하여 진안으로 떠났다.

      

우리는 홍삼 스파를 즐긴 후 다음날 아침 일찍 마이산으로 향했다. 호기롭게 찾아온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주차장 입구에 써진 당황스러운 안내문이었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입산 통제 기간'이라는 것이었다. '입산 통제 기간'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도 몰랐기 때문에 사전에 알아볼 생각도 못했었다. “설마.. 설마... 진짜..?”라는 말만 반복하며 그 자리에 서서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진짜였다. 남편도 나도 여행 시에 그렇게 많은 계획이나 준비를 하지 않는 성향이라 생긴 일이었다. 


입산통제 문구 앞에 서서 그제야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정말 안되나?’, ‘주변에 다른 갈 곳이 있나?’ 그러다 발견한 사실은 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겪어도 절대 부서지지 않았다는 ‘신비의 돌탑’까지는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눈이 많이 내린 후라 눈이 쌓여서 꽁꽁 언 상태였고, 신비의 돌탑은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신비의 돌탑은 커다란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절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어떻게 저 돌들이 안 무너지나 싶어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절벽도 멋있고 눈이 쌓인 광경도 멋있었다. 감탄하며 탑과 그 주변을 올려다보는데 '쩍!' '와장창!' 하는 소리가 골짜기에 요란하게 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절벽에 길게 늘어져있던 고드름이 땅으로 낙하하는 소리였다. 다행히 고드름이 떨어지는 영역까지는 안전선을 쳐놓아서 관광객들에게 떨어질 일은 없었지만, 정말 아찔했다. ‘이래서 겨울에는 입산 통제를 하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탑이 있는 곳 위로는 이성계가 기도를 드렸던 절이라는 은수사가 있었다. 그곳까지도 허용이 된다고 하여서 올라보기로 했다. 조금 가파른 경사로였는데 눈이 쌓여서 난간을 잡고 올라도 발이 미끄러져 오를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남편이 아이젠을 챙겨 와서 신발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랐다. 조금이라도 경사가 있는 길은 아이젠을 껴도 미끄러움이 느껴져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아서 정말 무서웠다. 

   

겨울 산행은 이렇게 안전에 위협이 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때문에 어느 정도 풍문으로라도 후기를 많이 듣고, 알고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겨울 산행에서는 필요한 장비도 아끼지 말고 모두 챙겨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직 등산을 그렇게 많이 해보지 않은 나 같은 왕초보 산악인은 전문적인 도구를 챙기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다. 등산 초보 주제에 괜히 과하게 허세 부리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첫 산행에서 스틱과 등산화는 초보라 해도 필수라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첫겨울 산행 시에는 아이젠 정도는 필수라는 것을 배웠다. 


산이라는 곳은 기상 상황과 난이도 등 가보고 겪어봐야만 알게 되는 변수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여느 취미처럼 주렁주렁 장비부터 장만하는 초보와 실용적이고 간단한 장비만을 갖춘 고수가 대조되는 양상과는 차이가 있다. 등산은 고수일수록 자신에게 맞는 용품, 안전을 위한 도구, 컨디션 조절을 위한 준비물,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아이템까지 알차게 갖추고 있다. 그러니 산행을 하다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준비물, 그중에서도 특히 안전과 컨디션 조절을 위한 준비물은 갖추는 것은 망설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등산 경험이 늘어날수록 자신에게 더 필요하고 잘 맞는 것들이 생겨나거나 변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일지 조금씩 알아가며 차근차근 갖추어 가는 것이 좋겠다.


아마 마이산 산행에서 꽁꽁 언 겨울 산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못 한 상태에서 바로 등산을 시작했다면 준비가 부족해서 여러 가지 불편한 일이나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것이다. 어찌어찌 다녀온다 해도 긴장한 탓에 다녀온 뒤로 앓아누웠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렇게 살짝 맛보기로 겨울 산행을 경험하고 온 것이 배움이 되었다. 마이산을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했지만 아이젠을 챙겨 온 남편 덕분에, 아이젠 덕분에 안전한 맛보기 산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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