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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13] 침잠

외적 관망, 내적 관찰

by Sylvan whisper


'부고 알림, OOO 본인상'


학교 동기 단체방에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소문도 없이, 소식도 없이 그의 죽음처럼 그 문장은 슬며시 찾아왔다. 나는 '본인상'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보통 이때의 내 나이대에는 '조부모상'이라는 단어가 더 흔했는데, 처음 들어보지만 본인상이라는 단어는 충분히 유추가 가능했다. 그 유추가 흐르는 동안, 전달된 이 사실이 실체화되지 않았다. 메시지를 확인한 이후 내 마음속엔 잠시간의 적막이 흘렀다. 이내 머리와 마음속의 그 적막이 걷혀가면서, 그 단어는 내 이성을 타격했다.


‘○○이가 집에서 숨이 끊긴 채 발견되었데'

짧은 말었고, 현실감이 없었다.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몇 개의 문자와 몇 개의 문장으로도 전해질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갖는 무한한 의미와 그에 반해 유한한 단어들, 그 간극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휴대폰 화면 속 글자들은 평평했다. 그럼에도 그 평면 위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내 동기는 2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라는 것 하나로도,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기의 부고 소식을 대신 알렸던 동기 대표는 덧붙였다.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들을 잠재우기 위한 말이었다.


'동기의 죽음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얼마 뒤 동기의 사인은 '돌연사'로 밝혀졌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그 단어는, 죽음의 이유를 아주 단순하게 묘사해렸 그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 모든 질문을 닫아버렸다. 왈가왈부할 것이 사라진 그 사유는 주변의 공기를 가라앉게 했고 텁텁한 입김을 내뿜게 했다. 그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마치 머릿속에서 딱 한 바퀴 빙글 돌고서는 증발해 버리는 허무맹랑한 헛소문을 들은 것처럼, 그 소식은 내게 와닿지 않았다.




그와 나는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함께 술자리를 가져보거나, 가까이에서 추억을 공유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에서 동고동락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농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농구코트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최고의 친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서로 간에 '농구를 좋아하는 친구'라는 묘사 정도는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퍽 좋아했는데,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 나와 통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걸맞게 그는 유쾌한 웃음을 자주 보이는 성격을 지녔었다. 때문에 내 기억 속 그 동기의 얼굴은 대게 웃는 얼굴이었다.


장례식장은 오후에 도착했다. 빈소가 차려진 곳은 집과 꽤나 가까운 곳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꽤나 젊은 나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빈소를 찾을 때 나의 옷차림은 '맞춤 정장'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차림새였다. 최대한 어두운 색의 남색 바지, 검은 양말, 평소에도 자주 입던 흰색 셔츠, 그나마 마이가 한 벌 있었기에 '정장'이라는 구색 정도는 맞출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빈소까지의 길은 꽤나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이었는지만 그 길은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지하철 역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와 계단이 마치 젖어있는 것처럼, 잿빛을 머금고 있었다. 지상으로 올라온 뒤의 보도블록은 가로수에서 떨어진 송진이나 짓이겨진 열매가 진하게 스며들기라도 했는지 얼룩 더룩 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애매하게 어둑한 길을 따라 빈소로 향했다.


입구에서 헌화를 하고 명부에 이름을 적었다. 동기의 가족들과 마주 보고 머리를 숙였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수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순서 그대로였다. 영정사진 앞에서 나는 잠시 그를 떠올렸다.


나는 사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없다.’ 그러나 이 문장은 내게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않았다. 웃고 있었던 그의 표정으로 인해서인지, 오히려 현실감이 더 멀어졌다.




조문객들의 움직임은 일정한 리듬을 갖고 있었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침묵했다. 그런 다양한 조문객들 중 꽤나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우리 동기들이었다. 나는 동기들이 모여있던 곳으로 향했다. 이미 통곡이 흐르고 있던 우리 동기들 무리에서 나는 조용히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한 녀석은 시뻘건 눈을 하고 계속해서 술잔을 들었다.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했다. 그것이 세상을 향하기도 했고 죽은 동기를 향하기도 했다. 이렇게 가는 건 아니라며 울었다. 한스러움을 뱉어내는 동기 옆으로 또 다른 녀석은 그 친구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 속엔 세상을 떠난 동기를 품고 있었지만, 그의 손은 시뻘건 눈의 다른 동기에게 향했다.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 있었다. 동기들은 저마다 떠나간 그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돌연사라는 것의 속성에 대해서도 하나둘씩 의견을 더했다.


장례식장 한편의 젊은 누군가는 복도 끝 벽에 기대어 어깨를 들썩였다. 아마도 동기 녀석의 어려서부터 지내온 동창 혹은 동네친구쯤 되어 보였다. 많은 소리가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 흰 국화가 쌓이는 소리, 향에 불이 붙어 타들어가는 아주 미약하고 얇은 소리, 종이컵이 식탁에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대게는 낮은 흐느낌이 흘렀다. 그 모든 소리가 한데 섞여 하나의 ‘배경음’처럼 들렸다.


나는 장례식장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그곳의 소리와 광경들이 내 주변으로 그저 흘러갈 뿐이었다. 태풍의 눈처럼 나는 한가운데에서 고요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슬픈 감정이 아니라, 그곳에서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빈소로 향할 때와 같은 길을 따라서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여전히 인적은 드물었다. 몇 없는 지나쳐간 사람을 보았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 그들이 짓고 있는 표정을 보았다. 저 사람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를 지나치는 그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을 떠올렸다.

마침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차창을 통해 내 얼굴을 마주했다. 울고 있지도 않았고 웃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무표정이었다. 눈동자에 비친 불빛이 흐릿하게 떨렸다. 내 표정을 마주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이날의 감정은 내게 와닿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감정들도 나를 통과시키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마주 본 모든 장면과 모든 소리가 '내 것'이 되질 않았다. 그 장면들을 나는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보고 있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 너머에서 누군가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의 울음은 분명했다. 그들의 비통함도 분명히 보였다. 그렇지만 내 가슴엔 침투하지 않았다. '관찰하는 나'를 인식할 수 있게 된 뒤부터는 나 자신을 관찰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일은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지만, 나의 시점은 그 소용돌이 속의 고요한 한가운데 혹은 그 소용돌이의 키보다 한참 큰 공중에서 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날의 장례식장과 그날의 나를 떠올린다. 나는 여전히 그가 왜 떠나야 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어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죽음은 더 이상 '사건'이 아니었다.


그때의 내 무감각을 다시 떠올린다. 슬픔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슬픔을 이해하려 했던 것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배경과 같았던 슬픔들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 눈물들을 마주함으로써 가슴에 담아 가기 위한 첫 단계를 지난 것이었다. 감정에 잠기지 않고, 그 감정을 해석한다. 어떤 '죽음'에 대한 관찰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내면과 감정에 대한 관찰자였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생동감이 넘치던 나의 감정들도 조금씩 무덤덤함을 알아갔다. 감정이 동요하는 순간이 적어진 나 자신처럼, 그날의 혼란에 대한 회상도 조금은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죽음에 익숙해진다는 것,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따위의 일들은 바로 이런 걸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얽힌 수많은 일화와 감정들에 대해서 차분함의 층위가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다.

이 차분함의 층위가 쌓여가는 과정에서, 무덤덤함이 점점 늘어간다. 그리고 역동적이었던 감정에 무덤덤함이 처음 찾아오게 되는 순간, 우린 동요한다. 자신의 냉정함과 차가움에 대해 당혹스러워한다. 이 혼란이 크면 클수록,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흐르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렇듯, 1차적으로는 슬픔을 주기도 하나 2차적으로는 혼란을 선사한다. 때문에 내면에 대한 관찰, 그리고 주변에 대한 관망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 또한 어딘가의 장례식장 사진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는 내 사진을 바라보며 울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처럼 고요히 관찰할 것이다. 죽음은 그렇게 저마다의 관찰과 기억으로 순환한다. 이 속에서 우린 슬픔과 혼란으로 이리저리 튈 때도 있지만, 이를 잊지 않는 법과 잠기지 않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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