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데이 파더스 클럽 (4) | 어느 날 초대장이 왔다
아이가 그동안 고대하던 게임 ‘마인크래프트(이하 마크)’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늘 복잡하다.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언제 그 게임을 할 수 있게 허락해줘야 하는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서 게임은 대화의 중요한 소재이자 매개가 된다. 같은 반 친구들도 다 (게임을) 한다며, (나도) 하고 싶다, 시켜달라고 보채는 아이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가능한 한 살이라도 더 늦게 게임에 입문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마지못해 허락한 후에도 아이가 한다는 게임이 과연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걱정도 컸다. 결국 주말에만, 아빠와 같이 있는 동안에만,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 동안만 마크를 하기로 약속했다.
기미 상궁의 마음으로 가볍게 살펴보니 마크는 전반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게임이었다. 원하는 게임을 하도록 허락받은 아이는 신이 난 얼굴로 초록빛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나는 아이에게 기본적인 이용 방법을 가르쳐준 다음 한동안 옆에서 뭘 하고 있나 곁눈질하다가 곧 무심해졌다. 소싯적 즐기던 게임과는 영 다른 결이었다. 더 큰 이유는 아마도 삶의 어느 시점을 지나는 순간 더 이상 게임에서 예전과 같은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번의 주말이 지난 어느 날, 옆에 앉아 있던 아이는 꽤나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말을 걸었다.
“아빠, 나랑 같이 마크하지 않을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이가 내 계정으로 보낸 초대장을 열었다.
‘000님의 월드로 접속합니다.’
짧은 메시지와 함께 나는 아이의 마크 속 세계로 초대받았다. 현실의 창 밖엔 분명 어두운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마크에서는 파란 하늘 위로 둥근 해가 둥실 떠 있었다. 햇빛 눈부신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아이가, 정확히는 아이의 네모난 아바타가 나를 불렀다.
“이쪽이야! 이쪽으로 와야 해!”
“…!”
아이가 만든 마을을 보고 나는 그만, 혼자서 몰래 감동해버렸다. 아, 이 아이가 주말마다 뚝딱뚝딱 만들어대던 게 이건가? 이 친구가 바라는 세상은 이런 세상일까? 마을에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 속 캐릭터를 본뜬 건물이 곳곳에 솟아 있었다. 건물 앞에는 초원과 소와 닭, 양들이 뛰노는 동물농장이 꾸며져 있고, 마을 앞바다 깊은 곳에는 수중 도서관이 있었다.
처음 접속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때는 분명히 아무것도 몰랐는데 어느새 이런 건축 노하우를 습득한 건지, ‘마알못’인 나로서는 그저 입이 벌어질 뿐이었다.
“아빠, 여기로도 와 봐!”
아빠의 표정을 보고 의기양양해진 아이가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그쪽에는 하늘을 이리저리 휘젓는 롤러코스터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세상에 얘가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 싶은 마음으로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는 계속 옆에서 차근차근 코칭을 해준다. 아빠, 그렇게 하면 롤러코스터 못 타. 점프를 잘해야 해. 봐봐 이렇게 하는 거야. 아빠, 곧 있으면 저녁이야. 해 지면 좀비들 와서 위험하니까 자러 가야 해. (으응? 좀비?) 내가 저기에 침대 만들어 놨으니 같이 가자. 나만 따라와.
‘나만 따라와’라니. 그곳에서 아이는 나의 보호자이자 수호자였다. 게임 속 삶의 방식에는 무지한 초보자 아빠에게 아이는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줬다. 침대에서 자는 법, 하늘을 나는 법, 사냥을 하는 법, 식량을 얻는 법… 등 자신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공간에 들어와 한 팀이 된 아빠를 보살피기 위해 아들은 꽤 긴 시간 동안 하드 캐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인크래프트는 코로나 시국에 유행하기 시작한 메타버스의 주요 모델 중 하나로 꼽히는 게임이다. 엔딩이 있는 형태가 아니며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가상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 여기서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처럼 실존하는 랜드마크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메타버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아이는 마크 세상에서 나를 이끈다. 매번 접속할 때마다 새로 지은 건물을 소개해주고, 그 공간을 내가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살핀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게임 밖 일상에서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하던 내 모습을 돌아본다. 나는 아이가 내게 마크에서 대하는 것만큼 살갑게, 신나게, 즐겁게 대하고 있는가? 아이는 아빠가 자기가 만든 세상에 초대받아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그저 기쁘고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데.
마인크래프트를 오가며 슬쩍 미안한 마음이 든 이후로 좀 더 넓은 마음을 갖고 아이와 이런저런 게임을 같이 하곤 한다. 하루가 다르게 신문물을 습득하는 아이로서는 마크 외에도 하고 싶은 게임이 천지다. 하나하나 살펴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주말 동안 함께 플레이한다. 단, 광고가 많거나 지나친 ‘현질’을 유도하는 게임은 피한다.
게임에서는 매번 아이가 앞서 나간다. 이미 게임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차근차근 자기 레벨까지 따라올 수 있는 방법을 내게 알려준다. 행여나 서툴러 버벅거려도 절대 열 내지 않는다. 그 놀랄만한 차분함을 곁에서 느끼며, 나는 보호자로서의 태도를 거꾸로 아이에게 배운다.
아이는 이미 내 삶으로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 존재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내 아이가 그저 함께만 있어도 행복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주인공 구씨의 대사처럼, 하루 5분이라도 그 사실을 깨우치며 설레고자 한다. 물론 게임만 오래하면 지장이 있겠지만, 그 설렘을 위해 가끔씩 아이와 함께 메타버스를 거니는 것도 나쁜 선택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책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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