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다양한 글들을 읽고 있다. 종이책, 오디오북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책들 외에도 이렇게나 멋진 작가님들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
얼마 전 글을 보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ADHD인 것 같아 집중을 잘 못하고 산만해서 엄마가 그것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의 상담 신청이었다. 그리고 작가님은 이 상황에서 상담이 필요한 주체가 아이인지 엄마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하셨다.
내가 놀랐던 포인트는 바로 여기였다. ADHD로 추정되는 아이가 힘든 것이 고민인 건지, 그런 상황으로 인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엄마 자체가 고민인지 말이다.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 나는 첫째 아이에 대한 걱정이 많다. 친구들과의 관계라던지, 자리에 앉아 숙제를 할 때의 집중력이 약한 모습이라던지, 너무 까불고 정신없는 모습들에서 혼자만의 걱정을 계속 키워 왔다. 친구들보다 형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모습들이 나를 걱정시켰다. 밖에 나가서 형들이나 친구들과 놀 때 혹시라도 사고는 치지 않을지, 어른들에게 예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은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다. 내가 아이에 대한 믿음이 너무 없는 걸까. 아이는 잘 지내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나 혼자 걱정 씨앗을 뿌려 혼자 키워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가 결론은 아이를 조금 더 믿어줘야겠다로 이어졌고 조금은 내려놓고 믿음을 주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런 시기에 이런 글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글을 읽었을 때 상담이 필요한 주체는 아이가 아닌 엄마였다. 그리고 그 글 안에 있는 엄마는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생기지도 않은 일들을 앞서서 걱정했다. 엄마, 아빠를 닮았다면 안 그럴 텐데 얘는 잘 자라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너무 어린아이에게 많은 걸 기대하고 바라는 것인가. 수많은 생각들이 이어질수록 나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그러다 학교 참관 수업이 있어 학교에 가서 아이 수업에 참관했다.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학교에서는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특별히 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았다. 그저 보통의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여러 남자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신나게 노는 모습도 보았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보통의 생활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냥 가기가 아쉬워 선생님께 잠시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희 아이가 평소 에너지가 너무 넘치는 것 같아 걱정이 많습니다. 학교에서는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 건가요?"
"어머님,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 정상입니다. 지금 이 나이에 이 정도 에너지도 없으면 그게 더 문제 아닌가요?"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걱정으로 나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수많은 날들을 후회했다. 그 수많은 시간들을 아이에게 더 믿음을 주고 애정을 쏟아주는 시간으로 채웠다면 참 좋았을 텐데.
숙제를 하려고 앉은 책상 앞에서 휴대폰을 보고 물고기를 보고 과자를 먹으며 딴짓하기 바쁜 아이를 보고 있지만 마음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때가 되면 조금 더 차분해지겠지. 어린 시절에 어른처럼 차분하기만 한 아이라면 오히려 그게 더 걱정이겠지. 내가 걱정으로 흔들리고 불안해하면 그 불안감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갈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 또 올라오기 시작할 때는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워본다.
'괜찮아. 나는 우리 아이를 믿어. 바르게 잘 자랄 거고,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깨닫고 나아지는 날이 분명 올 거야. 나는 그냥 기다려 주면 되는 거야. 대신 더 사랑해 주면 돼.'
아이도 엄마에게서 불안감보다는 신뢰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만큼 내가 더 확실히 표현해줘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도 나는 정답을 찾아 가고, 그 과정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