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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l 01. 2020

어느 재수강생의 문자

2020년 1학기는 끝나가지만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서투르고 아주 부족했었다. 비대면 수업이라는 낯선 단어와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15주는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불편한 과정이었다. 몇 주만 지나면 학생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고 대신 마이크를 잡고 혼자 떠드는 모습이 더 익숙해졌다.


교단에 있는 교수에서 인터넷 강사가 되었다. 처음 녹화를 시작할 때는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몇 분을 해야 할지도 암담하고, 준비된 컴퓨터가 잘 버텨줄 것인지도 걱정이었다. 한 번 녹화하고 잘 되었는지 되돌려 보면 더욱 어색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한 번 또 한 번 지나가고 이제 주말이면 습관적으로 컴퓨터와 마이크를 점검하고 있는 나를 발견다. 혹여 소음이 나지는 않을까 늦은 새벽에 할 때는 졸려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이게 정답인지 자문하기에 바빴다.


오늘 첫 반쪽 얼굴로만 학생들을 보게 되었다. 누가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인터넷 강의와 함께 개별 채팅을 하는 과정에서 뭔지 모를 서로의 느낌(?)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날을 기약하며 미리 학생 얼굴과 이름을 보고 또 보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마스크에 반쯤 가려진 그들의 눈빛과 교단에 서 있는 내 반쪽 눈빛 사이에는 어색함 뿐이었다. 농담이라도 할라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더욱 심기 불편한 침묵만 흘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먼저 이해하는 마음이 앞서 있다는 점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스크 사이에 감춰진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험이라는 쓸데없는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나도 그들도 이제 게임 오버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간 것이다. 참 서글프게 지나갔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실컷 떠들었다. 그래도 할 말이 많다. 떠들 기회가 없다는 점이 제일 아쉽게 느껴진다. 학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만 큰 위안을 받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 반대로 학생들의 위안은 어쩔까…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할 수 있는 게 생각이 안 난다. 큰 장애물 하나 때문에 해 줄 수 있어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안타까운 생채기만 남는다.


작년 1학기에 C학점을 맞고 이번에 재수강 한 학생이 문자를 보냈다. 단 번에 읽은 만큼 미안한 마음 한가득 생겼다. 비대면 수업이라는 핑계로 제대로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 피로에 지쳐 시간에 쫓겨 만남이 없어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컴퓨터를 켜고 녹음을 했다. 물론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지난 수업에 비하면 만족감은 제로에 가깝다. 자기 검열로 치자면 정말 처참한 수준이다. 그런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넘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재수강 학생의 문자는 내게 많은 숙제를 던졌다. 이 학생에 대한 기억을 한 줄로 쓰자면 이렇다. “남들 조용할 때 과감히 질문하는 학생” 내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질문은 학생들의 유일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피곤하다. 그게 내 의무라고 생각하기에...


이 친구의 말을 기억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자기 자랑질한다고 손가락질당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 느끼는 벅찬 감정을 기록에 남기려는 욕심보다 시간이 훌쩍 지나 서랍에서 다시 꺼내 되새김질하고 싶어서다. 그때 이 학생의 말이 생소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내용을 그대로 남겨본다.


교수님 진심으로 저의 욕심이지만 교수님께서 다음 학기도 계속!!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ㅠㅜ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을 거쳐갔으면 합니다! 학생들에게 질문의 자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시고 진정한 대학 강의라고 느낀 수업입니다! 진짜 이번 학기가 대면을 하지 못해 너무 속상했어요.. 교수님도 답답하셨겠지만 재수강 학생으로 더욱 아쉬웠습니다ㅠ 교수님 다른 학교 가지 마세요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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