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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쨍아리 Oct 21. 2024

검사와 보호자 그리고 밤

병원에서 밤을 보낸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의 하룻밤 정도를 보통 생각하겠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심혈관내과중환자실. 보호자에게 허락된 건 까만색 1인용 의자 1개뿐이었다. 의자 한 개뿐이라니! 편하게 잠은 자지 못 할 테니, 불편하고도 긴 밤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 밤에 꼭 잠을 자지 않아도 밤이란 건 이렇게 짧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잠으로 밤을 보냈던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밤은 나에겐 항상 짧기만 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금세 아침이었으니. 그래서 뜬눈으로 이렇게 밤을 지새운다면 막연하게 그 시간은 매우 길 거라 생각했다. 물론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냈던 할아버지. 응급실이란 곳은 정신없는 게 당연한 곳이겠지만,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었지 할아버지는 유난히 고단해 하셨다. 중환자실에서 본 할아버지는 짧은 대화만 하고는 바로 곤히 잠이 드셨다. 잠이 든 할아버지 얼굴에 산소호흡기가 어쩐지 익숙하지 않아 어색해 보였다.  



   

환자는 그렇게 잠들었지만, 보호자인 나의 밤은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응급실에서 바로 온 터라 준비하지 못했던 입원 물품들을 사러 매점에도 들렀다. 잠깐이라도 할배가 잠에서 깨서 물이라도 마실라치면, 거동이 불편하니 주름 빨대가 필요했다. 그런 물품들은 다 병원 매점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새삼 얼마나 환자들이 많으면 매점도 이렇게 잘 되어있을까 싶었다. 편리하긴 했지만, 어쩐지 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잠깐 매점을 다녀오니 주무시는 할아버지에게 간호사 선생님들이 이것저것 검사와 기록을 하고 있었다. 시간도 한참 늦은 한밤중이고, 환자들은 다 자고 있는데도, 의료진들은 밤을 잊은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잠깐 내가 자리를 비웠던 사이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 아차 그게 아니었다. 여긴 중환자실. 그래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위중한 환자였다. 그래서 시간을 막론한 검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계속 그렇게 이어지던 확인과 검사들 사이사이에 잠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다음 검사가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니 누워있는 그 상태 그대로 대부분의 검사가 지나갔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나는 졸린 눈을 크게 떠가며 옆을 지키려 했다.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나도 보호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게 새벽이 한창이던 시간. 다음날의 첫 회진을 준비하는 검사가 시작되었다. 지겹게 길 것이라 생각했던 밤이 지나간 것이다. 내 예상에 비하면 정말 순식간의 첫날 밤이 지나갔다. 환자들 머리맡에 하나씩 달린 모니터에서 나는 소리에 익숙해지고 잠깐씩 쪽잠을 자는 것에 익숙해질 때쯤 그 밤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한 번 겪어낸 그 밤은 내가 보냈던 무수히 많은 밤과는 정말 아주 달랐다. 생각보다 짧았고, 쪽잠만 자도 생각보다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았다. 물론 찌뿌둥하기만 하고 개운한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말이다. 허나 걱정은 더 가벼워지지도 않고 계속 마음속에 꾹 눌러 앉아있었다. 앞으로의 일들도 그러하겠지. 병원이라는 곳과 같이 새로운 환경에서는 아마 모든 일이 내 예상과는 다를 것이다. 내가 함부로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라며 가벼운 예상을 하지 못할 만큼 새로운 것들이 나를 찾아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이 병원 밖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할아버지도 나도 우리 가족도 모두 앞으로의 일들은 직접 닥쳐오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일들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밤이 항상 잠을 자지 않으면 길었다고 무작정 길 것이라 걱정했던 것처럼, 과거의 힘들었던 일들만 자꾸 생각하며 앞으로의 걱정을 하는 건 아닐까. 그럴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래 이 밤을 겪으며 앞으로의 할아버지 걱정은, 우리 가족에 대한 걱정은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껏 우리 집안의 걱정이 곧 내 걱정이었던 세월이 벌써 30년이 훌쩍 지났다. K 장녀인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마 앞으로도 끝없는 걱정에 걱정을 하면서 장녀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마 이 밤이 생각나는 날이면 그 걱정을 조금은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서의 두 번째 날을 맞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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