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남편의 마음, 그걸 지켜보는 나(아내의 입장)
그러다 집안일을 하다 별 것 아닌 걸로 싸우게 되었는데(빨래 사건) 남편은 이미 토라져있었다.
그날 마침 상담에 가는 날이었고, 우리가 싸운 빨래 사건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사건의 발단은 남편이 빨래를 같이 개자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일하고 와서 저녁도 내가 차리고 치우기도 내가 하는데 이걸 굳이 같이 하자는 남편에게
왜 이렇게 나한테 집안일을 시키지? 자기가 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단지 나랑 같이 집안일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교제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나는 빨래 개기를 일로 받아들였고, 남편은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편은 이런 사소한 다툼이 있을 때마다 빨리 내가 일해야지 라며 말하고는 했다.
그러나 이제 갓 한 달이 됐을 뿐이었다.
나는 말이라도 남편에게 아직 얼마 되지 않았다고 쉬라고 했다.
남편은 얼른 나가서 돈 벌어야지라고 말했는데 씁쓸해지는 것은 나도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같아서는 3개월 6개월 1년이라도 쉬라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하기도 하고
그동안 준비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내가 조금 더 경제적으로 마련했다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남편이 더 마음 편하게 쉬면서 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정말 혹독해서 앞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올해 안에 부동산을 정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러 단계들이 있다.
남편에게는 티 내지 않았지만 간절히 기도했다.
아무리 문제 해결을 좋아하는 T라지만 가끔은 나도 회피하고 싶을 때도 있고
남편에게 기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남편의 언덕이 돼줘야 하는 차례다.
나에게도 남편의 재취업 문제는 남편이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이나 최대의 관심사이자 중요하다.
그러다 베트남에서 남편이 나에게 이직성공을 알리는 꿈을 꿨는데 꽤 좋은 회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상담은 아직도 진행 중
상담 센터로 운전해서 가는 중, 아.. 혹시 남편이 같이 집안일 하자는 의도는 함께하고 싶은
시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상담사와 상담하는 중에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그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상담사는 남편이 나에게 느꼈던 속상했던 점, 서운했던 점을 전달하면서 남편이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워딩 자체보다는 의미에 포커스를 맞춰보자고 했다.
남편은 베트남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모든 것을 남편에게 위임하는 나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여행 준비도 함께하는 시간에 포함되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때도 여행준비를 '일'이라고 생각했었고, 남편은 '일'이 아닌 여행준비도 '함께하는 시간'에
포함됐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최근 일어났던 빨래 사건과 크고 작은 다툼들이 퍼즐처럼 촤르르 맞춰줬다.
마치 명탐정 코난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나에게 툭하면 튀어나오는 레퍼토리
레퍼토리 1) " 네가 힘들면 날 떠나도 돼. 언제든 말하면 헤어져줄게. "
레퍼토리 2) " 내가 너 인생에 부속품 같아. 부속품은 대체될 수 있잖아. "
실제로 남편이 레퍼토리 2를 말했을 때
나는 그럼.. 나는 아이들을 낳고 출산 직전까지 일하고 집안일하는 기계냐면서 논리로 맞섰다.
상담사는 그거 아니고(논리 아니고).. 이제는 좀 외우세요라고 말했다.
실제 분위기는 매우 유쾌했다.
레퍼토리 1,2는 사실 유형만 다를 뿐 그 말의 의미는 매우 비슷했다.
" 제발 날 떠나지 마. 날 사랑해 줘. "라는 뜻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들어준 예시는 이랬다.
" 오빠 밖에 없어. 오빠 없으면 우리 애들이 태어났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
이게 정답이라고 했다.
이에 덧붙여 요즘 남편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는 것 같다면서 설거지 비하인드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너무 귀여우면서도 짠하다면서 또한 그렇게 한다고 실질적으로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
상담사도 남편과 상담 중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서 가능하면 남편이 돈 문제에 예민해져 있으니
당분간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남편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집안일에서 어떤 문제로 어떤 말을 했을 때 갈등이 생겼는지
그래서 그 갈등상황에서 어떤 부분에 서로 기분이 나빴는지 하나씩 이야기해 나가면서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며 객관화할 수 있었고 아 그건 나 스스로 이래서
이랬구나, 그때 남편은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이런 점들이 와닿았다.
사실 베트남에 갔다 와서도 남편이 어떤 걸로(?) 인해 삐져있었다는 것은 느낌으로 알았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풀어주기 싫었던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나도 삐졌으니까.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부터 풀어줘.라는 마음이었달까.
결혼한 지 오래됐어도 이렇게 투닥투닥할 때가 많다는.
선생님이 상담하면서 남편이 마음이 토라진 것 같아서 이번에는 무슨 일일까? 걱정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이야기도 듣고 싶다며 상담 예약을 잡고
방문하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성사된 상담(?)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선생님과 오랜만에 만나면서 유쾌했고 웃으면서 상담했다.
이제는 서로 긴장하지 않고 편한 그런 사이.
혹시 남편이랑 살다가 뭔가 서로 감정이 너무 상해서 사이가 안 좋아질 것 같을 때 오라고 했다.
남편은 자녀 양육에 대한 부분으로 지속적으로 상담 중이었다.
그 와중에 여행과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투닥투닥이 터졌고 그래서 상담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 바람에 자녀양육 이야기는 하나도 못했다고 했다.
상담하고 집으로 오면서 집에 가서 남편을 보면 꼭 안아줘야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상담에 가기 전에는 서로 조금 삐진 미묘한 감정을 남긴 채로 떠났는데 돌아오고 나니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동안 혼자서 마음고생 심했을 생각을 하니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었다.
남편은 갑자기 직진해서 안기는 나에게 무슨 일 있어?라고 말했고
나는 하나 둘 상담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들어주었고 서로 오해했던 부분에 대해 풀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도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다음날도 출근했던 터라 굉장히 피곤했다는 후문이.
상담을 하기 전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상담을 하기 전에는 오해라는 가면을 쓰고 대화했다면
상담 후에는 오해라는 가면을 벗고 진솔하게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솔직해져 가는 중이다.
마치 벼가 무르익어가듯이, 술이 시간이 오래되면 농도와 깊이, 맛이 진해지듯이
만약 남편이 퇴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삶이란 여러 가지 프리즘 속에서 퇴사가 꼭 검은빛을 비추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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