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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Oct 21. 2024

지금 내가 오르는 곳이 명산

새해맞이 겸, 연초에 생일인 나의 생일맞이 겸 등산을 하기로 했다. 한 겨울이었고, 그날은 눈 예보도 있었다. 산행을 조금 시작하고부터 작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칼바람이 대각선으로 불며 얼굴을 할퀴는듯했다. 그러나 산을 오를 때는 계속해서 열이 나기 때문에 땀이 났다가, 칼바람에 땀이 식었다가,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했다. 그에 따라 외투를 벗었다, 입었다, 지퍼를 열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올랐다.   

   

그렇게 도달한 정상. 고도가 낮은 곳에서도 차갑고 거센 바람이 불어왔으니 '정상은 얼마나 추울까?' 하며 올라온 정상. 역시나 눈바람이 매섭게 불어와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생일파티할 때 썼던 왕관을 쓰고 생일 기념 등산 인증샷을 남기려 했는데 너무 차가운 칼바람에 그냥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좀 쉴까?’, ‘내려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눈에 들어온 특이한 광경이 있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이 반대편에 있는 산의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올라오는 사람마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이 각도, 저 각도에서 건너편의 산을 찰칵찰칵 찍어대는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처음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나 보네’했는데 모두 일제히 건너편의 산을 찍는 것을 보니 ‘저 산이 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 어플을 켜서 찾아보니 건너편에 있는 산은 100대 명산 목록에 있는 산이었다. 고도도 높았고, 멋지기로 인정을 받은 산이라는 것이다. 정상에 올라 느꼈던 뿌듯함이 잠시 흐려졌다. 명산 목록에 있지도 않고, 고도도 낮은 이 산이 초라해 보였고 나의 성과도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춥기도 너무 춥고, 약간 김이 새버린 느낌이었지만 ‘우리도 다음엔 저 산에 가보자’라며 힘을 내어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을 한 후에는 새 단장을 해서 유명해진 예산 시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맛있는 국밥도 먹고, 간식도 사 먹으며 돌아왔기에 아쉬운 마음은 달래졌다. 그렇게 돌아와서 며칠 후 그날 등산 중에 찍은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들을 다시 보니 제대로 보였다. 명산이라는 타이틀을 가지 않아도 내가 올랐던 덕숭산은, 멋진 산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그곳에 가서 정상까지 오른 내가 대견했다. 어질어질하게 숨이 차고 땀이 나는 와중에 눈바람을 맞아 추운 그 순간들을 극복하며 올랐고, 그 눈바람이 히말라야의 눈바람이 아니더라도, 한라산의 눈바람이 아니라도 내가 나의 어려움을 극복해 냈다는 것이 사실이다. 높은 산이 아니었어도 명산이 아니어도 산의 매력은 충분하다. 


목표의 난이도가 어떠하든 나는 도전했고, 성장했다! 앞으로는 낮은 산이라도 명산 목록에 없는 산이라도 그 산이 가진 아름다움을 모두 느끼고 올 것이다. 그리고 도전한 나 자신을 격려하고 대견하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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