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4
남편은 조성숙과 이혼 후, 그리고 나와 재혼한 후에도 불안 증세를 보였다. 우울증과 공황 장애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가정 폭력과 불화의 고통 속에 있을 때는 없었던 병이 그것을 벗어나자 생긴 것이었다. 남편은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자수성가해서 이룬 프랜차이즈 사업도 문제없이 잘 꾸려 가고 있었고, 부부 사이라든가 아이 문제라든가 어디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따로 만나는 친구나 지인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인간관계의 폭이 좁은 대신 스트레스도 적었다. 그런데 그는 계속 우울하고 괴로웠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한 직후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말 죽으려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건 알고 있었다.
나는 남편을 쉬게 해 주고 싶어서 내가 대신 사업을 책임졌다.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보거나 베이비시터가 집에 올 때는 어디론가 외출을 하곤 했다. 이따금 내가 퇴근한 후 집을 나서기도 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그의 밤 외출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집 안에만 있는 것보다 외부 활동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영안실 앞에서 알게 되었다. 남편이 밤마다 조성숙을 만나러 다녔다는 사실을. 조성숙의 집에서 조성숙의 술친구가 되어 주고 과격하게 변하는 조성숙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과거의 공포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도, 그러면서도 남편은 조성숙을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함께 있었지만 뛰어내리는 건 보지 못했다는 조성숙을 향해 나는 정성을 다한 따귀를 후렸다. 조성숙이 그것을 되돌려 주었고 나는 주먹을 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격했다.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기다란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조성숙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남편은 말이에요. 그걸 좋아했다고요. 불안해하면서 즐겼다고요. 그렇게 이어지는 섹스를 경험하면 아무도 벗어날 수 없어요.”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죽은 남편은 파렴치한 이중인격자였다. 평온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꿈꾸면서 위험한 섹스를 그리워한. 그가 그리워한 것은 내가 줄 수 없었던 것임이 분명했고 그건 이상적인 가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죽은 사람에게 입장을 들을 수 없으니 조성숙의 말만으로 남편을 매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이 죽었으니 타깃을 바꿔 내 인생에 흡반을 들이댈 요량으로 그런 말을 지껄일 수도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고 그 사람의 시신이 바로 저기에 있는데도 조성숙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망자를 모욕하고 있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내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알았더라면, 나는 조성숙 따위를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 흡반 기관을 잘라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