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영역을 확장해 더 잘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다이어리, 문구류를 좋아한다.
핸드폰이 없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들, 함께 다이어리를 꾸미던 그때의 좋은 감정을 잊지 못해서일까? 예쁜 노트에 연필로 사각사각 써 내려가는 아날로그함이 좋다. (무한 재생되는 음원보다 자주 판을 뒤집어줘야 하는 LP, 편한 캡슐커피보다 드립커피, 디지털사진보다 필름사진,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좋다.)
해마다 마음에 드는 예쁜 다이어리를 구매해 써왔지만,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라 모아놓으니 산만해 보였다.
그러다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매해 같은 크기로 나오고 사용하기에도 편해서 정착하게 되었다.
2016년부터 모은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아홉 권이 되었다. 책장에 나란히 꽂아놓으니 뿌듯하다.
주로 하는 기록은 필사, 일기, 떠오르는 생각들, 아이들의 성장 일기다. 가족에게 자주 쓰는 편지도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가족 편지들은 한 번에 모아서 보관하므로.)
기록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크고, 나만 본다는 점이다.
나만 보기에 글을 잘 쓸 필요도, 길게 쓸 필요도 없다.
그냥 무엇이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솔직하게 써나갈 수 있다.
초등학생 때 숙제로 쓰던 일기는 강제성도 있고 나만 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좋은 감정으로 남아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선생님께서 한두 줄 적어주시던 코멘트가 좋아서였다.
꽃 모양 얼굴에 팔과 다리가 달린 인형을 사서 이름을 '플라워'라고 지어줬다는 내용의 일기에 선생님께서 "정말 예쁜 이름이구나. 그런데 '플라워'도 좋지만 우리말인 '꽃님이'는 어떨까?"라고 써주신 코멘트가 잊히질 않는다.
5학년 때 팔다리 달린 꽃 인형을 사서 이름을 플라워라고 지어준 나란 아이...(꽃 인형 이름이 꽃이라니!)
그땐 영어로 하면 뭐든 세련되고 예뻐 보였나 보다.
숙제로라도 그날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내 인형 플라워는 잊혔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 글씨도, 5학년 때의 순수함도.
기록의 위기도 있었다. 중, 고등학생이 되면서 입시에 밀려 책 읽기와 기록을 꾸준히 이어 나가지 못했다. (대학생 때는 노느라 바빴다.)
첫 아이를 임신한 후 블로그에 기록하던 육아일기도 둘째가 태어나고부터 끊겼다.
늦은 때란 없으니,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다.
기록이 가져다준 변화는 명백하다.
필사를 통해 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과거의 나와 대화할 수 있었고, 반성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최근 읽은 책에서 추천한 5년 다이어리를 구입해 써 볼 생각이다.
기록의 영역을 확장해 더 잘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의 글에서 벗어나 공유하는 글을 쓰는 용기를 내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