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와 월선의 애달픈 사랑.
사람들은 하고많은 이별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 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니는 내 목구멍에 걸린 까시다. 우찌 그리 못 살았노. 못 살고 와 돌아왔노."
하다가 용이는 울었다. 월선이는 비실비실 도망치려 했다. 매를 치켜든 아버지 앞에서 달아나려는 계집아이처럼. 울음을 죽이려고 이를 악무는 용이 이빨 사이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어느 시 어느 때 니 생각 안 한 날이 없었다. 모두 다 내 죄다. 와 니는 원망이 없노!"
시체를 쪼아 먹는 뫼까마귀같이 노파가 남의 슬픔을 쪼아 먹듯 웃었다.
"정이란 더러운 게지"
"잊어버리는 기이 상수네라. 또 세월이 가믄 잊어지는 거고. 그래 저래 한 세상을 살아보면 눈앞에 보이는 거는 북망산천, 죽네사네하는 것도 젊었일 적의 한때 얘기 아니가. "
걷는데 휘청거리는 아랫도리가 접혀서 땅바닥에 고꾸라질 것같이 보였다.
실제 바람소리는 나지도 않았지만 용이는 바람소리를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