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5
영안실 입구에서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와 경찰과 셋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의 턱은 반쯤 꺾인 상태였다. 그래서 입을 바보처럼 크게 벌리고 있었다. 눈은 왜 뜨고 있는지. 하얀 장갑을 낀 의사는 남편의 사인(死因)을 의학적으로 설명했다. 머리통이 박살 나서 죽었다는 말을 어렵게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말은 없었다. 바람피우다가 죽은 남편 앞에서, 모든 걸 무너뜨려 놓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서 말은 필요 없었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의문 또한 풀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경찰 두 사람이 내 앞에 섰다. 집 안에 다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사망 현장에 조성숙이 있었기 때문에 타살의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자살이라면, 남편이 속옷만 입고 있었던 것에도 의문이 든다고 했다. 부검 동의서에 사인하면서 속옷 차림의 남편이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나는 사인한 동의서를 경찰에게 건네며 물었다. 탈상 전에 넘겨주시나요? 뱉고 보니 말이 조금 이상했지만, 이런 경우는 길어야 이틀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과 동행하는 조성숙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새벽 세 시.
한 남자가 다가왔다. 괜찮으면 장례 절차를 의논하고 싶다고 했다. 두 시간 전에 사망 판정을 받은 남편의 시신을 방금 확인한 아내에게 그런 매정한 목소리만 이어졌다. 나는 남자가 이끄는 사무실로 동행했다. 해야 할 일이기는 했다. 장례 절차를 매듭짓고 딸아이한테 다녀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베이비시터는 아침 11시에나 출근하는데, 그 전에는 학교 수업이 있다는 걸 알기에 오전에 아이를 부탁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장례식장에 도착해야 자리를 비울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은 그의 누나, 함정희였다. 그녀는 내게 상황을 캐물었다. 나는 조성숙의 집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주었다. 나의 무표정과 담담한 목소리에 함정희는 화를 내었다. 마치 이 사태를 기다린 사람 같다고도 말했다. 당신의 남동생이 전 와이프의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죽어서 왔다는 사실보다 내 태도가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장례식을 왜 인천에서 하느냐고, 왜 마음대로 결정하느냐고, 함정희는 계속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함정희의 전에 없던 시누이 행세에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장례지도사가 내가 입을 옷을 건네주었다. 머리에 꽂을 핀도 주었다. 이런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었다. 아주 오래전에 입을 기회가 있었지만, 입지 못했다. 남편 때문에 입게 될 줄이야. 상주 노릇은 집에 다녀와서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의외로 빠르게 손님이 들이닥쳤다. 주로 남편의 가족이었고 사업 파트너들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검은 치마와 검은 저고리, 그리고 하얀 리본 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함정희가 나를 쏘아보았다.
“그 손톱 좀 어떻게 해!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고 티 내는 거야?”
나는 열 손가락을 펼쳐서 손톱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 손톱이 부러지는 바람에 퇴근길에 네일숍에 들렀었다. 여자 몸에 빨간색을 지니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던 숍 마스터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지만, 나는 새빨간 손톱을 선택했다. 기분 전환에는 그것만 한 것이 없었다. 이 손톱이 남편 잡아먹은 여자로 보이다니. 내가 남편을 잡아먹었단 말인가. 구워 먹었나 삶아 먹었나. 저런 말들은 어느 시대부터 내려왔을까. 남편이 먼저 죽으면 남겨진 아내들은 모두 잠재적 살인자가 되는 것일까. 시누이가 저런 표현을 쓴다면 남편의 어머니는 어떤 악담과 원망을 퍼부을지, 앞으로 닥칠 피곤한 장면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쨌든 빨간 손톱이 상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네일숍이 문 열 시간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