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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러닝, 이 또한 훈련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짜증 내지 말자 ㅎㅎ

by 냥냥별


살다 보면 길을 잘못 찾을 때도 있다.




일요일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장거리 훈련을 한다. 15km~20km 정도를 달리면서, 몸이 장거리 러닝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장거리 코스를 뛰어 보고 싶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에는 주로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산을 낀 주로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이 코스 중간에 진짜 '등산'을 집어넣어 버렸다. 며칠 전부터 허리가 우릿하게 아프다더니, 산에 오르면 허리 보강 운동이 될 것 같다나??(진짜 효과 있는 거 맞음?? ㅎㅎ) 완만한 등산로 러닝이 아니라, 지형이 고르지 않고 경사도 제법 심한 산을 오르다니... 아무리 가벼운 동네 산이라고 하더라도 오랜만에 하는 등산이라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무더운 날씨니 말이다.


일단 복장은 평소 러닝 복장이었다. 너무 더워 가볍게 있지 않을 수 없었다. 신발은 트레일 러닝화라서 그래도 등산을 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듯했다. 일단 집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걸어간 뒤, 거기서 우리가 늘 가던 중간 지점까지는 천천히 달리며 올라갔다. 허벅지가 튼튼해지고 있다는 신호를 느끼며, 되도록이면 쉬지 않고 오래 달리기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처음 산에서 달리기를 훈련을 할 때보다는, 쉬지 않고 쭉~ 이어 달리는 거리가 늘어난 것 같긴 하다. 그만큼 내 하체가 튼튼해진 걸까? 아니면 허벅지의 통증을 참는 능력이 향상된 것일까? ㅎㅎ

남편은 그 중간지점에서 나를 다른 길로 인도하였다. 본격적으로 등산코스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일단 입구에서 보기만 해도 이미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남편 뒤를 따랐다. 그런데 몇 걸음 걷자마자 피로가 급격히 쌓이기 시작했다. 나무 작대기 하나 없이 그냥 올라간 우리가 그 가파른 코스를 올라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아까 했던 업힐 러닝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허벅지를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 갔는데, 이건 다음날 아침에 분명히 '아이고~아이고~' 하면서 다리에 알이 배길 각이었다. 그리고 뛰지도 않는데 왜 호흡은 가빠지고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지는지... 그런 우리를 지나쳐 가는 등산객들은 긴바지 긴소매를 입으셨던데, 덥지 않으신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ㅎㅎ 정상까지는 왜 그리 또 멀게 느껴지던지, 500m 밖에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을 봤는데 20분은 걸린 것 같았다. 달리기 할 때는 1km를 5분 안팎에도 뛸 수 있는 데 말이다.




러닝을 하면서 다져진 '끈기(?)' 라고 할까, '오기'라고 할까? ㅎㅎ 힘들지만 끝까지 해내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정상까지 도착했고, 거기서 한숨 돌리며 멋진 풍경을 만끽했다. 등산도 일종의 고강도 유산소 운동이다.

그리고 한번 시작하면 많은 시간을 운동하는 편이기 때문에 칼로리 소모도 많은 편이다. 또 우리가 주로 러닝을 하느라 쓰지 않았던 다양한 근육을 쓰게 되는 것 같았다. 특히 하체근육 강화에는 최고인 것 같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내려갈 때는 쉬운 코스를 선택했다. 천천히 대화하며 내려가니 호흡과 다리 통증도 수그러들었다. 그러자 남편은 거리도 채울 겸, 저번에 갔던 편백나무 러닝 코스를 한 번 찍고 오자고 제안했다. 그 코스는 비교적 완만한 지형이라 나도 흔쾨히 동조했다. 그래서 다시 러닝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다시 악몽의 시작인 줄은 몰랐다 ㅠ.ㅠ




시작길은 분명히 저번에 갔던 그 길처럼 보였다. (사실, 산이라 여기든 저기든 비슷비슷해서 우리가 몰랐던 거였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내리막길만 계속되고, 내가 기억하던 풍경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계속 맞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내가 착각하는 건가 하고 할 수 없이 계속 따라갔는데, 다시 돌아오기 무서울 정도로 내리막이 계속되었다. ^^;; 그러다 정말 생뚱맞은 장소가 나오고 나서야, 남편은 여기가 거기가 아닌 거 같다고 했다.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것이다. 문제는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계속 내리막이었으니 원래 장소까지 계속 오르막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어서 다시 아까처럼 등산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추가 러닝을 하지 못하고 걸어서만 가야 했다. 그 오르막 지옥을 벗어나고 나서도 체력이 다했는지 달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집까지 걷고 걸어서 돌아갔고, 집 앞 편의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한 입 넣고 나서야 좀 살 것 같았다. ㅎㅎ





이날 우리의 러닝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해 버렸지만, 오랜만에 했던 등산은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자주는 못하겠지만 간혹 도전해 볼 만은 하다. 살다 보면 이렇게 계획했던 데로 안 될 때가 있다. 또 가는 길을 잘못 찾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짜증 내며 서로의 잘못이라 탓해봐야 기분만 더 상할 뿐이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선 걸 알았을 때, 서로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그리고 어차피 돌아가야 하는 길을 열심히 갔을 뿐이다. 그러면서 '왜 저걸 보고 몰랐을까?' ' 왜 빨리 깨닫지 못했을까?'라는 대화를 나누며,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다음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물론 힘들긴 정말 많~~ 이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면 그도 힘들다. 그래도 집에 가서 시원하게 샤워하고 누우면, 오늘의 이 일은 우리를 웃게 만드는 또 하나의 해프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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