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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비를 맞으며 러닝 해도 괜찮지 않을까?

우중 러닝으로 느껴보는 일탈감, 그리고 감당해야 하는 축축함 ㅎㅎ

by 냥냥별


명절 연휴에도 달리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역대급으로 길게 쉬는 날이 되어버린 개천절+추석+한글날 연휴. 가족, 지인들과 이러저러한 스케줄을 소화하고도, 우리에겐 충분히 시간이 많이 남는 행복한 기간이다. 즉, 러닝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ㅎㅎ 그래서 이 기간 동안 하루쯤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새로운 곳에서 달려보고 싶었다.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 찾아보다 보니,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좋은 곳을 하나 발견했다. 간월산으로 가는 등산코스의 중간지점이자, 지금쯤 억새풀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사진 찍기에도 최적의 장소인 '간월재'로 가는 코스이다. 등산로이긴 하지만 간월재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업힐이라서 트레일러닝을 하기에도 괜찮은 곳이라고 들었다. 아이들은 등산이라고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기에, 결국 추석날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점심 먹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남편과 나는 러닝을 하러 떠났다.


며칠 전부터 계속 끄물끄물한 하늘이어서 아침에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오전에 조금 비가 오다가 오후에는 개이는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더니, 울주군에 가까워지자 비가 계속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간월재로 가는 등산로 주차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와 사람들이 보였다. 원래 유명한 관광지라서 그런가? 아니면 우리처럼 비가 개일 거라 생각하고 온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어찌 되었든 우리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순 없었기에, 계획한 대로 올라기로 했다. 남편은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우비를 하나 사서 입고, 나는 방수가 되는 점퍼(방수 기능이 있는 줄 알았지만, 비를 많이 맞으니 그냥 다 젖어버림 ^^;;;;)를 입고 있어서 그냥 가기로 했다.


초반에 걸어가다 보니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짧은 러닝 반바지에 수안 없이 비를 그대로 맞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 우비를 사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 등산로를 안내하는 지도가 보여 확인해 보니, 간월재 휴게소까지는 약 5.5km 정도의 거리에 걸어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부터 뛰어가기로 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자갈과 까끌까끌한 바닥으로 되어 있는 지면이 많아 그리 미끄럽진 않았다. 1km 정도 뛰다 보니 금방 더워져서 추위 걱정은 날아가 버렸다. 남편은 덥고 불편하다며 우비도 벗어버렸다. 그런데 아무리 완만하더라도 산으로 계속 올라가는 코스라 끝없는 오르막이었다. 이런 곳을 비를 맞으며 계속 달리다 보니, 나는 금방 체력이 떨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져 지쳐버렸다. 그래서 쌩쌩 잘 뛰어 올라가는 남편을 따라가기 힘들어, 도중에 잠시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이 세지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아주 센 곳에서는 눈도 잘 뜰 수 없었고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날씨 때문에 등산로 전체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래서 등산로 옆으로 보여야 하는 경치는 물론, 우리 앞으로 주로가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내 앞 2~3m 정도까지만 바닥이 보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러닝을 하기에는 정말 악조건(업힐, 비바람, 안개) 속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웃음이 나오는 건 왜일까? 특히 남편은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하하 웃으며 달리기도 했다. 나는 자욱한 안개 속을 계속 헤쳐나가서인지 몰라도, 뭔가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곳이 현실인지 꿈속을 달리는 것인지 헛갈린다고 해야 하나? ㅎㅎ 그리고 오랜만에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다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어른인 나는 비 오는 날 옷이며 신발이며 젖는 걸 싫어하지만, 그때의 나는 친구들과 비를 맞고 뛰어노는 게 좋았다. 마치 물놀이를 하는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빗 속에서 놀아도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빨면 되기에 ㅎㅎ)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간월재 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추석연휴라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여기서 컵라면과 김밥을 먹으려고 점심도 먹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간월재에 온 것을 나타내는 기념사진이라도 찍어 봤는데, 이곳의 주인공인 억새풀들은 안개로 보이지도 않았다. 배경이 전부 뿌옇게 블러 처리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서둘러 내려가기로 했다. 달리지 않고 멈추어 있으니 나는 다시 추워지기 시작해서, 내려갈 때도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그래도 내려갈 때는 오르막이 아니라 나는 훨씬 편했다. 올라올 때처럼 숨이 차거나 다리가 아플 일도 없었다.






가는 동안 비도 그쳐버렸다. 약 40여 분 만에 등상로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허기를 달래러 아까 우비를 샀던 가게로 들어갔다. 물놀이할 때 먹는 간식 중 제일 맛있다는 어묵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자, 비로 젖은 온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우리는 어묵, 칼국수, 김밥을 허겁지겁 해치우고는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오지 않아 집에 나는 내내 축축함은 어쩔 수 없었지만, 우리에겐 꽤 즐거원던 러닝이었다. 다만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억새밭을 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울 뿐이었다. 다음에 날씨를 잘 맞춰서 다시 올라가 꼭 멋진 사진까지 남겨 오고 싶었다.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생기는 러닝은 당황스럽지만 즐겁다. 우리에게 늘 새로운 경험과 교훈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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