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끊어질듯한 보람
연결된 이야기
출발 당일 아침, 난 알람보다 일찍 일어나서 설치기(?) 시작했다. 주중을 꽉 채워 보내는 우리는 주말은 대개 느긋하게 시작하는 편인데, 캠핑을 시작하게 되니 부지런해져야 했다. 아네스(=아내)는 아침 일찍 SSG와 컬리를 아이스박스로 옮겨담으며 이게 웬 난리인지 하는 표정이었고, 난 괜히 눈치를 보며 마지막 짐 하나까지 내 손으로 나르며 더 열심히 움직였다.
이것저것 사다보니 뭘 얼마나 샀는지 계산이 안돼서 구글시트에 기록했다. 마트에서 '담은 것도 없는데 영수증 합계 왜..?' 할 때처럼 모아놓고 보니 247만원이 들었다. (아네스도 처음 보겠..) 솔직히 무리한 아이템은 없다. 더 좋은 쿨러, 테이블, 랜턴, 난로를 사고 싶었지만 구글시트 SUM 수식이 알아서 제동을 걸어줬다. 리스트는 아래-
▷ 텐트 - 아코플라 미니오토큐브 사하라(블랙)
▷ 자충매트 - 고투 레트로 더블, 싱글
▷ 침구 - 깃든 이블&패드(베이지)
▷ 아이스쿨러 - 밤켈 35QT(샌드)
▷ 워터저그 - 밤켈 9.4L(샌드)
▷ 하드박스 - 하이브로우 박스 2개+상판, 롬버스 렉
▷ 랜턴 - New루메나플러스 LED
▷ 체어 - 콜맨 컴팩트 폴딩체어(블루/옐로우)
▷ 테이블 - 아베나키 우드롤테이블 코모도L
▷ BBQ체어 - JEEP 와이트(블랙/탄)
▷ 난로 - 파세코 캠프25S (아이보리)
▷ 등유통 - 노스필 제리캔 10L
▷ 서큘레이터 - 파세코 PCF (블랙)
▷ 야전침대 - 네이처하이크20년형 (베이지)
▷ 행어 - 몬테라 이음2 행어
▷ 그 외 다이소와 캠핑숍 이를 모를 아이템 다수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캠핑짐을 처음 차에 싣다 보면 마음처럼 착착 들어가지 않는다. 뒷자리는 아들 자리 남기고 이미 폴딩을 했고 하드박스, 아이스박스, 폴딩체어 등 딱딱하고 큰 짐들을 싣고 나니 나머지는 끼워넣고 눌러 넣기 일쑤. 전동 트렁크는 삐익(이거 못 닫아요 이 양반아)거리며 다시 열리고, 우루루 꺼냈다가 다시 쌓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룸미러로 후방이 보인다면? 합격-
캠핑에 도움을 준 후배 B는 첫 캠핑장을 추천한 1인이기도 한데, 출발하기 며칠 전 같은 일정에 빈자리가 나서 내 옆옆 사이트로 급 예약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연히 반갑고 든든한데 한 편으로 부담스러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 서로 텐들이(텐트 집들이) 하면서 장비 구경도 하고 밥도 먹고 여유있게 담소 나누면 더없이 좋겠지만 나에겐 바로 그 '여유'가 없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 아니나 다를까 B는 우리보다 1시간 늦게 도착해서 30분 일찍 세팅이 끝났고, 아들은 B의 텐트에 놀러가서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땡큐).
지금도 캠핑장 도착해서 자리를 받으면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온다. 리버뷰를 코 앞에 두고 난생처음 파쇄석 사이트에 피칭하려니 어찌나 들뜨던지.(하지만 차분한 척했다) 두 달도 안된 새차 여기저기에 고리를 걸어 텐트를 치는 게 내심 걱정됐지만 점점 모양을 갖춰가는 걸 보니 수영장 갓 뛰어든 아들처럼 신이 났다.(하지만 차분한 척했다) 차에 침구를 펴고, 테이블을 세팅하고, 선반을 정리하고, 감성 충만한 알전구를 달았다. 지금은 물 흐르듯 진행되는 이 과정이 첫날은 2시간이 넘게 걸렸고, 그게 끝도 아니었다. 이렇게 놔보고 저렇게 걸어보고, 이 방향이 불편하면 저 방향으로 옮겨보고 또 감상하느라 의자에 앉을 시간이 없었다.(하지만 차분한 척했다) 그땐 더더욱 가져간 모든 아이템을 세팅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있었으니, 얼마나 어수선해 보였을지 상상이 간다.
세팅 끝내고 리버뷰 그윽하게 바라보며 커피 마실 줄 알았던 오후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하늘은 이미 어둑해져 북한강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땐 캠핑장이 자체 조명으로 밤에도 총총히 밝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캠핑장 나름이고, 파이브이모션 캠핑장은 각자의 캠핑라이프 모드를 존중하는 리버럴(?)한 곳이었다.
저녁 식사는 모듬회와 부대찌개. 메뉴와 전혀 상관없는 플라스틱 샴페인 잔에 술을 따라 마시며 첫 캠핑을 기념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했던 피칭 시간이 지나가서인지 술 한 잔, 회 한 점에 온 몸의 세포가 반응했다. 캠핑이 익숙했던 신혼부부 B는 스테이크를 구워 가져다주었고, 난 페트로막스 에나멜 접시에 더 눈이 갔다.
저녁 설거지까지 한 바탕 지나가고 B 부부가 다시 놀러왔고, 좁은 텐트에 오붓이 모여 앉아 사는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회사커플이라 아내도 B와 아는 사이였고, 결혼식 후 처음 만난 B의 아내도 밝고 건강한 에너지로 아들과도 잘 놀아주었다. 밖이 꽤 추웠는데 파세코 난로는 따뜻했고, 밤이 깊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자기 전 양치를 위해 아들과 화장실에 갔는데, 만취한 캠퍼가 있었다. 공동 화장실에서 이 닦는 게 싫은 아들을 애써 달래고 있었는데 잠깐 긴장. 다행히 비틀대는 와중에도 세면대를 차지한 아들을 살갑게 대해주었고 그때 밖에서 "야~ OOO! 얼른 나와~"란 소리가 들렸는데 유명한 배우이자 방송인의 이름이었다. 목소리도 마스크 위 얼굴도 그가 맞았다. 나가면서 보니 가장 프라이빗한 사이트, 그리고 그 앞에 주차된 벤츠 지바겐 화이트. (이런데서 볼 줄 몰랐지만 즐캠하세요)
자정 즈음, 아네스와 아들은 차 안에, 나는 야전침대에 누웠다. 그날 밤 별이 떴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나 잠을 설쳤다. 당시 타프팬이 없어서 서큘레이터만 돌렸는데 야전침대 아래 올라오는 냉기를 느끼고 나니, 차 안까지 난로 온기가 안 갈까 서큘레이터를 계속 옮겼다. 그리고 그땐 등유난로가 처음이라 새벽에 난로가 한 번 꺼졌는데(자기 전 Full 급유를 해야 아침까지 충분히 돈다) 급격하게 내려간 온도와 다시 켤 때 시큰한 등유냄새에 놀라 잠이 깨버렸다. 야전침대에 멍하니 앉아 환기 체크를 하며 이 밤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랐다. 그리고 아침까지 매 시간마다 깼던 것 같다.
아침 7시가 넘어가자, 이제는 일어나도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왔다. 살짝 시린 코 끝과 텐트에 서린 결로를 만지며 집이 아닌 곳에서 보낸 하루가 실감이 났다. 그리고 캠핑장 전체를 혼자 산책하며 모두 무사한 밤이 지난 걸 감사했다.
한시간 뒤, 아네스와 아들이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준비했고 숙련된 B의 텐트에선 토스트가 배달되어 왔다. 커피를 마시며 결혼 7주년을 소박하게 축하했고, 루미큐브를 하면서 어제 못한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그러는 동안 짬짬히 철수는 계속되었고, 겨울 날씨에 땀을 흘리며 짐을 모두 실었다. 사이트를 깨끗하게 비우고 나면 피칭 전만큼 묘한 쾌감이 있다. B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우린 돌아오는 길 맘에 드는 카페에 들러 아내와 첫 캠핑 리뷰를 하고(철수 후 카페는 이때부터 우리 루틴이 되었다) 다시 외곽순환을 돌아 집에 돌아왔다.
간단히 정리를 하고 소파에 기대앉으니 허리가 정말 끊어질 듯 아팠다. 우리 텐트는 입구 높이가 1.4미터, 텐트는 1.8미터 남짓으로 낮은 편인 데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구부정하게 들고 나르고 옮겨서인지 허리 한 번 제대로 피질 못했나보다. 손은 또 왜 그리 메말랐는지, 핸드크림을 삼투압처럼 빨아들였다.
그렇게 두 달여를 준비한 첫 캠핑 분투가 끝났다. 보람찼다. 욱신거리는 허리를 매만지며, 다음 캠핑장을 검색했다. 한 번 해봤으니 피칭시간은 줄어들 거고 우린 더 여유롭겠지. 2박 3일을 간다면 더 좋지 않을까. 다음엔 뭐가 필요하고 뭘 고쳐야 할지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 찼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아들은 예정대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처음 교내로 들어가는 뒷모습에 코 끝이 찡했고 ‘우리들은 1학년’이란 말은 부모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후의 캠핑라이프에서 월화수목금 방과 후 학원이 끝날 때까지 ‘캠핑예약 불가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필 겨울, 첫 캠핑 분투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