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들과 패밀리 캠핑 적응기
캠핑장에 가면 엄마 아빠를 따라 온 꼬맹이들을 자주 본다. 그곳엔 아이들이 메뚜기를 잡고, 밤을 줍고, 물고기와 물장구친다. 꼬물거리며 풀숲을 걷고 나뭇가지와 노는 모습은 그 자체로 캠핑이 주는 힐링이자, 동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이다. 강아지처럼 신난 표정으로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캠핑장 풍경이기도 하다.
아들과 캠핑을 하게된 건, 초등학교 입학식 일주일 전, 8살 되는 해 2월부터다. 그때까지 아들이 우리집이 아닌 곳에서 밤잠을 자본 건 친척집이나 여행지 호텔, 에어비앤비 숙소가 전부였으니 차나 텐트에서 잔다는 건 상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아빠, 나 거기서 뭐해?
캠프닉에서 이불 깔고 누웠을 때만 해도 색다른 경험에 신났던지라, 처음 자고 올거라 했을 때 아들은 당연히 좋아했다. 얼마나 먼지, 가서 뭐하고 노는 지, 뭐 먹는 지 정도가 궁금한 정도. 일단 가면서 햄버거를 먹고,저녁엔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엔 간단히 라면을 먹을거라 하니 감탄 연발. 그리고 불도 피우고, 끝말잇기도 하고, 보드게임도 한다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엔 누구랑 같이가?
첫 캠핑에서 함께 한 후배 B는 일전에 우리 집에 놀러와 닌텐도 마리오 카트를 난생 처음 경험하게 해 준 일명 '마리오 삼촌'이라, 다시 만나 놀 일도 신나 했다. 도착한 후 나와 아네스(=아내)는 잠시 핸드폰을 쥐어 주고 피칭에 여념이 없었고, 그 뒤로도 후배 B 부부의 사이트에서 화로에 불도 붙이고, 불꽃놀이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난관의 시작,
나 안씻으면 안돼?
그렇게 한바탕 저녁을 보내고 잘 시간이 되자, 난관이 시작됐다. 공동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아야 했는데, 아무리 깨끗하게 관리된 캠핑장도 여럿이 사용하는 공간이니 집만큼 깨끗할 순 없었다. 아들에게 샤워장은 춥고 무서웠고, 개수대엔 음식 냄새가 났으며, 여럿이 써야 하는 공동 화장실 세면대 물은 깨끗하지 않아 보였다. 설득과 실랑이가 이어졌고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나는 8살 때까지 재래식 화장실을 쓰고, 마당 한 켠에서 양은대야에 세수를 했지만 도시와 아파트만 익숙했던 아들에겐 서툴고 꺼려지는 경험일 수밖에.
그 후 몇 번의 캠핑동안 실랑이는 계속 됐다. 나는 캠핑장 수도가 집에서 쓰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으며, (근거는 없지만) 자연에 가까워 오히려 더 깨끗한 물을 쓴다고 설득했다. 꼬박꼬박 양치컵을 챙겼고, 붐비거나 평소보다 덜 깨끗한 곳에선 텐트 곁에 세면용 워터저그를 따로 썼다.
아들은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젠 신나게 놀고 땀 한바탕 흘리면 샤워도 곧잘 한다. 워터저그에 힘들게 길어나른 물은 주로 물총놀이로 더 소비됐지만, 밖에서 씻어도 된다는 경험은 아이를 자연과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나도 자기 전 아들과 손잡고 씻으러 가는 시간이 좋다.
아빠, 나 더워 & 추워
에어컨과 보일러가 없는 텐트에서의 야영은 선풍기와 난로가 있더라도 집보다 덥고 습하며, 집보다 춥고 건조하다. 집에선 아네스가 언제가 아들에게 완벽한 온습도를 관리하지만 캠핑장에선 그럴 수 없다. 아들이 덥거나 추워하면 아네스는 예민해지고 난 바짝 긴장한다. 한번은 무더위가 시작된 7월 첫 주말, 용감하게 캠핑을 잡았다가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반나절 만에 돌아온 적도 있다.
캠핑장이 덥거나 추운 곳이라고, 그래서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항상 여벌 옷을 여유있게 챙기고, 더울땐 선풍기에 얼음 물수건을 주고, 추울땐 난로를 충분히 틀고 바닥에 물을 붓는다. 아네스는 밤새 이불을 차는 아들을 쫓아다니며 부단히 이불을 덮어준다. 이제는 캠핑장에서 신나게 놀고 늦잠까지 푹 자는 아들이 참 귀엽고 고맙다.
이젠 적응 끝-
나 방방장에서 놀고 올게!
캠핑 초반 아들의 가장 가까운 메이트는 동갑 사촌이었다. 형네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가면 밥먹을 때 말고는 정말 손이 안 갈 정도로 둘이 잘 붙어 놀았다.
다만, 우리 가족끼리의 캠핑에선 텐트 주변에서만 놀았고 우리가 요리나 정리를 할 때엔 핸드폰 시간이 잦았다. 하지만 요즘은 사이트 피칭 할 때도, 요리를 할 때도, 우리가 커피 한 잔 하며 쉴 때도 아들은 캠핑장에 온 다른 또래들과 노느라 바쁘다.
방방장(트램폴린)에서 놀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하고, 공놀이를 하기도 한다. 지난 3년 간 운동장에서 놀아본 적 없는 아들이 처음 본 친구들과 금새 어울리는 모습이 한편으론 짠하기도 한데, 그렇게 붙어 놀다가 철수시간 쿨하게 헤어지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아빠, 우리 유튜브 쇼츠 찍을까?
작년쯤 아들이 유튜브 계정을 갖고 싶다해서 'OOtv'를 만들어 아들의 일상을 올리고 있는데, 캠핑장에서의 놀이는 OOtv의 좋은 소스다. 아빠랑 팩 박기 대결, 화로에서 오로라 불빛 만들기, 여름 캠핑장 수영장에서 숨참기, 가을 캠핑장 숲길에서 밤줍기, 할로윈 캠핑에서 가면쓰고 등장하기 등 여러 경험들을 유튜브 쇼츠로 만들고 올리고 있다. 캠핑장을 간다는 건 OOtv 'New 쇼츠'를 찍으러 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윈윈게임이다.
아빠 나 일기 다썼어!
요즘 아들은 매주 한 편 숙제로 일기를 쓴다. 대개 학교가는 평일보단 주말의 경험들이 많이 담기게 되는데, 캠핑을 다니며 자연스레 주말캠핑이 종종 일기의 소재가 되었다. 재밌었던 장면들이 일기에 그대로 담겼고, 선생님이 재밌는 일기로 반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거나 심지어 캠핑장에서 찍었던 OOtv 쇼츠를 다같이 보기도 했다. (캠핑을 좋아하는) 아빠로서 얼마나 이 뿌듯한 일인지.
이제 곧 10살이 되는 아들이 언제까지 나와 함께 캠핑을 다녀줄지 아직은 모르겠다. 부디 지금의 이 시간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으면 좋겠고, 최대한 오래 가족캠핑을 하고 싶다. 그리고 더 커서는 나와 둘이서 가는 날도 오면 좋겠다.
나를 도와 텐트 한 쪽 끝을 잡아주고, 내가 고기를 구우면 그릇을 세팅해주고, 얼른 같이 치우고 불멍을 하거나 별을 보면서 회사나 학교 얘기를 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일단은 올해 한파가 얼른 지나고 개학 전에 23년 첫 캠핑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