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병동에 가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 자살 및 자해, 폐쇄 혹은 보호병동에 대한 트리거가 있으신 분들은 읽기 전 주의 부탁드립니다.
몇 년 전, 사회 초년생 시절이다. 공부만 오래 하다가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의 대표는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고, 직원들을 윽박질렀다. 소싯적에는 직원들을 때렸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이런 회사일줄은 몰랐다. 대표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몸이 아팠다. 배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위나 칼을 만지작거렸다. 타인을 해할 생각이 아니었다. 나를 해할 생각이었다. 몇 번은 손목을 그었다. 밤마다 구글에서 시체 사진을 서치 했다.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때 일을 그만뒀어야 했지만 나는 도저히 가족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싫었다.
업무 스트레스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매일 고객의 전화를 받거나 걸어야 했고, 협력사의 수많은 사람들과 전화를 해야 했다. 어느 날은 나 때문에 회사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대표가 나를 윽박질렀다.
대표는 소리를 지르고 왜 그랬냐, 다 너 때문이니 책임을 져라, 이 막대한 손해를 어떡할 거냐. 나는 그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는 줄 알았다. 애초에 나 같은 사회 초년생에게 그런 막대한 책임이 있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잘못으로 인해 회사가 어려움에 처한 줄 알았다. 실수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가 어려움에 처할 정도는 아니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처방약에 있던 신경안정제들을 한알씩, 한알씩 모으기 시작했다. 노란색이었던 그 약을 세어보는 게 삶의 낙이었다. 꼭 죽어야지. 다짐했다. 50개, 아냐 모자라, 100개, 아직 확실치 않아. 200개를 넘어 300개가 되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스타킹으로 목을 매달았다 신축성이 너무 좋았던 스타킹 재질(?) 때문에 살아남았다. 두꺼운 리본끈으로 목을 맸다가 목을 다쳤다. 여러 번의 음독 시도가 있었지만 죽지 않았다.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연차를 내고 며칠을 쉬었던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신경안정제 300알을 모두 삼켰다.
죽을 줄 알았지. 숨이 잘 얕아지는 것이 느껴지고 내 고개가 꼴딱 뒤로 넘어갔다. 아, 이렇게 죽는 거구나 싶었다. 하루정도를 방치됐을까. 계속해서 잠들었다. 같이 살던 친언니가 나를 발견했다.
"너 뭐야? 술에 취한 거야? 약이야? 말해봐."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약..."이라고만 말한 것 같다. 그대로 언니가 나를 부축해 응급실로 향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응급실 병동 옆자리 아저씨가 너무 시끄러웠던 것만 기억이 나고, 가끔씩 내 얼굴 위로 떠오르는 얼굴들. 나를 보러 온 그 당시의 애인, 상담 선생님, 친언니, 친구의 얼굴들... 내 상태를 살피는 걱정스러운 얼굴들. 웅성웅성 소리만 들려왔었다. 나는 자꾸 잠들었다.
위세척할 타이밍은 놓쳤다고 했다. 뒤늦게 들었다. 하루? 이틀정도가 지났나?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약물 과다복용의 부작용이라고 했다. 나는 바로 어느 병원으로 이송됐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걷지 못했기 때문에 휠체어를 탔다. 입원하시겠냐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병원에서 나는 너무 답답했다. 어두침침했고, 핸드폰은 쓸 수 없었고, 개인 물건은 수건과 속옷뿐이었다. 누군가는 간호사실에 악을 질렀다. 너무 나가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병동 창문에 주먹질을 했다. 간호사가 나를 눕히고 주사를 놓았다. 별 저항 없이 잠들었다.
다음날 엄마아빠가 병원에 왔는데 시설이 너무 안 좋았다고 했다. 고향의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다. 면회를 자주 올 수 있도록 엄마아빠의 가까이에 두고 싶다고 했다. 모 대학병원에서 내 보호병동 일지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