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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Oct 21. 2023

사실은 모순된 사람

진실해지려는 연습을 합니다.


 어느 날 교육 중, 심리 상담을 전공하신 강사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여기저기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아마도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기에 이러한 대답이 많이 나왔으리라 싶다.


그때 나의 대답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 합리적인 사람은 굉장히 별나보이 긴 했다. 좋은 사회복지사, 따뜻한 사회복지사는 고개가 끄떡여지는데, 합리적인 사회복지사는 어쩐지 두 단어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낯선 조합이다. 


우리의 대답을 다 듣고 나서 강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그 대답과는 반대의 사람이겠네요."라고 말씀하셔서 적잖이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그럼 여기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그럼 난 합리적인 사람이 아니고..?'








 합리적인 사람의 반대말은 비합리적, 비논리적, 모순적인 사람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듯했다. 특히, 사회복지사로 조직 내에서 일하며 나는 모순된 모습이 많았다. 다만, 그 모순이 타인에게 비치지 않았을 뿐이다. 



이를테면 이런 모순이었다. 내 눈엔 "저건 정말 아닌데.." 싶은 일들 앞에서 나는 매번 튀어나오는 내 분노의 감정과 울렁거리는 불편감을 먼저 억눌렀다. 도덕적이지 못한 순간에 나의 도덕성을 먼저 검열하느라 나는 늘 제때 표현하지 못했고 반동형성으로 나를 억누르고 괜찮은 척했다. 일례로 동료가 힘겨워하는 일이 나에게 떠밀려왔을 때조차 나는 제할 말을 못 했고, 내 실수에 소리 높여 다그치던 관리자의 지나친 언성에도 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타인이 겪는 억울함, 부당함에도 가만히 지켜본 순간들 역시 나의 모순이었다. 그래서 나는 은연중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그런 사람에게 조금은 현명하고 똑똑한 대답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주위엔 싫은 소리 못하고 늘 좋은 사람이고 싶은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조직 내에서도 그 편이 적응하기 쉬운 게 보편적인 분위기였다.








 결국, 나의 모순된 행동의 가장 큰 피해는 나였다. 나아가 3년 뒤 4년 뒤.. 만약 직급이 생긴다면? 극에 달한 나의 모순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은연중 나와 같은 모순을 강요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건 아마도 최악의 선배겠지..(현실에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튼, 차곡차곡 쌓여온 억눌린 무언가가 내 몸을 잠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왔을 때 다 내려놓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관리자에게 차분히 퇴사를 고했을 때 그분은 크게 당황스러워했다. 그것이 그분이 본 나의 첫 모순이겠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모순투성이로 살아온 나는 어느 면면이 진짜 나인지 나 조차도 헷갈렸다. 이제는 몇 가지 알 수 있는 진짜 나의 모습은 늘 담담하고 의연해 보이지만, 너무나 연약해서 쉽게 동요되는 사람이었다. 성가셔했던 예민함을 숨기려 아등바등했지만, 예민함이 아닌 섬세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져주지. 그리고 다시 일어서면 그만이지.' 하며 가끔씩 바닥을 칠 때 튀어 오르는 담대한 마음은 어느새 잦은 움츠림을 겪어서인지, 있던 자존감은 어디 가고 수치심으로 얼룩져있었다. 아주 오래 모른 척했던 날들. 그리고 나의 모순된 행동으로 억눌려 있던 귀중한 것들을 뒤늦게서야 발견했다. 때로 쓸모없는 것 같고 거추장스러운 진짜 나를 어느 날 그냥 받아주기로 했다.








 이제 막 나의 모순을 알아차린 나는 더 이상 모순적으로 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때로 진실이 독이라고는 하지만 나와 타인에게 진실하려고 노력한다. 친구사이도 다투는 과정 없이 친해질 수 없듯이. 혹 갈등이 있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할 땐 진실해지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진실해지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에 누군가는 내 첫인상과 분위기랑 다른 일면이라며 "그렇게 안 봤는데..."라며 그 진실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밖에 나의 진실은 종종 여러 변명거리를 낳기도 했다. 너의 말이 진실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는 말로, 말도 안 되는 핑계와 다시 나의 탓으로 돌리며. 



왜 진실은 늘 차가운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나의 진심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왜곡하거나 무례하게 보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안에서 진실과 모순의 단어를 고심해 고르고 골라 말한다. 여전히 "한번 져주지~" "이렇게 말하면 상처를 받겠지?" "분위기상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 하며 모순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 어느 땐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수많은 모순 속에서 살고 있으니, 그 안에서 진실과 대면하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겠다. 그러니 '진실로 말하기' 연습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너무 실망할 것도 없겠다. 그런 와중에도 내 진심을 투명하게 바라봐주는 이들도 곁에 있었다. 당황스러워하지 않고 담담히 나의 서툰 진실을 지지해 주며 더 진실해지기를 응원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의 진실을 끝까지 듣고 그 안에 진심의 알맹이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연습을 거듭해 모순사이에서 힘겹게 비집고 나온 서툰 나의 진실이 조금은 덜 당황스럽게, 적당한 온도로 전달되기 바랄 뿐이다. 그러나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이 글을 읽은 누군가는 모순된 나를 알게 되었고 곧 나의 모순을 잡아낼 수도 있겠다. 그럴 때 나는 나의 모순에 균열을 일으키는 짓궂은 농담과 장난을 좋아한다. 그럼 맘 놓고 조금은 부드럽게 진실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때로 그런 유연함이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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