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의 삶의 시계는 다르다.
“남편은 오늘 늦게 오는가 보네요.”
“아이는 몇 학년이에요?”
나이를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질문들.
한때는 그런 말에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다.
내 삶의 속도는 따로 있다는 것을.
모두가 같은 시계를 갖고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내 인생은 아직, 계속 진행 중이다.
나는 한동안, 타인의 시선에 무심한 사람이라 믿었다.
남들이 뭐라든, 내가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사회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사는 건 쉽지 않았다.
말보다 더 선명한 눈빛,
말없이 건네지는 뉘앙스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요즘은 늦은 결혼 많잖아.”
“마흔 넘어서 출산하는 사람도 많던데.”
사람들은 쿨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속까지 그렇게 쿨하진 않다는 걸, 나는 안다.
그 말들 속에는 여전히 선입견이 있고,
늦은 선택에 대한 의심이 스며 있다.
특히 나이든 분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요즘은 다양해졌다고 말하지만,
‘마흔 넘은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꿈꾸는 삶’은
여전히 소수고, 그래서 조금 특이하게 보는 시선도 아직은 존재한다.
그 안에서, 멀쩡히 생긴 내가 왜 결혼을 늦게 했는지,
왜 아이가 없는지를 사람들은 속으로 추측한다.
“성격이 까탈스러웠겠지.”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혹시 한 번 갔다 온 건가?”
“진짜 미혼이야?”
말은 안 해도, 대화 중 스며드는 기류에서 그런 생각들이 느껴졌다.
그래서 말 하나 행동 하나도 늘 조심스러웠다.
작은 실수 하나라도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는 확신으로 이어질까 봐.
기혼 여성이라고 모두 성격이 좋고 따뜻한 건 아닐 텐데...왜 미혼 여성에게만 유독 더 빡빡한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 기분이 상할 때가 종종 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애가 몇 학년이에요?”
내 나이를 보고 자녀가 중학생쯤일 거라 여긴 것이다.
학습지 영업사원이 “어머니!” 하며 다가올 때면
나도 모르게 돌아보지 않거나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넘긴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본 적이 없기에 그 말이 아직은 어색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쉽게 단정한다.
‘마흔 넘은 여자는 결혼도 출산도 바라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비혼주의자도, 딩크족도 아니다.
나이든 미혼이나 부부만 사는 삶이라고하여
꼭 확고한 자기만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한 삶은 아닐수도 있다.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되기도 한다. 그저 인생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혼자의 삶에 익숙해졌을 뿐...
나도 다른 여성들처럼 누군가와의 아름다운 결혼을 꿈꿨고, 나를 닮은 아이와 손을 잡고 마트를 거니는
그런 소소한 행복을 그려왔다.
나이가 들었다고 마음까지 늙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때로는 그 바람을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편했다.
원하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말했을 때 왠지 초라해보일까 봐.
그냥 “안 바란다”고 말하거나
아예 아무말도 하지 않는것이
더 잡다한 뒷말도 안 들어도 되고 편했다.
난임 병원이나 난임 카페에 가면
40대 중후반 여성들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움츠러들어 있고,
자신이 난임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 마음을 안다.
말했을 때 돌아오는 시선, 의도치 않은 충고나
무례한 질문들이 생각보다 깊은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꿈꿨다고.
지금도 꿈꾸고 있다고.
내 삶은 조금 느릴 뿐이고,
그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지각생이라고 해서 남들이 당연히 누리는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때를 놓치면 머든지 쉽지 않다는 것쯤은
나도 너무 잘 안다.
혹독히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건 또 아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조금 늦게,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모든 사람의 삶의 시계는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우열이 아니다.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화
《그날 나는 시험관을 멈추기로 했다》
몇 번의 시술 끝에 찾아온 뜻밖의 몸의 이상.
그 순간, 저는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의 육체적·감정적 위기를 들려드릴게요.
제 글은 매주 일요일 저녁 9시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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