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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25. 2023

유령 가족

단편소설 #11

공항 입구에서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처분해 줄 사람이었다. 남편의 차였지만,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요셉은 차를 처분한 후 수화물까지 해결하고 우리가 있는 라운지로 왔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무슨 말이든 지금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무래도 비행기가 뜨기 전까지는.


요셉이 내게 비닐봉지 하나를 건넸다. 경찰에게 받은 남편의 유품이라고 했다. 비닐봉지 안에는 휴대폰과 하얀 종이가 몇 개 들어 있었다. 남편의 지긋지긋한 유서인 것 같았다. 이걸 내가 꼭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요셉이 대답했다. 그것도 자신이 처리해 주겠다고. 뭐든 말만 하라고. 그래도 안 보기는 찝찝해서 종이 하나를 펼쳤다. 늘 보아 왔던 일기 같은 유서들. 그 속에 눈에 띄는 글귀가 있었다. ‘나는 늘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껴야 했고’라는 부분이었다. 그가 나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게 나라는 사람을 향한 열등감이었을까, 내가 만든 유령 가족 때문에 생긴 열등감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내게 열등감을 느껴서 밤마다 조성숙을 찾아갔다는 건 변명이고 비약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해서 주은이를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나도 자리에 앉았다. 주은이의 손을 꼭 붙잡았더니 그 손 위로 다른 손이 얹혔다. 비로소 편안한 표정의 요셉. 그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다짐 같은 것. 이를테면, 좋은 남편이 되겠다거나 이상적인 가정을 꾸려 보자는 얘기들이 느껴졌다. 이제 주은이에게는 진짜 하와이에 사는 부모가 생길 것이었다. 서로 다른 혈액을 가진 우리는, 모두 부모에게 버림받은 우리는, 지긋지긋하고 허망한 핏줄 관계에서 벗어나 완벽한 가정을 꾸릴 것이다. 


수면제 한 알을 삼키고 휴대폰을 비행기 탑승 모드로 바꾸려고 하는데, 조성숙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한 조성숙. 남편을 죽였는지 죽게 만들었는지 본인만 알고 있을 진실. 진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진실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을, 숨겨야 할 진실로는 어떤 협박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될 조성숙. 그녀의 발광하는 모습이 파름한 하늘 아래로 낙하하는 걸 바라보며 나는 마침내 잠들고 있다. 






https://brunch.co.kr/@jjwriter/18


본 소설은 아르코문학지원에 선정되어 의무적으로 발표하는 소설입니다. 첫화부터 읽으시는 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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