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그리고 싸움
항공기 공중충돌 사고의 문책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사고의 모든 '관련자'가 소환되었다. 그중 대대원은 5명이었다. 결코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사고가 발생했던 날 교육 파견 중이었다는 사유로 관련자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이 괴리는 묘한 감정과 상황을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 기묘한 괴리를 묶어 다시 채워야 했다. 내내 그들과의 연대감을 위해 고군분투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공감하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완연한 공감이라는 것은, 똑같은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감정이기에 그 역설이 드러난다. 나 또한 공감의 역설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인간일 뿐이고, 이 사고의 폭풍 속에서 그리고 공감의 역설 속에서 발버둥 쳤다. 그 투쟁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갉아먹었다.
'하.... 드디어....'
어제 새벽, 그러니까 문책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 사무실 프린터는 쉼 없이 종이를 토해냈다. 커피 포트에서는 물이 끓다가 멈췄고, 창문 밖으로는 귀뚜라미가 울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공기였지만, 피로한 의무가 깃들어 굵직하게 가라앉았다. 한동안 그러한 공기가 마치 이 부대의 표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문책위원회가 열리던 날, '전우'들은 문책위원회가 열리는 공군본부로 이른 아침 출발했다. 사고가 발생하고 약 2달이 흐른 뒤였다. 나는 사무실 책상에 주저앉아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내 생에 이날만큼 ‘털썩’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들어맞은 날은 없었다.
'만감의 교차'로는 이 순간의 심정을 표현할 수 없다. 이미 사고가 났던 순간부터 두 달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만감은 수도업이 교차했다. 그날은 그저 멍하니 창밖의 텅 빈 활주로와 파란 하늘을 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잘되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생각을 멈추었다. 잠시 동안의 정적, 고요함이 필요했다.
사고가 발생하고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무엇보다 '사고조사'였다. 사고조사단이 꾸려졌고, 그들이 필요로 했던 모든 자료를 정제하여 사실과 다름없이 제공했다. 그 이후는 문제점의 개선이 있어야 할 차례였다.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지지부진하게 개선의 과정을 끌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내에 가시적인 개선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수많은 노동과 사무를 의미했다. 사무실의 불을 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지치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문책위원회'였다. 나는 명확한 사실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했으며 동시에 '전우'들을 지켜야 했다.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그들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문책위원회는 '사고조사 결과'에서 출발했다. 짧은 기간에 작성된 이 사고조사 결과도 완벽하진 않았으며 '관제'라는 것을 완벽히 이해하는 주체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었기에 부족한 내용들이 분명 존재했다. 이를 총망라할 수 있는 소명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매일의 밤은 같은 온도로 찾아왔다. 그 속에서 형광등 불빛은 어제보다 더 희미해져 갔다. 커피의 맛은 점점 물에 가까워졌고, 나 또한 카페인이 아닌 그저 무언가를 마시는 행위로 잠을 깨우는 것 같았다. 창문 밖 활주로를 마지막으로 밝혀놓는 파란 불빛이 죽 늘어서 있었지만 이내 새벽으로 넘어가며 그 불빛마저 사라졌다. 멀리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가 사무실 벽에 닿았다가 산산이 부서졌다.
상황기록, 항적자료, 교신로그 등의 상황자료를 기본으로 항공법규, 조종사와 관제사의 권한과 책임범위, 항적 레이더의 물리적, 기술적 한계 등 내 책상 위는 모든 정보들을 위한 서적과 인쇄된 종이들이 쌓여갔다. 많이 읽어야 정확해질 수 있었고 또 정확해야 그들을 살릴 수 있었다. 소명 자료는 점점 한 권의 '책'이 되어갔다. 이를 요약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꼭 필요했다. 아무리 정확한 자료라고 해도 읽히질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책임감 하나로 버텼다. 수많은 밤을 눈을 뜬 채로, 읽고 쓰며 보냈다.
어둔 밤의 공기가 차갑게 식어가듯, 내려둔 커피가 애매한 온도로 식어갔다. 그 어느 날 밤에 생각했다. 집약적이고 튼튼한 무언가를 만들어낸 듯했다. 예를 들면 레이더 장비의 기술적 한계라는 것은 명확했다. 철저하게 '사실'인 것만 담으려고 노력했으니까. '사실'이라는 것은 문자가 지니는 딱딱함이라는 속성과 닮은 듯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딱딱함 속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이 명확함이 언제나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게 내가 버티는 방식이 되기도 했다.
몸은 피로를 호소하지만 정신만은 깨어있는 밤을 보내다 퇴근했다. 사무실의 불을 끄면 대대 건물 전체의 불이 꺼지게 되는 것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묘한 안도감들을 느끼다가도, 모든 불이 꺼진 뒤의 건물을 나서는 순간이 오면 서늘한 불안감들은 항상 찾아왔다.
소명자료는 중간관리자들의 수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준비는 여기서 끝날 수 없었다. 자료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위원회의 소환 조사였다. 문책위의 '위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공군의 '장군' 들이었다. 그들 앞에서 우린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작 대위였고, 사고기를 직접 관제하던 관제사는 '막내'라고 할 수 있는 20대 초반의 하사였다. 그 누구라도 군에서는 '장군'이라는 존재 앞에서 위축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조사 대상이 되어야 했다. 우린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소환조사를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막내 때문이었다. 이 어린 녀석이 그 큰 존재들 앞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예상 질의사항과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가 소명, 어필해야 하는 요소들을 정리했다. 문책위원회에 참석해야 하는 모든 대상자들과 대대의 중간관리자를 모았다. 대상자들이 직접 밝히고 싶은 이야기들까지 더해서, 우리는 답변하기를 '훈련'했다.
'막내야 긴장되니?'
'아닙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얘기 후련하게 다 하고 오겠습니다.'
'기특하다.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막내는 자료철을 꼭 쥔 채,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계속 옴지락거렸다. 종이 모서리가 접혔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손끝과 모서리 끝을 바라보다가, 이 아이가 어떤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지 생각했다. 두려움이라는 말은 그렇지만 입에 담지 않았다.
우린 우리의 문장과 단어를 담았던 종이, 그리고 우리의 '말'에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훈련했다. 하지만 지리멸렬한 과정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문책위원회'가 끝이 아니었음을. 우린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는데, 문책위원회 자체와 문책위원회가 끝나고 나서는 수많은 감정들이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 우리의 주변에 휘날렸다.
'하... 글쎄요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분명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일단은 조심히 내려오세요'
위원회가 끝나고 대상자 중 가장 경력이 많았던 관제사와 통화를 했다. 목소리가 결코 가볍지 못했다. 장군의 계급장이 갖는 무게처럼,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릴 짓눌렀다. 그들이 뱉어낸 표현과 단어들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추측하고 의심했다. 이러한 생각들의 결말은 필연적으로 걱정으로 수렴했다. 화를 내뱉는 관제사도 있었고, 불안을 내뱉는 관제사도 있었다. 나 대신 지휘책임을 지게 되어버린 중대장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막내 관제사가 얘기했던 한마디였다.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습니다.'
예상대로 이 지지부진한 절차는 마치 어떤 복잡한 송사를 겪는 것과 같았다. 행정이란 것은 그러한 것이었다. 사고에서 사고조사, 사고조사에서 문책위원회 까지도 수개월이 걸렸다. 이 문책위원회가 끝나고 나면 '재심의, 이의신청'이 가능했다. 이는 우리 관제사뿐만 아니라 모든 관련자들에게 동일했는데, '재심의'가 만약 발생한다면 또다시 수개월이 걸릴 것임을 의미했다. 그 뒤에는 '징계위원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다. 내가 내 식구들을 지키려 했던 과정이 어느 순간은 '싸움'처럼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적 싸움'은 점점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고 텅 비어가게 만들었다.
위원회로 동료들이 '소환'되었던 그날 오후의 사무실은 너무 조용했다. 커튼 사이로 햇빛이 흩날렸다. 형광등은 조용히 불을 밝혔다. 우리가 같이 회의를 하던 회의탁상의 의자 중 하나가 절반쯤 밀려나 있었다. 누군가 방금 전까지 앉아 있다가 나간 것처럼 말이다. 그 자리가 다시 채워지기까지는 고작 몇 시간이면 혹은 반나절이면 충분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날의 이 공백은 퍽 길었다. 그 빈 의자를 보며 알았다. 이 사건의 공허함이란 바로 이런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사무실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린 점점 비어져 갔다. 그 속을 허무함과 공허함이 채웠다. 몇 명의 소중한 동료가 산화해 버린 이 일은 이제 더 이상 '사고'가 아니었다. 그 뒤에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 사고는 종이와 문자가 되었다. 이 종이와 문장들을 통한 행정에는 감정이 없었다. '안타까움'이 없었다. 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남은 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서로 간에 대한 의구심과 그 의구심에 대한 적개심이 전부였다.
수 차례의 새벽과 오후의 빛이 사무실 유리를 스쳤다. 커피잔에는 하룻밤 동안의 먼지가 쌓여 있었고 종이가 눅눅해져 있었다. 널브러져 있는 결재판과 서류철 위로는 내 지문이 눌려있었다. 손끝으로 살짝 문질러보기도 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종이의 단단한 잉크도 번지지 않았다. 중요한 무언가가 분명히 기록으로 남았다.
내가 사무실에서 홀로 수도 없이 가라앉았던 것은, 혹은 가라앉은 상태에서의 멍해져 버린 나의 의식은 여기서 왔다. 나는 내 역할에 몰두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느낀 허무함과 공허함의 온상이었다. 감정이 없어지는 것. 그마저 남아있는 감정이, 의구심과 적개심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사실. 나는 이러한 '허무'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