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0
나는 하와이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그곳에 아는 사람도 없다. 서류상으로 나는 가족이 없었다. 조실부모라도 너무 조실이라 기억나지도 않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사내도 아니고 계집애라 친가에서는 외면했고, 신혼부부였던 이모네가 맡아서 키우다가 자신의 아이가 생기자 내다 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어린이날과 생일날에는 선물을 보냈다고 했다. 그마저도 몇 년 가지 못한 죄책감. 피를 나눈 가족이었지만 이촌이 남긴 어린 삼촌에게는 정이 채 들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교회 복지관에서 자랐다. 부지런하고 책임감 강하고 말이 없는 아이로. 거짓말을 진짜처럼 할 줄 아는 아이로.
남편과 그의 가족을 속이는 건 쉬웠다. 내게 이미 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는 배경을 의심하지 않았다. 온화하게 살아온 듯한 미소를 지을 줄 알고, 단정한 옷차림과 예의 바른 말투는 이상적인 가정에서 자랐을 거라는 추측을 상대가 먼저 하게 만들었다. 그런 조건을 만들어 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만약 내가 복지관에서 자란 고아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남편도 그의 가족도 나에게 기죽어 살지 않았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쉽게 내 삶의 이정표를 바꾼다는 걸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래서 죄책감도 없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건 나인데, 어째서 나는 내 배경에 의해 사랑받을 수도 천대받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건 그런 사람들 잘못이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첫사랑을 잃었던 날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유령 가족을 만들었다. 내가 만든 나의 가족은 하와이에 살기도 했고 중국에 살기도 했고 캐나다에 살기도 했다. 부모님의 직업은 사업가였다가 교수가 되기도 했고, 자매가 생겼다가 남매가 되기도 했다. 오늘까지 내 가족은 하와이에 살았고, 부모님은 사업가였고, 나에게는 오빠가 있었다. 이제 그들은 사라져도 좋을 시간이 왔다.
요셉이 찾아온 건 발인하는 날이었다. 장지까지 동행해 주었고 모든 장례가 끝날 때까지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 회사의 자문 변호를 맡은 사람이었다. 같은 복지관에서 자란 우리는 복지관의 자랑이었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한 직후에 요셉은 변호사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들 때문에 억울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악착같이 공부했다. 내가 하와이 출신이라는 거짓에 신뢰를 얻게 해 준 일등 공신도 바로 요셉이었다. 때로 내가 괴로워할 때마다 요셉은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받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고. 우리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 힘들다면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우린 사랑받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았느냐고. 우리는 서로에게 연민만 있었고 연인이 되어 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 주는 요셉에게 위로를 받으면서도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하는 삶이 고달팠다. 알고 보면 유령 가족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사람들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가족을 두고 유령 가족을 들먹이기도 했다. 몇십 년, 몇백 년 전에 죽은 조상을 내세워 자신의 집안을 과시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물색없는 짓인가 싶지만, 실제로 조상이 스펙이 되기도 했던 시절에 나는 청춘을 살라 공부만 했다. 그러나 매번 그들에게 지고 말았다.
남편은 요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사업적인 판단을 너무 쉽게 한다고 말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요셉이 고아라는 사실을 남편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말들이 거슬렸다. 결혼과 이혼을 일 년 안에 끝낸 요셉은 성격이 급하긴 했다. 요셉이 만들어 낸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된 요셉의 아내가 요셉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요셉은 무릎 꿇고 빌지 않았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요셉의 아내가 소송을 취하하고 협의 이혼을 선택한 것은 그동안 요셉이 너무 잘해 줬기 때문이었다. 요셉은 내가 봐도 완벽한 남편이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아무리 완벽해도 완벽한 가족이 없다면 완벽한 게 아니었다.
내가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요셉은 법적인 문제들을 처리해 주었다. 남편의 사망 신고, 집을 처분하는 일, 보험과 관련된 것들을 전부 맡아 해결했다. 주은이와 나의 하와이행 항공권도 준비해 주었고 하와이에서 지낼 집도 계약한 상태였다. 나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 며칠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업은 하와이로 본사를 옮길 계획이어서 도착하자마자 만날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주은이의 손을 잡고 장례식장 밖으로 나오자 우리를 발견한 요셉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지는 않았다.
“내 새끼 잘 부탁한다. 에미야. 사돈한테도 안부 전하고. 도착하면 연락할 거지?”
함정희의 손을 붙잡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고달자가 핍진한 얼굴로 말했다. 빈말을 할 수는 없어서 나로서는 마지막이 될 인사를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고달자는 주은이에게 따로 작별 인사를 챙기지는 않았다. 그건 함정희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정 떼려는 마음들이 가득해 보였다. 다행이었다.
요셉의 차가 먼저 출발했고, 나도 주은이를 태워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