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지 21
“어머, 가지도 열렸어요!”
지나가던 두셋의 여인들이 자기들끼리 놀라며 말했다. 마치 그들의 밭이기도 한 듯 반가운 목소리였다.
“저희가 여기 지나다니면서 매일 이 밭을 구경했거든요. 이거 누가 가꾸나 궁금하고 그랬어요. 상추도 너무 이쁘고 가지랑 고추 여러 가지도 심었다, 이러면서요.”
그녀들이 텃밭 구경을 마치고 돌아간 후 무성한 가지잎을 제치고 줄기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세상에나. 보라색 가지가 몇 개 열려 있었다. 텃밭 주인인 나도 몰랐던 걸 매일 지나다니며 텃밭을 들여다본 그녀들의 다정한 눈길에 먼저 보였나 싶어서 고맙기도, 또 한편 나의 텃밭에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아는 게 별로 없는 초보라 그래. 절대 애정이 없어서 너희가 안보인 건 아니야!’
속으로 웃으며 반짝반짝 윤이 나기 시작하는 앙증맞은 가지를 들여다봤다. 손가락 한마디쯤 되는 것도 있었고, 가장 큰 것은 얼추 한 뼘 넘는 길이로 자란 것도 있었다. 커다란 이파리 사이에서 이만큼 자라도록 이걸 여태 몰랐다니. 이제야 왜 사람들이 가지의 큰 잎을 따주어야 한다고 했는지 이해되었다. 그늘을 만드는 가지의 큰 잎 몇 장을 따주고 나니 가지 열매에 햇볕이 닿아 한층 더 반짝반짝하게 윤이 났다.
나의 텃밭이 인도 바로 옆에 있긴 하지만 단정하게 가꾼 것도 아니고 두서없이 심어놔서 민망했었다. 누가 나의 텃밭에 눈길을 주려나 했는데, 물을 주고 있으면 의외로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받는다.
“누가 키우나 궁금했어요.”
“저 상추 빨리 따야 할 텐데 싶었어요.”
“잡초를 왜 안 뽑나 했지요.”
지나가며 내게 건네는 한두 마디 인사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텃밭들을 들여다보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오며 가며 텃밭에 눈길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의 텃밭이 새롭게 보였다. 신기한 것은 누군가 관심을 두고 들여다본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저 예쁘기만 하던 텃밭에 이런저런 아쉬움이 보이는 것이다.
‘줄을 맞춰 단정하게 심어둘걸.’
‘이왕이면 작물이 자랐을 때의 키를 생각해서 간격도 벌려놓으면 좋았을 텐데.’
그뿐만 아니다. 오후에 물을 주러 나갔을 때 한낮 햇살에 축 처진 이파리들을 보면, ‘저런, 비실비실한 모습을 보였군’ 싶은 마음에 매일 텃밭에 물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게 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만을 산다면 그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일 것이다. 자기 인생에 막상 나는 없고, 남이 나를 어찌 볼까만 걱정하는 삶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무인도에 사는 것이 아니고, 산속의 자연인이 아니므로, 결국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사는 일도 피곤하지만, 마찬가지로 그것에서 자유롭기도 쉽지 않다. 역시 모든 일에는 알맞은 비율이 필요하다.
두서없이 이것저것 심어둔데다가, 다 자란 이후의 키나 덩치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던 초보 텃밭 지기가 가꾸는 텃밭은 딸아이 표현을 빌리면 ‘정글’이다. 가지가 그렇게 크게 자랄 줄 모르고 고추, 깻잎과 너무 간격 없이 심어놓아 그들은 한데 엉켜 자라나고 있는 꼴이다. 반면 상추와 함께 심은 쪽파와 부추는 제대로 자라지 않아 휑한 상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 휑함을 감춰보고자 그사이에 심은 열무는 제멋대로 들쑥날쑥하다. 이처럼 전체적인 그림은 두서없는 푸르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들 내 텃밭에 예쁜 말을 해주고 돌아선다.
“잘 가꾸었네요.”
“상추가 너무 예뻐요.”
어느 누구 하나도 ‘왜 이렇게 두서없이 막 섞어서 심었어요’ 라거나, ‘잘못 키웠네요’라는 흉을 집어내지 않았다. 보기 좋은 밭으로 가꾸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에 으쓱하고 힘이 나는 초보 텃밭 지기가 바로 나란 사람이다.
그러니 삶도 그렇지 않겠는가. 나도 예쁜 말을 많이 해주는 사람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