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7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창고에서 캐리어 두 개를 가지고 나왔다. 작은 가방에 아이의 여름옷들을 담았다. 신발도 담았다. 좋아하는 장난감들도 모조리 담으려다가 애착 인형만 넣어 가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짐을 하나도 챙기지 않고 몸만 떠나고 싶었다. 하와이에서는 하와이다운 것들이 필요할 테니까.
인기척에 아이가 깬 모양이었다. 이불에 몸을 비비적거리다가 상체를 일으켜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어디 가?”
나는 아이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쓸어 주며 말했다.
“아빠한테.”
아이가 크게 하품을 했다.
“엄마는 오늘 왜 검은색이야?”
“아빠가 죽었거든.”
“죽는 게 뭐야?”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것.”
아이는 울지 않았다. 스스로 일어나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았다.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양치질을 시작했다.
남편의 재킷들을 뒤졌다. 안쪽 주머니에서 유서 두 개가 나왔다. 역시 내용은 별다른 게 없었다. 너무 우울하다는 내용.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 미안하다는 말들. 아마 그가 죽던 날 입고 나간 재킷에도 유서가 있었을 것이다. 그 유서는 조성숙의 손에 있거나 경찰이 가져갔을 것이다. 남편이 진짜 죽을 작정으로 조성숙의 집에 갔었다면 그 유서는 진정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았다. 그는 나와 사는 동안 매일 죽고 싶었으니까. 평온과 안전이 확보된 완벽한 가정 안에서 그는 늘 죽고 싶었으니까.
입가에 허연 자국을 남긴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내 머리에 꽂힌 핀을 만지작거렸다.
“예쁘다.”
“갖고 싶니?”
“응.”
“곧 갖게 될 거야.”
나는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양말을 신겼다. 마지막으로 여권까지 가방에 챙겨 넣은 후 다시 집을 나섰다. 베이비시터는 오늘부터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장례식을 끝낸 후, 아이와 함께 하와이에 있는 친정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그건 상복으로 갈아입으면서 결심한, 그러니까 불과 몇 시간 전에 결심한 마음이었다.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게 삶의 목표였다. 그걸 위해서 우선 쌓아야 할 것들이 있었다. 쌓아야 할 것들을 공부하고 만들어 가느라 연애는 뒷전이었다. 훗날 가난한 부모도 무식한 부모도 되고 싶지 않아서 누구보다 애면글면 살았다. 악바리, 독종이라는 별명이 생겨도 그보다 더한 단어로 불리길 바라며 삶에 단 한 번의 요령도 피우지 않고 청춘을 보냈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학력과 커리어는 내가 갖지 못한 배경에 가려지기 일쑤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그놈의 출신.
남편을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조성숙 때문에 힘들어할 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건 나였다. 남편이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완벽한 가정. 아이를 원했지만 낳고 싶지는 않았던 나, 자신의 아이를 현명하게 키울 수 있는 여자를 원했던 남편, 우리에게 완벽한 가정은 가능할 거라 믿었다. 도대체 남편에게 부족했던 건 뭐였을까. 조성숙만이 줄 수 있는 게 뭐였을까. 조성숙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이어지는 섹스를 경험하면 아무도 벗어날 수 없어요. 그게 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