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1)_ 월선이 죽다.

용이와 월선의 애달픈 사랑.

by 제이쌤

대하소설 <토지>를 몇 년째 읽고 있다. 지금은 독서모임 분들과도 또 같이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글이 막 잘 쓰고 싶을 때, 유시민, 강원국, 고미숙 님 등 두말할 나위가 없는 그분들의 글쓰기 관련 책들을 쌓아놓고 몰아서 다시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 중 유시민 님의 책에서 대하소설 토지 예찬을 보고 미루고 미루던 토지를 집어 들었다. 1권이 가장 고비였다. 1권만 두세 번쯤을 읽고 2권, 3권 더디게 나아가 이제 13권까지 다다랐다. 필사도 하고 반복해도 읽고 블로그에도 적고 그렇게 천천히 읽어갔다. 처음에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는데, 읽을수록 그 깊이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통째로 한 세상을 그려놓은 박경리 님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지경에 이르렀고, 그분의 글에 오히려 글을 쓰는 손이 부끄럽고 주춤거려지기도 했었다.


토지의 세상 속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첫 장면에 팔월 한가위의 풍요로움 속에 울부짖는 이들이 묘사된다.


사람들은 하고많은 이별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 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그 고단한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간 이들 생각에 한가위의 풍요로움 앞에 모두 울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비바람 앞에 꺼져가는 등불 같은 조선의 끝자락에, 견뎌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힘없는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아내는 그들은 부자이든 가난하든, 여자든 남자든, 늙었든 젊었든 모두가 한스럽고 처절한 삶을 살아낸다.


그런 시절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은 너그러움, 배려, 여유 등과 같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살인도 저지르고, 산속을 평생 헤매기도 하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또는 빼앗기 위해,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모두의 삶에 그럴만한 사연들이 있다.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들의 삶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세상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며,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도 살아지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인물들 중에 용이와 월선이 있다.

무당집 딸이었던 월선. 용이는 그녀를 끔찍이도 사랑했으나 반대하는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었다. 용이는 강청댁과 혼인하고, 평생 용이의 마음을 가져보지 못한 강청댁은 심사가 뒤틀린 채 산다. 장날이면 월선네 주막을 찾아가던 용이를 알고 강청댁은 월선의 머리 끄덩이를 잡았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월선은 떠었다.




"니는 내 목구멍에 걸린 까시다. 우찌 그리 못 살았노. 못 살고 와 돌아왔노."
하다가 용이는 울었다. 월선이는 비실비실 도망치려 했다. 매를 치켜든 아버지 앞에서 달아나려는 계집아이처럼. 울음을 죽이려고 이를 악무는 용이 이빨 사이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어느 시 어느 때 니 생각 안 한 날이 없었다. 모두 다 내 죄다. 와 니는 원망이 없노!"


월선은 그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런 월선이 떠났다.


시체를 쪼아 먹는 뫼까마귀같이 노파가 남의 슬픔을 쪼아 먹듯 웃었다.
"정이란 더러운 게지"
"잊어버리는 기이 상수네라. 또 세월이 가믄 잊어지는 거고. 그래 저래 한 세상을 살아보면 눈앞에 보이는 거는 북망산천, 죽네사네하는 것도 젊었일 적의 한때 얘기 아니가. "
걷는데 휘청거리는 아랫도리가 접혀서 땅바닥에 고꾸라질 것같이 보였다.
실제 바람소리는 나지도 않았지만 용이는 바람소리를 듣고 있었다.


강청댁이 돌림병으로 죽고, 용이가 다시 부부의 인연을 맺은 건 또 월선이 아닌 임이네였다. 용이의 아들을 임신한 그녀는 용이의 안사람이 되었으나, 임이네 또한 용이의 마음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월선은 멀찍이서 임이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용이의 아들, 홍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우며, 그녀 곁에 있지 않은 그의 여자로 살다. 자식이상으로 홍이를 아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사느냐 안타까워 했지만, 월선에게 홍이는 남편이고 자식이고 그녀의 삶 자체였을지 모른다. 용이는 그녀가 아프다는 소식에도 발 빠르게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들 홍이의 간곡한 청에도 발을 떼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그녀가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이유는 용이 하나였다. 꼭 올 거라는 믿음이 그녀를 조금 더 살게 했다. 용이가 그걸 알았에 발걸음이 더 무거웠던 것일까.


새털처럼 가벼워진 그녀의 몸은 그녀를 안아 무릎에 올려놓은 용이의 옷자락조차 잡을 힘이 없었다. 서로를 내려다보고 올려다았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습니다"

"그러하면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이틀 뒤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초상을 치르고 용이는 사흘을 내리 송장처럼 잤다.


그렇게 이뤄본 적 없고,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서로를 향한 먼 그리움이 그들을 살아가게 했다. 그렇게 사는 삶도 있을 수 있구나.


미련하도록 삶의 이유가 그 남자였던 선과

자신의 자식 하나를 맡겨두고 무책임하도록 그녀를 거두지 못한 이.

세상의 기준으로 월선과 용이의 삶이 비참해 보이고, 이해받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삶이라는 것도 있는 거다.

그녀의 방식으로, 그의 방식으로 그들은 절절히 서로를 사랑했다. 죽는 날까지.


오늘의 토지 읽기는..

가엽게 살다 간.. 월선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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