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0주 차, 임밍아웃
몰래 찾아온 우리의 소중한 비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우리의 아가. 당연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비밀을 위한 태명을 미리 준비해 두지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물론 보통 태명은 미리 준비해두지 않는 경우도 많고 아가가 찾아와 준 순간을 기념하는 태명으로 짓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경우도 태명을 짓기에 너무 늦어진 케이스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임신 사실을 거진 한 달여 늦게 알게 된 후폭풍을 겪고 나니 아차 싶은 느낌이 찾아온 것이다.
조리원, 병원, 보건소, 지원금 바우처 등등 빠르게 알아보고 결정해야 했던 것들을 한바탕 치르고 나서 아내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이제 한숨 돌리겠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니지 여유 부리면 안돼’ 라는 생각이 함께 찾아왔다. 뭔가 중요한 정보를 놓치진 않을까, 자질구레한 지식이라도 그게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가만있어선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불현듯 생각난 것이 바로 ‘태명’이었다.
‘너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 넘어 자부심을 느끼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유행을 타는 이름이 아니고, 문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내 삶의 지향점으로 삼아도 될만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먼 미래에 내 자식에게도 훗날 자신의 이름을 쏙 마음에 들어 하도록 멋진 의미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이 친구가 이미 아내의 뱃속에 찾아온 마당에, 어서 태명부터 지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내 머릿속은 바삐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내의 이름엔 ‘오직’, ‘보배’라는 뜻이 담겨있고, 내 이름엔 ‘숲’ ‘은은한 소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 이런 뜻을 담아보자. 이에 파생되는 의미를 지녔으면서도 발음하기 쉽고, 발음 자체만으로도 예쁜 이름은 없을까? 숲의 아이이니까 ‘나무’ 같은 요소가 들어간 태명은 어떨까? 아니, 그건 너무 내 이름만 고려한 태명인가?
아내는 우리의 소중한 비밀이 찾아온 사실이 꿈만 같다고 했다. 드림이는 어때? 하고 물었다. 나는 ‘너무 흔하고 촌스러워’하고 대답했다. 아내는 째릿하는 눈빛을 보냈다. ‘두 글자로 자기가 지어봐!’라는 호통에 가까운 숙제는 덤이었다.
고작 두 글자, 세 글자에 어감도 좋으며 동시에 아름답고 뜻깊은 의미를 담기란 보통일이 아니었다. 나는 며칠 동안 아무런 후보도 만들지 못했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의 아가가 찾아온 사실을 알리기 위해 처가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 소식에 귀여운 서프라이즈와 초음파사진이 담긴 예쁜 엽서를 담아, 이 아이의 첫 소개 순간을 좀 더 아기자기하게 꾸미려고 했다. 아내가 준비한 엽서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반가워요 저는 ‘사랑이’라고 해요’라고 적혀있었다.
평소 애정표현을 너무 낯간지러워하는 아내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은 꽤나 용기를 낸 이름이었다.
‘너의 방문을 일찍 알아차라지 못해 그동안 주지 못했던 사랑을 배로 주어야지.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너무 부끄러운 사람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해 줘야지’
아내가 정한 ‘사랑이’라는 태명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의미를 듣고 더 이상 다른 태명을 고려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사랑’에는 모든 게 담겨있지.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단어가 아니던가. 그저 멋있고 세련되고 있어 보이는 ‘의미’만 생각하면서, 앞으로 우리와 절대적 사랑을 주고받을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불러야지. ‘사랑아’하고 말이다.
한 줄 정보
1. 태명은 부르기 쉽고 발음하기 쉬운 간단한 의미로 짓는 게 좋다.
2. 정작 중요한 '이름'을 짓기 전에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고 깊은 의미는 진짜 '이름'에 담는게 좋다.
3. 요즘은 가족, 지인에게 '임밍아웃' 하기 위한 귀여운 소품들이 많다. 엽서나 선물상자는 기본, '서프라이즈'를 위한 복권형태 공과금, 주차위반 고지서 형태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아이템을 활용할 수 있다.
4. 보건소에서 '기본검사'를 무료로 해준다. 일반 산부인과 병원에서 해주는 기본검사의 경우 보건소에서 확인할 수 없는 항목까지 추가해서 실시할 수 있다.
5. 처음 임신사실을 알고 난 뒤 가장먼저 해야할 일은 아마도 '국민행복카드 신청' 100만원가량의 지원금이 나온다. 해당 금액으로 출산전까지 기본적인 산부인과병원 진료비를 부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