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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Oct 21. 2023

오랫동안 미워한 그 사람은

우린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


 혹시 누군가를 오랫동안 미워해본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을 오랜 시간 미워했다는 건 어쩌면 내가 그만큼 애정했거나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해봅니다.








 저는 저와 함께 일한 상사를 오랜 시간 속으로 미워했어요. 퇴사를 하고 나서도 저에게 했던 모든 말과 행동들이 되살아나 저를 괴롭혔죠. 그 모든 것들을 그동안 참고 인내한 제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요. 평온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불현듯 억울하고 화나는 과거의 일을 떠오를 때면 또다시 피해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억울해지는 악순환이 마음속에 일어났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 저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마음에서 용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맘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결국엔 누군가를 미워하기 이전에 내 마음에 오랫동안 머물러있던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떠나보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억울함의 감정은 내가 아닌데, 너무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다 보니, 정말 억울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 거죠.



이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가수 양희은 선생님의 <그러라 그래> 에세이를 만나게 되면서였어요. 세상 명랑하고 대장부 같은 분께서 말도 못 할 억울하고 화나는 일을 참 많이도 겪으셨더라고요. 제가 겪은 억울함은 억울함 축에 끼지 못할 정도의 삶이었어요. 








 짧게 그녀의 삶을 전하자면, 그녀의 아버지는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리시더니, 그녀 나이 13살 때 불현듯 돌아가셔요. 어쩔 수 없이 이른 나이 장녀로서 경제적인 부담을 지게 되죠.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오래도록 미워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밤마다 바에서 노래 부르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 후 그녀에게 김추자 같은 가수가 될 수 있다며 자신을 처음 가수로서 알아봐 준, 레코드사 킹박을 만나죠. 하지만 그는 양희은과 매년 앨범을 냈는데도 제때 제 값을 치러주지 않아요. 되려 그녀가 암선고를 받았을 때 마지막 앨범이라며 자기 배 불렸던 악랄한 사람이었어요. 배신도 그런 배신이 없죠.



이렇듯 그녀의 험난한 초년은 정말 억울하다 못해,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었을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사망하던 나이, 39살이 되어서야 39살 남자가 여전히 철없음을 이해하고 아버지를 비로소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해요. 어린 날 아버지가 사랑으로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하며.. 더욱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죠. 그리고 그녀와의 질긴 인연, 자신을 이용해 먹은 레코드사 대표 킹박도 이상하게 그리 밉지만은 않았다고 해요. 귀여웠다고 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녀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처음으로 자신을 가수로서 알아봐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때조차 곁에 있어준 건 양희은 선생님이었어요. 그에 대한 조금의 연민도 없었다면, 그의 곁에 있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 속에서 그녀의 삶을 조망하며 그제야 내가 느끼는 억울함, 미움의 감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시간이 흘러 조금은 그 감정에서 멀어지기도 했고요. 가만히 그 미움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미워하는 일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쓰이더라고요? 미움은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쓰게 하는데 왜 자꾸 미워할까요? 게다가 긍정적인 에너지도 아니잖아요. 나를 갉아먹는 에너지인데 말이죠. 



그건 어쩌면 상대에 대한 애정 또는 고마웠던 감정이 일부분 남아 있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기억들이 뜨문뜨문 생각났기에 상대적으로 나를 괴롭게 한 일로부터 더욱 크게 미움의 감정이 느껴졌다고요. 그저 악랄한 사람이었다면 오랜 시간 내 마음에 두며 미워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무엇보다 미워하는 마음에서 멀어질 수 있었던 건, 나를 먼저 돌보고 연민하는 것이 첫 번째 인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미워하는 나는 참 연약한 사람이구나. 그저 그렇게 부정적인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나를 먼저 돌봄으로써 타인도 연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도 별수 없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구나. 연약한 존재구나 하면서요.








 결국 우린 모두 완벽하지 않은 아주 작은 존재인 것 같아요.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때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이런 우리를 연민할 수 있다면, 완벽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은 귀여운 우리이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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