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있는 댓글을 보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댓글이 다 누나들이네?"
그리고는 [누나]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내 삶에는 누나가 둘 있었는데,
그 둘을 각 한 편씩 쓴다.
상대하기에는 깜이 안 되는 어린애였다.
어린 시절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전해 들은 바로는 내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물렸다고 하니 어찌 보면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틈바구니에서 보조 양육자 이상의 역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이로 7살, 학년으로 8학년 차이나는 누나가 있었다.
양육에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모성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누나와 나 사이에는 경계가 있었다.
그 서로의 경계선 안쪽에 발을 들여놓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아마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서야 누나가 상대를 해 줬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어린 시절,
누나는 내가 '볼펜'을 '돌펜'으로 발음한다고 놀렸고 내가 물을 마시면 물이 더러워진다며 -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고 서러웠는데 애를 키워보니까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 - 절대 같은 컵을 사용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형이 잘만 놀아주던데, 8학년이나 차이나는 누나는 나와 놀아주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외동 아닌 외동으로 자랐다.
누나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대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밤늦게 귀가하는 누나를 가끔씩 보며, 이제는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같은 집에 사는 사람' 정도로 느껴질 때쯤,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언덕배기 위 남자중학교에서 굴러먹던 어리바리하고 투박하던 시절,
어느 날 내 앞에 시커먼 형들이 나타났다.
"야, 네가 000 동생이냐? 누가 괴롭히면 찾아와라"
기저귀 갈아주던 시절 이후로 단절되었던 누나와의 첫 교집합이 생겼다.
그 이후로도 짙은 화장을 하고 밤늦게 다니는 누나를 보며, 아무래도 '좀 놀았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시간들이 흘러 누나는 살사댄스를 추러 다니다 지금의 매형을 만나게 되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물리학자였던 매형은 설명할 수 없었던 과학에 끝에 다달았는지, 목사님이 되었다.
즉, 누나가 사모님이 되었다. (헐)
내가 알던 누나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잘 몰랐던 누나를 그제서야 조금 알게 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누나는 실제로 사모다운 사람이 되었고 이제는 연례행사 정도로 누나를 만날 때면 정말로 [목사 사모]인 모습을 보곤 알 수 없는 의아함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기분을 느낀다.(이제는 그 의아함이 거의 다 벗겨진 것 같다)
뭐 대학생이 된 이후에서야 상대를 해주었다고는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내 삶에서 [누나]라는 존재가 있음으로 인해서 [누나]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더 떨어지고 멀게만 느껴졌다. 말하자면, 누나가 있는데 '이게 누나냐'라는 생각 때문에 '누나'라는 개념은 '별로 내 인생과는 상관없는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라는 인식이 생겼었던 것 같다.
이제는 불혹도 넘은 누이가 같이 아이를 낳고, 같이 나이를 먹어가니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부분들도 있다.
가끔은 '그 가난하고 혼란스러웠던 시절을 나름대로 어떻게 견디며 살아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솟아올라 '물어볼까' 하다가도 워낙에 대화가 많지 않은 사이라 '에이'하곤 말아버린다.
분명 고초가 많았을 텐데, 언제 한 번 마주 앉아 어려웠던 과거를 회상하나- 싶기도 하다.
이게 내가 아는 첫 번째 누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