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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Jul 06. 2016

9년 전 방글라데시를 떠올리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조금 더 공감하는 세상을 기다리며 

2007년 이맘때쯤, 직장인이 되어 처음 여름휴가를 떠났다. 첫 휴가 때 뭐할 계획이냐고 묻는 팀 선배들에게 별생각 없이 방글라데시에 가볼 생각이라고 답했는데, 살짝 황당해하던 그분들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변한 가이드북조차 구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여서, 론리플래닛 영문판 한 권 사가지고 수도 다카를 찾았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붐을 일으켰던 그라민 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가 노벨 평화상을 탄 직후였다. 소액대출은행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라민이 휴대전화 사업도 하고 있다는 리포트를 우연히 읽고 나선 흥미가 생겨 직접 가서 분위기를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약간은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물론(그리고 당연히) 유누스를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감사하게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방글라데시 친구와 함께 다카 대학과 박물관, 언론사, NGO, 상점 등등 곳곳을 다니면서 곁눈질로나마 다카 사람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길 수 있었다.  


채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땅에 사는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소통할 기회를 갖게 되니 그다음부터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조금이나마 더 마음이 쓰였다. 구체적인 공간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뉴스가 텍스트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보니 더 크게 감정이입이 일어난다. 다카를 다녀온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MBA 첫 학기에 기업윤리 관련 수업을 들을 때에도,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사고 사례는 (기업의 윤리적 행동양식을 다룰 때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엔론 사례보다도 더욱더 피부에 와 닿았다.


돌이켜보면 2013년 케냐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테러 때도, 지난해 말 말리 호텔 테러 때도,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는 동시에 테러가 일어나기 전 내가 그 공간을 방문하고 있었을 때의 광경이 겹쳐지면서 머리가 아득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번에 끔찍한 테러가 발생한 ‘홀리 아티잔 베이커리’ 역시 방문한 적은 없지만, 십여 년 전 머물렀던 곳에서 고작 2km 남짓 떨어진 곳이다. 그저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된 스무 명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는 한편, 다시금 마음이 복잡해짐을 느낀다.


오랜만에 안부 차 연락한 방글라데시 친구는 ‘종교보다 휴머니티, 인간에 대한 예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십분 동감한다.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불행한 사건들에 대해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이 한 인간으로서 아픔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이웃으로서 고통을 나누는데 보통 사람들이 자그마한 힘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다 같이 더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결국 사람이 저지른 일, 사람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가야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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