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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Dec 04. 2021

3할배투어(1) - 부안 곰소항

친구가 스승이 되고 롤모델도 되기도 하고

집안일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 운동하고 요구르트에 과일과 호두를 함께 섞어 간단히 먹는다. 핸드드립으로 만든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침을 연다. 재롱이 아침, 소변 패드 갈기, 청소를 하고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강의를 준비하기도 한다. 정오가  즈음이면 산책하러 나간다.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고 보리차를 끓이고는 가까운 식당으로 향한다. 전라도 해남의 생선구이 백반이 집에서 먹는 맛과 거의 같다. 오후는 빨래하고 건조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도 사용한다. 이런 세탁기와 건조기가 없는 예전의 여성들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상상이 된다. 첨단 기계를 사용해도 집안의 소소한 일은 끝도 없이 나온다. 내일은 골프 약속이 있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에는 잠을 청하면 금방 곯아떨어졌는데 왠지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부터 눈이 일찍 뜨였다.

사실 엊저녁부터 마치 어릴 적 소풍 가기 전날처럼 약간 마음이 설레었다. 아침부터 재롱이 간식과 물을 챙겨주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친구가 나를 태우기 위해 집으로 오고 있다는 카톡을 받았다. 여의도에서 출발한 친구가 압구정에서 두 명을 픽업하고 다시 분당으로 왔다. 모두 군대 동기들이다. 오늘의 행선지는 원주 공군 체력단련장이다. 티맵으로 보니 출근시간과 겹쳐 약 1시간 25분이 걸린다. 여의도에서 온 친구는 거의 2시간 반을 운전한다. 복 많이 받을껴~


차를 타고 가다가 운전하던 친구가 내가 쓴 브런치 글을 잘 읽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동안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 어떻게 브런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친구가 내 글을 보내주어서 읽었다고 했다. 내 글에 백퍼 공감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공감했던 글을 자세하게 나에게 설명한다. 본인도 걷기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는데 내 글을 보고 더욱 동기부여가 생겼다고 했다.


심지어 나를 롤모델로 삼겠다고 한다.      

“야, 무슨 롤모델까지? 그냥 공감해주는 것으로 만족해”라고 했다. 사실 평소에 ‘내 글을 보고 한 명이라도 공감하고 삶의 변화를 함께 체험하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를 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내 희망을 발견했다. 친구에게 “일단 3개월을 계속하면 습관이 만들어진다”는 조언을 했다.


가끔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하다가 생각이 나서 내 글을 카톡으로 보내면 다양한 반응이 오는 것을 발견한다.     


보낸 글을 읽고는 쌩까는 친구도 있다. 좋다 싫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면 ‘공연히 보냈구나’ 후회한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내 마음을 다독이지만 살짝 불편한 마음은 남아 있다. 그런 일이 있고는 다시는 내 글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소설가 김훈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글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평소에 나 역시 김훈 작가를 좋아하였기에 공감을 했다. 그러면서 조금 망설이다가 내가 쓴 <생의 마지막을 지금 생각하는 이유>라는 글을 보냈다. 조금 후, 회신이 왔다.      


“글이 좋아 아내에게도 내 글을 공유했네~”라는 메시지였다.      


단톡방에도 공유하겠다는 것을 말렸다. 아직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기도 하고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생각을 갖고 구태여 읽고 싶지도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공감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글을 읽고는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지적을 받을 당시에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지나고 나면 솔직한 평가에 내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고맙게 생각한다.     


어제 같이 차를 타고 가는 친구처럼 글을 읽고는 본인의 삶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아주 좋다. 내가 브런치에 글 쓰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읽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자신을 표현하고 결국은 자기 만족감에 하지만 주위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대단한 축복 이리라. 글에 대한 반응만이 다양한 것이 아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한 반응 또한 다양하다.     


며칠 전, 또 다른 군대 동기 두 명과 함께 부안 내소사를 갔다. 한 친구가 고맙게도 시간대별 일정과 함께 허영만의 백반 기행에 나온 맛집까지 추천하여 미리 카톡방에 올렸다. 차를 타고 가면서 서로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남자들의 수다도 결코 만만치 않다. 서로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비가 뿌리기 시작하더니 부안에 도착할 즈음 비가 눈발로 변했다.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는데 흩날리던 눈발이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렇게 날씨가 변덕이 심하지~”라고 나 혼자 투덜거리는데 차에서 내리던  친구가 “야, 올해 첫 함박눈이 부안에 온 우리를 환영해주는데~” 하면서 웃으면서 식당으로 들어간다.


‘아, 이렇게 반응이 다르구나’

순간 놀랐다. 어쩌면 똑같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놓였는데 전혀 다른 반응을 하고 있었다. 내소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는 함박눈이 우박으로 변했다. 우박이 오건 함박눈이 내리건 날씨는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 대한 감정의 반응은 좋든 싫든지 내가 선택한 것이다. 난 부정적 감정을, 친구는 긍정의 감정을 선택했다. 아니 이미 감정이 습관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친구의 모습에서 문득 깨우침이 떠오른다. 친구가 나의 스승도 되는구나.      


연 이틀간, 멋진 친구, 스승, 멘티와 함께 있어 행복했다.

그러고 보니 모두 공군 동기들이었다. 공군 장교로 단기 복무하면서 삶의 경험을 많이 배웠다. 중위 말년에는 뜻하지 않는 병에 시달렸지만 오히려 삶의 진로에 대한 진지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결심을 한 것도 군 시절이었다. 남들은 군대 시절은 결코 돌아보기도 싫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값진 경험이었다. 지금까지도 공군 체력단련장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혜택도 받는다. 내년이면 임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내가 받은 것을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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