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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12] 충돌 下

또 다른 충돌

by Sylvan whisper

'대장님... 죄송합니다. 관제사가 실수가 좀 있었습니다.'


공중충돌 사고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어느 날, 훈련비행이 한창이었다. 항공기들은 줄지어 활주로에서 뜨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프로펠러가 위잉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해가 맑았고 바람이 잔잔한 날이었다. 이렇게 날씨가 맑고 대기가 안정적인 날은 훈련비행을 하기에 알맞았다. 훈련비행 하기에 좋은 날씨라는 것은 더욱 많은 항공기가 날아다닌다는 것을 의미했다. 날씨와 비례하여 항공기의 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불안감 또한 비례하여 늘어났다. 항공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아직 극복하지 못한 불안감이 따라다니던 시기에, 관제반장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기 상단에 떠오른 관제반장의 전화번호가 쉽사리 수화기를 집어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사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이 상황에 대한 '예감'이 들었다. 공중에서 또 다른 어떤 위급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관제반장은 그 사례에 대해서 내게 설명을 할 것이고, 관제사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설명할 것이다. 관제반장과의 통화가 끝남과 동시에는 상관에게서 전화가 오겠지. 깊은 한숨을 내쉬고서 나는 전화를 받아 개괄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대면보고를 드리러 갈 것이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린다 해도, 이에 대해서 납득을 하지 못하신다면 관제사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수도 있다.


'제가 잘 설명드리고 오겠습니다. 우리 병력이 자책하지 않게 신경 써주세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고 했던가, 전화벨소리가 두세 번 울리는 동안 주마등처럼 빠른 속도로 흘러간 나의 '예감'은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곧바로 전대장님의 연락을 받고 그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전대장님은 들고 있던 펜의 뚜껑을 닫으며 침착하게 상황보고를 요구했다.


'저희 관제사 입장에서는....'


그는 굳은 표정으로 보고 내용을 들었다. 이내 덤덤했던 표정이 일그러지고, 그가 소리쳤다.


'야이 자식아...! 사고도 그래서 났던 거 아니야!? 아직 정신 못 차린 거야!?'


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고는, 관제사들에 대한 변호를 시작하였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분연한 고함이 터져 나온 것이다. 전대장님의 고함소리가 멎은 뒤 적막이 흘렀다. 적막은 고함소리에 반비례했다. 항공기의 프로펠러 소리는 계속해서 위잉 거리며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의 '화'는 내게 빠르고 짧은, 감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진공상태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 직후, 진공상태가 찾아온 것과 비슷하게 내 행동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보고를 마치고 다시 활주로를 가로질러 내 사무실로 향했다. 여전히 날씨는 맑았고, 바람은 잔잔했다. 대기가 안정적인 날에는 프로펠러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위잉거리는 저 무심한 프로펠러 소리가 원망스러웠다.




처음 보았던 그의 '화'에 나는 단 번에 첫 번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어쨌든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전대장님은 나를 다그치는 법이 없었다. 그의 이성적인 차분함이 어느 순간부터 내게 어떤 착각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만한 능력을 겸비한 참모이고 그의 '완전한 신뢰'를 받고 있다고 말이다. 이게 내 착각이었음을 가장 먼저 알았다.

그리고 전대장님의 사무실 문을 닫고, 내 책상으로 돌아오면서 상념에 젖은 채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공중충돌 사고의 여파가 가시지도 않은 이 시기에 그가 원했던 답변은 이런 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변호는 그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조종사나 관제사나, 그저 서로 간에 보완할 점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고 이후로 나는 마치, 대대의 문을 걸어 잠그고 그저 내 식구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취되어있었던 듯했다. '진짜 정답'이라는 것은 내 식구만을 감싸고돈다고 해서 나오지 않음은 자명했다.


책임은 언제나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으나, 그 믿음이 나 스스로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그제야 작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종이 위엔 여전히 어지러운 펜 자국과 커피 얼룩이 남아 있었다. 머릿속은 점점 공허해졌다. 문책위원회는 끝났지만, 모든 것은 끝나지 않았다. 지휘관으로서의 일상은 여전했고, 보고서와 각종 서류들은 여전히 내 자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위해 필사적으로 고군분투해 왔다. 그리고 오늘 알게 되었다. 나는 감정의 방향을 잃었다.


'나... 이 사무실 어딘가에 매몰되어 있구나'




깨달음은 얻었지만 적잖은 충격과 그 충격에 비스듬히 걸쳐진 후회를 안고 퇴근을 했다. '매몰된 나'를 마주친 오늘, 맨 정신으로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그 혼란을 곧바로 마주하기 무서웠던 것이다. 중대장 후배들과의 술자리를 가졌다. 사고 이후 처음이었다. 부대 근처 허름한 식당, 깜빡이는 형광등 아래에서 우린 각자의 피로를 나눴다. 술은 빠르게 비워졌고, 식탁 위에는 반쯤 식은 찌개가 남아 있었다. 젓가락이 그릇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간헐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고 또 간헐적인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이 흐르면 나는 술잔을 들었다.


'막내는 아직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대장님은 정신없으셨어서 못 보셨겠지만, 그 녀석.... 조문 다녀오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서야 사고 당일 행정계장인 막내의 표정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분명한 어둠을 숨기고 있었던 그 얼굴을 말이다. 또다시 생각해 보니 녀석은 붉은 눈시울을 가지고 있었다. 지시했던 자료를 들고 왔을 때, 고개를 제대로 들고 있지 못했다. 그때 나는 모니터에 빨려 들어가듯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막내 녀석의 눈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바빴으니까,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 녀석... 그때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가?'


그날 막내의 얼굴에는 분명한 어둠이 있었는데, 나는 녀석의 얼굴에 눈물자국이 있었는지,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지, 아니면 무표정이었는지. 그 여부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떠올려보려고 노력해도 도무지 다시 생각나지를 않았다. 분명 어둠은 있었던 것 같은데, 막내 녀석의 얼굴이 흐릿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막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도 술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그가 그날 빈소에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사건’ 속에서만 움직여왔는지를 깨달았다. 사람이 죽었는데, 나는 문장을 다듬고 있었다. 그는 사람 앞에서 울었고, 나는 문서를 가지고 떠들어댔다. 그는 감정을 쏟았고, 나는 감정을 관리했다. 나와 내 주변인들의 감정을, 감히. 그 차이가 지금의 나를 규정했다.


늦은 봄의 저녁이었는데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쓸쓸했다. 평소엔 '부대'라는 공간 자체가 울타리 바깥보다 차갑게 느껴지곤 했는데, 그날은 유독 내가 걷는 이 보도블록 위의 공기만 퍼렇게 올라오는 듯했다. 내 길만 차가웠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출근을 했다. 수십 번, 수백 번의 수정을 거친 소명자료의 흔적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회의 테이블의 의자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삐뚤게 세워져 있었다. 사무실은 고요했는데, 고요는 평화라 할 수 없었다. 감정의 혼란이 오니 일상은 점점 버거워져 갔다.


내게도 두 번의 충돌이 왔다. 상관과의 충돌, 그리고 막내의 눈물과의 충돌. 이 두 충돌은 '내 내면의 충돌'로 수렴하였다.


'나... 이 사무실 어딘가에 매몰되어 있구나'


커피를 내렸다. 잔의 따듯한 온기가 손 끝에 닿았다. 예전 같았으면 내 안의 무언가도 뜨거웠겠지. 지금은 식어있는 속을 데워보기라도 하듯,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나는 이제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그저 내 역할에 몰입해 있던 나는 올바른 사람이었을까? 많은 생명이 산화하였다. 나는 그들의 산화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무언가를 느꼈던가. 기억이 흐릿했다. 죽음이라는 것에 감정이 동하던 내가 보이질 않았다. 커피를 마셨다. 혀 끝이 쓰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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