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8
장례식장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오전 열 시가 가까웠다. 그사이 조성숙이 풀려났고 남편의 사인은 자살로 종결될 것 같다고 경찰이 말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려 주지 않았다. 전 와이프의 집에서 팬티 차림으로 투신한 남자에게 타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면, 자살일 수도 있겠지. 죽고 싶었던 사람이 죽어도 되는 곳에서 죽은 것일 수도. 내가 남편에게 만들어 주었던 안정적인 가정이 결국 맞지 않는 옷이었을지도. 남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빈소 옆 방 안에서 아이에게 상복을 입히고 있는데, 함정희가 슬그머니 들어왔다. 함정희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아이의 얼굴을 몇 번 쓰다듬다가 남편의 생명보험에 관해 물었다. 자살이어도 나오는 돈이 있다고 말했다. 역시 사람의 본색은 누군가를 상실했을 때 드러나는 것일까. 함정희는 자신의 집에 압류 딱지가 붙던 순간까지 우리에게 돈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렵게 재혼한 동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결국 압류 문제를 해결해 준 남편이 말했었다.
내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남편이 죽어서 나오는 보험금이라면 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함정희에게 돌아갈 돈은 한 푼도 없을 것이었다.
“보험 관련해서는 몰라요. 변호사가 처리할 거예요.”
“그럼 결과가 나오면 알려 줘.”
“왜요?”
“왜라니? 내 동생인데 당연히 알아야지.”
“그 사람이 남기고 간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함정희의 낯빛이 울긋불긋해졌다. 함정희는 논리적이고 차분한 사람한테 이기는 법이 없었다. 이기지 못해서 늘 목소리만 높였다. 그런 성격은 조성숙과 너무나 닮아서 두 사람이 불붙으면 총만 없었지 전쟁터 같았다고 남편이 말했었다. 그런 함정희가 명색이 고모라고, 아빠 잃은 조카 앞이라고 험한 말은 삼가는 노력이 엿보였다. 남동생이 결혼을 두 번이나 하고 죽었는데도 아직 자신의 친정 소속인 줄 아는 건 무식한 걸까 뻔뻔한 걸까.
“어쨌든 나중에 얘기해.”
함정희가 나간 후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다가 조성숙을 만났다. 빈소에 들어갈 용기는 없었는지 구석 틈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조성숙은 자신의 딸을 보고도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 여자에게도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유서를 남겼더라고요.”
“그래서요?”
“중요한 내용이 있으니 보셔야 해요.”
“관심 없어요.”
“이래도요?”
조성숙이 들이민 종이에는 조성숙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이를 그녀에게 돌려주라는 문장까지 읽었다. 어떤 경로로 쓴 유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의 필체가 맞았다.
“아이를 키우시게요?”
나는 조금 비아냥거렸다.
“아이 아빠가 죽었으니, 아이를 데려가고 양육비를 총합해서 받아야겠어요. 우리 몫의 보험료도요.”
“소송하세요.”
“뭘 그렇게까지 해요. 죽은 남편이 남긴 유언인데, 모른 척할 거예요?”
“돌아가세요.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잖아요.”
“소송하라면 못 할 줄 알아?”
“하시라고요.”
“나쁜 년. 그러니 남자가 마음을 못 잡고 우리 집에 드나들었지. 잘난 집안 딸이라고 고고한 척, 깨끗한 척했겠지만, 함재훈은 날 그리워했어. 내 몸을. 너만 없었으면 우린 재결합하고도 남았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피곤한 이유도 있었지만, 조성숙이 나와 싸워 이길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상복 입을 자격이 없는 여자가 죽음의 현장에 있었다는 건 누가 봐도 불리한 입장이었다. 조성숙은 그걸 아는 사람이라 말이 많은 것이다. 불리한 사람은 성급하고 말이 많다. 유리한 쪽은 쓸데없는 말로 속내를 보일 필요가 없다. 내가 지금 가져야 할 태도는 남편을 잃어버린 여자다운 슬픔을 머금고 나를 향한 시선을 향해 애도를 연기하는 것뿐이었다.
장례식장이 분주해지자 조성숙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