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초목표’ 이론 속에서 삶의 나침반을 찾다
“'HOW'가 아니라 'WHY'를 고민해봐!”
20년 넘게 연기를 가르치며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연기를 처음 접하거나 방향을 못 찾는 배우들이
흔히 빠지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연기를 ‘HOW’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기는 대본의 활자를 실연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사를 “어떻게 연기해야 하지?”라는 HOW로만 접근한다면,
절대로 그 인물이 될 수 없다.
배우는 끊임없이 'WHY'로 질문해야 한다.
“왜 이 말을 했을까?”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왜 지금 이 감정을 느끼는 걸까?”
나는 집요할 만큼 'WHY'를 되묻는다.
그래서인지 제자들은 종종
“선생님 앞에서는 대사 한마디 하기가 너무 어렵다”
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배우가 인물을 정확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단 한 마디도 허용하지 않는다.
인물을 깊이 이해한 배우는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그 사람으로 ‘영혼 갈이’가 된다.
눈빛이 바뀌고, 자세가 달라진다.
대사 첫 마디만 들어도, 나는 그 배우가 ‘인물’로 몰입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활자를 ‘연기’하고 있는지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이' WHY'의 개념은 바로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초목표(Super Objective)’ 이론에서 시작된다.
“초목표란 극 전체에서 캐릭터의 지배적인, 혹은 근본적인 욕망이나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의미한다.”
나는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논문과 해외 자료를 찾아 공부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초목표 이론만으로는
그가 말하는 연기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고,
헐리우드 배우들이 보여주는 메소드 연기의 정수가
이론의 실천으로 가능한 것인지도 궁금했다.
연극이나 연기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우리가 ‘초목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개념의 뿌리인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초목표 이론을 간단하게나마 알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는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현대 연기 체계를 확립한 연출가로,
‘현대 연기 교육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나 대사 전달이 아닌,
배우가 인물의 삶을
'실제로 살아가게 만드는 체계'를 정립했다.
우리가 잘 아는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알 파치노, 크리스찬 베일 등은
모두 이 스타니슬라브스키 이론을 바탕으로 한
'메소드 연기'로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메소드 연기 : 감정과 인물에 완전히 몰입해 인물과 하나가 되는 연기론>
초목표는
배우의 역할 장조에 일관된 방향을 제시한다.
각 장면의 작은 목표들이 모여
전체적인 인물의 행동을 이끄는 중심 '축',
'척추'와 같은 개념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초기에는 “만일 내가 ~이라면?”이라는
'magic-if' 기법을 통해
배우의 내적 체험(심리적 사실성)을 중시했고
후기에는 외면과 내면의 조화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를 행동의 통일선으로 연결을 시켰고
이 통일선이 초목표로서
역할의 일관된 행동 흐름이 되도록 했다.
나는 연기를 살아숨쉬게 하는 방법으로서
이 초목표 이론에 깊이 매료되었다.
감독에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의도가 중요하듯,
배우가 한 인물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인물의 초목표 이해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강조했다.
“인물의 초목표를 찾아야 한다.
인물은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초목표가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본 분석, 인물 일기, 다양한 접근 방식을 동원해도
껍질만 핥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인물 ‘바깥’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그 답답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기억.
20살 재수 시절, 중앙대 연극학과를 목표로 했던 그 해.
사실 그땐 몰랐지만
중앙대를 향한 열망만큼은
이미 초목표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자유연기로
막심 고리끼의 『밑바닥에서』에 나오는
'나스짜'라는 인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차 전형 2번, 그리고 정시,
총 3번을 떨어진 후 마지막 기회였다.
정시를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시점에
좀처럼 연기가 늘지 않아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난 후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 엉엉 울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왜 연기가 안 되는지 답을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나스짜인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 몇 살이야?”
.......
“어디서 태어났어?”
.......
“부모는 알아? 왜 고아가 된 거야?”
.......
놀라웠다.
나는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대사만 외우고 있었지,
대본에는 나와있지 않은 정보들,
그 인물의 과거, 가족관계, 상처, 욕망, 다양한 관계들, 경험들
그 무엇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미친듯이
나스짜의 인생을 그려 나갔다.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내가 나스짜가 되는 순간까지.
대사의 단어 하나도 허투로 넘기지 않았다.
정시 시험장에서
장장 3분이 넘는 독백을 연기했다.
사실 난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고 보니
나스짜의 마지막 대사를 하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합격했다.
그때 깨달았다.
진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이나 분석이 아니라,
그 인물의 과거를 뒤지고,
지나온 일련의 사건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내면 깊숙한 무의식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메소드 연기’라는 말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짜 몰입이란
단순히 배우인 '나'의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그 인물이 되는 것이다.'
몰입이 되지 않는 건
그 인물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다.
철저히 분석하고 상상하고 이해하면
그 인물의 정확한 초목표가 발견되고
그 목적지를 향한 감정과 행동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생기며
인물로써 몰입된다.
나는 제자들에게 늘 강조한다.
인물의 과거를 추적하고
대본에 없다면 정확한 근거를 찾아 상상하고
상처가 있다면 그 원인을 추적하라고..
자신의 무의식과 인물의 무의식이 겹치기 시작할 때
초목표는 선명해지고
그들은 의식적으로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 인물로 완전히 몰입 되어있는 상태 "
즉, '빙의'가 이루어진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내 삶의 초목표는 뭘까?”
배우가 한 인물의 초목표를 찾았을 때
그 인물을 이해한다면
우리 모두에게도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는 초목표가 있으며
그것을 누구보다 자기 스스로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목표들
— 꿈, 효, 진로, 결혼, 직장, 인간관계, 타인의 인정....
그 모든 걸 관통하는,
내 삶의 무의식적인 궁극의 동기.
나는 그것을 좀 더 쉽게
‘슈퍼 목표’라 부르기로 했다.
이 슈퍼목표는 잘만 활용되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광활한 우주 같아서,
내가 아는 건
고작
‘지구를 둘러싼 태양계’ 정도일지도 모른다.
길이 보이는 데로 무작정 움직이면
인생은 헤멜 수 밖에 없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목적지를 알고 있다면,
그 길에 고난과 역경이 따르더라도 결국 도달할 수 있다.
그럼 그 여정은 기대감으로 행복해 질 수 있다.
언젠가는 그 목적지에 다다르게 될 테니까..
자 그럼.. 또 다시 묻겠다.
당신은 당신을 이끄는
당신의 “슈퍼 목표”를 알고 있나요?
그렇다면 '슈퍼목표'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 6화에서는 러시아 희곡 작가 안톤 체홉의 『갈매기』 속 인물 분석을 통해
슈퍼목표가 어떻게 인생의 전반에 걸쳐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희곡 속 인물을 통해 우리 모두의 ‘슈퍼목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