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처음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반복되는 유쾌하지 않은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대처해보고 싶었다.
스리랑카에서 반복된 세 가지 질문
스리랑카를 떠올리면 세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 어디에서 왔니?
- 스리랑카는 처음이니?
- 결혼은 했니?
한국에서 영어를 배웠다면 “하우 아 유 how are you"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진짜 속마음과는 무관하게 ”I am fine, thank you"를 자동 연상해내는 것처럼 그들은 신기할 만큼 저 질문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반복된 질문은 불쾌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물론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만난 지 1분 만에 프러포즈를 받게 된 사연
스리랑카에 도착한 첫날, 네곰보 바다를 걷고 있는데, 현지인이 다가와서는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에서 막혔다. 보통 첫 대면에서 잘 묻지 않는 질문이었기에 생소했다고나 할까. 나는 다시 한번 질문을 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제야 “아직 Not yet"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근데 만난 지 1분도 안 된 그 청년은 다짜고짜 결혼을 하자며 내 어깨에 손을 둘렀다. 그러면서 내 손등 정확히는 손등과 팔목의 경계에 있는 점을 가리키면서 자기 팔을 보여줬다. 10cm는 더 차이 나는 위치에 있는 내가 보기엔 상이한 위치 같은데 본인도 팔에 점이 있다고 했다. 프로포즈의 이유가 황당했지만 그의 논리는 그랬다. 매일 싱싱한 새우를 먹게 해 주겠다는 사람도 만났다. 나는 그렇게 꽤 여러 번 프로포즈를 받았다.
다르게 대처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좀 지루해졌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을 하면, 북한에서 왔냐고 묻는데 내가 왜 이 쓸데없는 대답을 무한 반복하고 있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조금 다른 상황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국 대신 다른 나라를 말하기 시작했다. 미얀마라고도 해 보고, 태국이라고도 해 보고, 중국이라고도 해 봤다. 다행히 나의 외모는 개성이 그리 강하지 않은 지 내 답변은 크게 의심받지 않았고 그렇게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나도 궁금해졌다. 내가 국적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들 눈에는 어느 나라 사람처럼 보이는지 그래서 추측을 해보라고 했다.
라와나 폭포 가는 길에 만난 툭툭 기사들
당시 나는 라와나 폭포 Rawana Waterfall에 가려고 버스 정거장을 찾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툭툭 기사 5명의 질문 공세가 막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첫 질문은 내 국적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게스 guess라는 단어를 던져봤다. 그랬더니 다섯 명의 청년은 미어캣이 되어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입모양으로 “게스” “게스” “게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잠시 그들의 집중에서 벗어난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청년이 나를 보며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으로 “I know guess"라고 말했다. 안다면 그런 대답을 하면 안 되는 거겠지만 굳이 틀렸다고 정정해서 그를 무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매뉴얼 같은 질문을 통과하고 나자 그들은 본론을 꺼냈다. 나의 행선지를 궁금해했다. 나는 내 목적지를 답해줬다. 그들은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 걸리지만 툭툭 Tuck Tuck을 타면 십 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인포메이션에서 가는 법과 시간을 이미 확인한 나는 그들에게 ”거짓말쟁이 Liar‘라고 말했다. 그들도 웃고, 버스를 기다리던 관광객도 웃고, 나도 웃었다.
무례한 사람과 잘 지내고 싶었지만
스리랑카 여행 내내 반복된 세 가지 질문은, 유쾌한 결말보다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 더 많았는데 그래서일까. 나는 덜 불쾌하게 덜 소모적이게 대처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다른 여행자의 지혜를 빌리며 다양하게 대처해봤다. 근데 잘 안 됐다. 가령, 결혼에 관한 질문은 기차에서 만난 영국인 여행자가 그냥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따라 해 봤다. 얼마나 간단명료한 해결책인가 감탄하면서. 하지만 전혀 내 뜻대로상황은 흘러가지 않았다. 어느 청년은 결혼했다는 나에게 묵고 있는 호텔을 알려달라고 했다. 연유를 묻자 저녁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또 다른 장사꾼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결혼을 했는데, 어떻게 혼자 여행을 하고 있느냐는 논리였다. 그녀의 방식은 그렇게 내게 전혀 안 먹혔다. 오히려 더 곤란해졌다. 그러다 이 모든 것들이 피곤해졌고 어느 순간부턴 여행자를 제외한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상황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왜냐면 어느 날 만난 현지인이 무반응을 취하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언어를 내뱉었는데, 해석은 안 돼도 험한 말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그 외에도 여러 일을 겪었고 나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렇게 서서히 유쾌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이전만큼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됐다. 무뎌졌다고나 할까.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 지를 나는 스리랑카에서 반복된 세 가지 질문 때문에 알 것 같다. 물론 웃으며 대처한 그다음 상황이 뜻한 바대로 실현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감이 들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