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Second up - 아침일찍부터 오픈 해 일을 시작하다 보니 확실히 카페에는 매일 같이 모닝커피를 사들고 출근하려고 방문하는 단골손님들이 많았다. 모닝 조에는 거의 나와 Roman 혹은 Edmel이 메인으로 바에 섰고, 보통은 2명이 먼저 출근을 해 오픈 시간 30분 전에 모든 브레드와 커피, 차를 준비해야 했다. 미리 이른 새벽부터 매장 안으로 배달된 스콘, 로프, 베이글 등에 브레드 류는 진열하는 품목도 많아서 처음엔 저걸 언제 다 외우나 싶어 겁먹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니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졌다.
중간중간 유통기간도 체크해줘야 했고, date를 표시해두긴 했지만 최대 유통기간은 이틀이라 간당간당한 것들 먼저 팔아치워 버리고, 중간중간 직원들이 아침, 점심 대용으로 먹어 치워기도 한다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은 먹을 거, 마실 거 다 공짜고, 가끔은 일 끝나고 따로 먹을 거를 싸가게도 해줘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음료별 레시피 외우는 게 익숙지 않아서 머신 바에서 음료를 만드는 것보다는 카운터(틸)에서 손님들 응대하는 게 더 편하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까다로운 손님들의 까다롭고도 퍼스널라이즈 한 주문을 받게 되면서 점점 욕먹는 위치에 서기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 M 사이즈의 라떼에 시럽은 3분의 1만 펌프 해주고, 거품은 카푸치노처럼 두껍게.
- 라떼 한 잔. Kosher (유태인들의 청결식품 인증마크) milk로 따뜻하게.
우유 종류도 선택이 가능하니 라떼 한 잔을 시키더라도 skim(None flat), 1%, 2%, whole, almond, soy 인지를 확인해서 제조해야 한다. 거기다 더 빡센 건 틸에 있으면 항상 주문 마지막에 손님의 이름을 물어보고 테이크아웃 잔에 흰색 마카로 이름을 써줘야 하는데.... (제조한 음료가 완성되면 바리스타가 음료 이름을 말하면서 for 블라블라라고 외쳐준다) 손님으로써는 사람이 많을 때 컵에 적힌 이름 보고 가져가면 되니 편하겠지만 영어권자가 아닌 사람이 틸에 서서 이름을 받아 적고 있자면, 진짜 전혀 익숙해지지 않을 듯한 별의별 발음과 스펠링들 때문에 한동한 애를 먹기 십상이다. 거기다 사람이 줄지어 서있다? 진심 사람이 마음이 급해지니 더욱더 상대방이 뭐라 지껄이는지를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 돼버린다. 하나하나 성질 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죽음의 7-9시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한숨을 푹 쉬며 '오늘 왜 이렇게 바쁘냐' 중얼거리면, 이건 바쁜 축에도 속하지도 않는다는 Roman의 속삭임에 더더욱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주택가에 위치한 카페라 보통 나이스 한 분들이 대다수긴 했지만, 유독 말투도 쎄고 주문도 까다롭게 하는 손님 두 명이 기억에 남는다. 그중 한 남자 손님과는 이후 친해져 이름도 외우고 얼굴만 봐도 따로 주문도 안 받고 알아서 커피를 만들어 주곤 했지만.. 문제는 다른 할머니 손님이었다. 본인이 Jewish(유태인)이라는 말을 자주 어필하며 본인 말을 못 알아듣는 거에 굉장히 예민한 할머니였다. 나야 딱 봐도 동양인 얼굴에 영어도 썩 잘하지 못하니, 내가 틸에 서있으면 '동양인은 골칫덩어리야. 영어도 못 하면서 캐나다에는 왜 오는 거야. 하등 쓸모없는 것들.. '라고 아주 크게 혼잣말을 하곤 했다.
나도 나름 한국에서는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인데, 캐나다에서의 나는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반박할 용기조차 없는 쭈구리 이방인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걸 단번에 느꼈다. 할머니의 인종차별적인 중얼거림을 애써 못 알아들은 척 딱딱하게 주문만 받고 끝냈지만, 마음 같아서는 한국어로 속 시원하게 'ㅆㅂ'를 외쳐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다들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했을 때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했던 이유가 이거였나 보다'하고 뒤늦게 깨달음을 얻었다. 코워커 단톡 방, 왓츠앱(Whats app)에 내가 겪고 들은 얘기들을 공유하니, 저런 인종 차별하고 무시하는 이들이 이상한 거라고, 오히려 너는 지금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쓰면서 본인들과 대화를 하고 있지 않냐며 하나같이 위로의 말들을 보내줬지만 여전히 화가 치밀어 올라 '오기'가 더욱더 불타올랐다.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표정들을 곱씹으며 진짜 영어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라는 독기 어린 동기부여가 생긴 시점이랄까. 앞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더라도 당당하게 내 할 말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다짐하며.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모든 상황들을 해쳐나가야 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24시간 일주일 내내 쉬는 시간 없이 잠을 깸과 동시에 공부를 시작하고, 공부하다 스르르 잠드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해야 했다. 캐나다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부, 당당해지기 위한 공부를.
한없이 우울해져 공부에 집중이 잘 안될 때면,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내 방에 달린 쪼마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불빛 없는 언덕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렇게 원하던 해외생활이었는데 힘들었다. 게다가 캐나다의 가을은 뼛속까지 시리고 외로웠다. 누가 캐나다를 세상에서 살기 좋은 나라라고 했던가. 여행의 단면반 본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1년을 살아갈 사람은 그 외롭고 어두운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걸 안다.
창문 너머의 언덕은 매우 어두웠다. 그날 일기에는 그렇게 적었다.
답답해도 어쩔 수 없어. 무시당할 필요도 없고 쫄 필요도 없고 이까짓 터무니없는 말들을 담아 둘 필요도 없어. 진짜 딱 1년.... 내 인생에서 후회 없이 열정을 다 쏟아내 보자. 영어실력이든 경험이든 뭐든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얻어가는 게 단 1이라도 있을 거야. 초심을 잃지 말고 살아보자. 그리고 즐겨보자. 이은지, 내가 세상 누구보다 가장 크게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