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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25. 2023

유령 가족

단편소설 #9


남편의 어머니인 고달자가 왔다. 황망한 몸짓으로 입구에 들어선 고달자는 신발을 벗자마자 방바닥에 엎어져 통곡을 했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여자 잘못 만나서, 착하고 착한 내 새끼… 고달자가 애달픈 울음소리와 함께 내뱉는 말들은 이해할 만했다. 아들의 죽음을 마주한 여자가 곡하는 모양새는 문상객들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고달자는 방바닥을 두드리며 몸을 비틀었다. 잠깐 까무러치는 행동도 잊지 않았고 그때마다 가족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고달자가 상복 입은 주은이를 발견했다. 고달자가 주은이를 향해 두 팔을 벌리자, 나는 주은이의 등을 살짝 밀어 주었다. 고달자는 주은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이 어린 것이 이런 옷을 입고, 복도 없는 내 새끼… 주은이가 불편한 표정으로 고달자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고달자의 품에서 아이를 해방시켰다. 그때 고달자는 나를 처음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 여우 같은 년, 내 새끼 사업도 다 빼앗고, 멀쩡한 남자를 집안 살림이나 부리고, 이 죽일 년, 이제 손주까지 훔쳐 가려고… 뿌질뿌질 울화가 치민 고달자가 주은이의 한쪽 손을 붙잡아 당겼고 나는 그 손을 뿌리치려고 했고 결국 주은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들 시선이 화살촉처럼 뾰족해지는 걸 느꼈지만, 나는 딸아이를 지켜야 했다. 


조성숙은 남편의 발인이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남편의 가족 눈에 띄면 머리채가 남아나지 않을 거란 걸 본인도 아는 것이다. 장례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내게 요구사항을 말해 두었으니 내가 그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지속해서 연락하거나 협박을 일삼을 여자였다. 그러나 법적으로 받아 낼 수 있는 돈은 없었다. 조성숙은 세상 사람들 모두 죽은 남편 같은 줄 알거나, 떼쓰고 협박하는 게 아무에게나 통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나는 죽은 남편의 전 부인을 상대로 고민할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돈 때문에 친권까지 포기했던 여자와 상대할 가치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발인이 끝나고 상복을 반납한 후 고달자에게 말했다. 아이와 함께 하와이로 가겠다고. 기력이 다 빠져나간 고달자는 순순히 허락했다. 허락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시기상조 같기도 했지만 지금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의 가족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고달자의 고분고분한 태도는 이미 예상했었다. 말로는 내 새끼, 내 새끼, 하지만 주은이를 맡아 키울 자신은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주정뱅이 조성숙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도 마땅치 않으니 내가 어디로 데려가서 키우든 반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 한국보다 하와이가 낫겠지. 거기에 에미 친정 식구들이 있으니까 주은이한테 가족도 생길 테고, 친정이 잘산다고 하니까 애 교육도 잘 시킬 테고, 훨씬 낫겠지.”


고달자는 마치 주은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듯 말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내가 당신 손주를 데리고 타국에 가서 살겠다고 하는데 고민하는 기색도 없었다. 핏줄 타령은 자신에게 득이 될 만한 게 있을 때만 들이대는 무기였다. 


내 친정을 들먹이는 건 결혼 전부터 그랬다. 걸핏하면 조성숙과 비교하면서, 조성숙의 집안과 비교하면서 나를 며느리로 앉히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조성숙의 집안이 최악인 건 아니었다. 춘천에서 닭갈비 매장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여동생이 있었다. 적당히 평범한 집안이었지만, 내가 들려준 나의 집안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고 그래서 고달자는 나를 탐했다.


“그래도 사위가 죽었는데, 너희 부모님은 오지도 않고. 결혼식 때도 코로나 때문에 못 왔는데, 너무 냉정하구나. 지금은 비행기를 탈 수 있을 텐데. 하기야 딸 시집보낼 때도 안 왔는데 과부 된 거 보러 오겠어. 못 오지. 하와이가 멀기도 멀고. 얼마나 멀어?”


고달자는 얼마나 멀어,를 말하며 함정희를 쳐다보았다. 함정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몰라서 그러는 건지 대답하기 싫은 건지 인상만 썼다. 고달자와 나의 대화에, 주은이를 데리고 하와이로 가겠다고 말하는 상황에 함정희가 끼어들지 않는 건 의외였다. 다들 아는 거였다. 주은이를 맡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막상 본인들이 어떤 책임을 떠안게 될까 봐 꼬랑지를 내리는 것이었다. 


고달자의 질문에 대답은 내가 했다.


“항공으로 아홉 시간쯤 걸려요.”


내 말에 고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멀긴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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