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갈매기』 인물 분석을 통한 '슈퍼목표' 찾기
우리는 왜 어떤 행동을 반복하고, 어떤 감정에 유독 사로잡히고,
심지어 자신의 꿈 앞에서도 길을 잃고 방황하는 걸까?
앞선 연재에서는 내가 슈퍼목표를 발견하는 과정을 담아보면서
슈퍼목표가 우리 무의식 속에 존재하고
과거의 경험과 기질이 그 씨앗이 된다는 걸 이야기했다.
이제 그 연장선에서,
연기라는 예술을 통해 우리 내면에 깊이 숨겨진 슈퍼목표를
찾아가는 여정을 이어 가보려 한다.
배우가 인물을 분석하고 초목표를 발견하며
연기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이해하면
우리 자신의 슈퍼목표를 찾는 방법도
훨씬 이해가 쉬울 것이라 믿으며 6화를 시작해본다.
잠깐!
용어를 한번 정리하고 시작해볼까?

초목표: 연극/작품 속 캐릭터의 극 전체를 관통하는 궁극적 목표이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이론)
슈퍼목표: 개인의 삶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강력한 삶의 원동력이 될,
곧 나의 진짜 방향성이다. (슈퍼미고가 새롭게 정의한 이론)
한마디로,
초목표는 캐릭터의 목표,
슈퍼목표는 나의 목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어는 super-objective로 동일한 개념이다.)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할 때,
대본에 적힌 대사와 행동만으로는 그 인물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대본은 마치 빙산의 일각 같다.
인물의 진짜 동기, 복잡한 감정선,
그리고 그 인물이 가진 무의식적인 욕망(즉, 초목표)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본 너머에 있는 과거를 상상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 인물이 어떤 부모(주양육자)와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으며,
어떤 사건들을 겪어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의 축적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완성해나가기 때문이다.
흩어진 인물의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입체적인 존재로 만들어내는 것,
그게 배우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내가 인물을 분석하고 초목표를 찾기 위해 과거를 파고들기 시작한 건,
사실 아동청소년 연극 교육을 전공하면서였다.
그때 영유아와 청소년들의 심리와 발달 과정을 깊이 연구하면서,
'아, 우리가 성장하는 데 주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가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하고 깨달았다.
유아기와 아동기에 겪는 다양한 결핍이나 정신적 트라우마가
한 사람의 인생 전반에 걸쳐
얼마나 지배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배우들에게 인물을 분석할 때,
단순히 대본에 쓰여진 정보만 보지 말고
그 인물의 과거를 알 수 있는 모든 단서를 찾아내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초목표 이론에 매료되어
인물을 창조하며 그 깊은 목표를 찾아내려 무던히 애썼지만,
가장 효과적이었고 인물을 가장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던 방법은
결국 '과거의 조각들을 찾고 상상을 통해 이어 붙이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치 운명처럼 나에게 다가온 작품이 바로 안톤 체홉의 『갈매기』였다.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극작가 안톤 체홉은
일상의 소소한 갈등과 인간 내면의 고통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갈매기』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랑받고 싶어하는가?”,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화려한 사건보다
인물들의 감정선과 무의식적인 욕망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적한 시골 별장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예술적 욕망과 사랑, 그리고 그로 인한 좌절을 다룬다.
젊은 극작가 뜨레쁠레프는
자신의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통해
예술적 재능을 인정을 받고 싶어 하지만,
어머니이자 유명 여배우인 아르까지나는
그의 예술세계와 새로운 시도를 무시한다.
그는 배우를 꿈꾸는 니나라는 소녀를 사랑하지만,
니나는 어머니의 연인이자 유명 작가인 뜨리고린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 함께 도시로 떠나버린다.
그 후 니나는 배우였던 꿈도, 사랑도, 결혼도 모두 실패하고
삼류배우로서 지방으로 공연을 가는 길에 고향에 잠깐 들르게 된다.
니나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뜨레쁠레프는
자신에게 니나가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구하다.
여전히 그녀가 뜨리고린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결국 뜨레쁠레프는
예술에서도,
사랑에서도,
어머니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한 채
깊은 고립감과 자괴감을 느끼게 되면서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극은 마무리 된다.
『갈매기』는 인물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과거와 연결된 무의식적 욕망을 따라가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한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인물의 주변인물들과 함께 분석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특히 과거로 부터 이어진 부모와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은
뜨레쁠레프의 초목표를 찾는 단서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뜨레쁠레프는 쉽게 무너지고,
끊임없이 상처받으며, 평생 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한다.
그의 깊은 무의식을 파고들기 위해
나는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는 왜 그토록 작가가 되고 싶어 할까?
그는 왜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 할까?
그는 왜 니나에게 집착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었을까?
이렇게 '왜'라는 질문으로 뜨레쁠레프의 과거를 좇다 보면,
그의 유년 시절이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희곡 속에서 뜨레쁠레프는 삼촌 소린에게 이런 말을 한다.
유명 여배우인 엄마 덕에 늘 집은 유명인사들로 북적였지만,
그들 모두 자신을
'아르까지나의 아들'이라고만 불렀다고.
그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엄마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내비치기도 한다.
화려한 명성 뒤에서 늘 어린 남자들과 스캔들을 뿌리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아르까지나.
그리고 그런 엄마가 쉽게 내뱉었던
"지 애비 닮아서"라는 비난의 말들 속에서
뜨레쁠레프는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자랐을까?
부모의 이혼, 사랑과 인정에 인색한 유명인 엄마,
그리고 뜨레쁠레프 본연의 예민한 기질까지.
이 불안한 가정환경과 내적 기질을 고려해봤을 때,
그가 건강하고 건설적인 초목표를 가진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어린 뜨레쁠레프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물었을 거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이 잘못된 거지?'
'나는 왜 태어났을까?'
그렇다.
그는 사실 인정받지 못한 깊은 결핍 속에서,
엄마에 대한 뿌리 깊은 애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애증은 점차 '일그러진 초목표'로 변질되어 갔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잘났지?'
'당신들보다 내가 더 잘났어.'
'나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
.
.
.
그리고..
'난 누구보다 천재야.'
이것이 바로 뜨레쁠레프 내면 속에 지배적인 사고,
즉 그의 '슈퍼목표'인 것이다.
작품 속에서 뜨레쁠레프는
자신의 예술적 우월성을 굳게 믿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언행을 보일 때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분노 조절 장애와 같은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나는 누구보다 천재야'는 사실 일그러진 슈퍼목표는
그를 지탱하는 동시에 파멸로 이끄는 양날의 검이었다.
뜨레쁠레프의 대사와 행동을 면밀히 따라가다 보면,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좌절감, 열등감,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니나에게 그토록 집착하고 매달렸던 이유도 이와 깊이 연결된다.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 있던 뜨레쁠레프에게,
배우의 꿈을 꾸던 순수한 니나는
자신을 처음으로 '인정'해주고
자신의 '예술'에 호기심을 보여준 유일한 존재였다.
뜨리고린이 나타나기 전까지 니나는
뜨레쁠레프에게 단순히 사랑하는 여인을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줄 뮤즈이자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것이리라.
하지만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주었던 니나가 떠나고,
자신이 그렇게 노력했던 성공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순간,
뜨레쁠레프의 예술적 우월성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결국,
그는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뜨레쁠레프의 비극은
그의 일그러진 슈퍼목표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일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슈퍼목표를 발견하는 데 있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것,
특히 주 양육자와의 관계 분석을 통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은
우리의 기질과 무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우리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슈퍼목표의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즉,
과거의 상처와 결핍을 반복하며
현재의 관계와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반복적 사고 패턴'을 나는
'슈퍼목표'라 부르는 것이다.
7화예정: '슈퍼목표'가 이끄는 삶, 그리고 '반대 슈퍼목표'의 그림자
- 내 삶의 엔진 '슈퍼목표'는 긍정형일까?
뜨레쁠레프의 '천재성 인정 욕구'라는 슈퍼목표가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끌었듯이,
우리의 '슈퍼목표' 또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7화에서는
'슈퍼목표'가 우리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슈퍼목표의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
즉 '반대 슈퍼목표'의 개념을 소개한다.
뜨레쁠레프의 '평범해지지 않으려는' 두려움,
그리고 『갈매기』의 또 다른 인물 '마샤'의
'불행해야만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통해,
'반대 슈퍼목표'가 어떻게 우리 삶을 옥죄고 진정한 행복을 가로막는지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과연 나의 '반대 슈퍼목표'는 무엇일까?
그 그림자를 마주하는 것이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지,
다음 화에서 함께 그 답을 찾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