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Jun 11. 2024

배려를 나누는 삶

                             

“목사님이 뭔가 카톡으로 보내셨는데 이게 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침 일찍 다급하게 w님이 전화를 하셨다. 오전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 이른 아침이랄 것까지야 없지만, 침대에서 빠져나온 원초적인 차림 그대로여서 조금 당황했다. 나는 보통 아침 6시쯤 기상해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성경 필사를 하고, 묵주기도까지 마치고 나선 느긋한 맘으로 노트북 앞에 앉는다. 마침 그날은 글쓰기 모임이 있어 노트북을 여는 대신 막 씻으려던 참이었다.     


w님은 일 년 넘게 짧은 카톡 문장 쓰기를 배우고 계시다. 에세이도 아닌, 카톡에 올리는 짧은 글을 잘 쓰고 싶다고 하시는데 처음엔 당황했었다. 알고 보니 칠십을 목전에 둔 그분은 일생 지역의 크고 작은 감투를 쓰고 활동하신 분이어서 이런저런 카톡방에 글을 올려야 할 일이 많았다. 누구에겐 아무것도 아닌 카톡에 글 올리는 일이, 또 다른 누구에겐 높은 벽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전화로도 잘 모이고, 모임도 잘 굴러갔으나 이제 문자를 지나 카톡의 시대가 되었다. 이런 흐름은 점점 그 속도도 빨라져 내일이면 또 다른 어떤 것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그뿐인가. 이렇게 속도를 따라잡기 급급한 변화들은 이미 변화를 넘어 일상이 됐다. 누구나 다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도 나이가 들면서 예전보다 새것을 익히고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더 걸리곤 하니 생각해보면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다.      


다급한 w님의 전화를 받고, 대충 세수만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저쪽에서 쟨 걸음으로 오시는 w님이 보였다. 아무리 바로 옆 단지에 사시긴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카페에서 커피까지 한잔 사 들고 뛰다시피 오고 계셨다.

w님이 내민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목사님께서 카톡으로 선물을 보내신 모양이었다. 그걸 받으려면 인수 클릭도 해야 하고, 배송지도 입력해야 하며, 메시지 카드를 확인하고, 또 그 답장까지 보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그분께는 당황스러우셨던 거다. 선 채로 그 과정을 도와드리고,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짧은 답장까지 보내고 나니 그제야 그분의 얼굴이 환해졌다. 

“선생님 없었으면 난 어쩔 뻔했어요. 너무 미안한데, 또 너무 고마워요.”

매번 수업료를 내시면서, 이렇게 어쩌다 갑자기 도움을 청하실 때는 한 번도 빈손으로 오시는 법 이 없으시면서 그분은 늘 이렇게 고맙다고 하신다.     


크고 작은 외부활동을 하시다 보면 알게 모르게 겪는 서운함에 관해서 이야기하실 때, 그리고 그것이 w님에겐 ‘나이 먹은 사람’의 서러움으로 다가온다고 하실 때면 이제 그만 두시는 것이 낫지 않나 했었다. 나이가 들면 적당한 때를 알고 물러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힘들고 스트레스받는다고 하시면서도 w님에겐 그런 감투들이 삶의 활기임을 이제 안다. 그뿐 아니라 일생 해온 일이니 자신감도 있고, 그분만의 철학도 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나이 들었으니 이제 그만’이라는 말로 접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모습도 없을 리 없다. 오래된 고무줄이 탄력이 없어지는 것처럼 오래된 마음도 처음과 같은 탄성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것이 나이가 들수록 젊을 때보다 더 노력하고, 더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w님은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내 나이 칠십에 나는 과연 그 정도의 열정과 열의를 가진 사람일 수 있을까. 못하면 두 손 들어버리는 것이 빠를진대 그녀는 배워서 따라가겠다는 마음인 거다. 모른다고 말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우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점을 나 역시 그녀에게 배운다. 그런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목사님이 그녀에게 보낸 선물은 망고 한 상자였다. 심지어 그것은 태국에서 해외 직배송으로 오는 것이었다. ‘하실 수 있겠지’라거나, ‘주변에 가족들이 도와주시겠지’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때와 장소에 맞게 입는다는 TPO는 어쩌면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도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다들 익숙해서 아무것도 아닌 카톡 선물 받기 기능이 일흔의 어르신에게는 거대한 벽일 수도 있다. 요즘 어르신들은 자식과 함께 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드려도 받질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계발하는데 게으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젊은 사람들 역시 나이 든 이의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하는 자세도 필요할 듯하다. 그건 “너는 늙지 않을 줄 아느냐”라거나, “나이가 무슨 벼슬인가”의 문제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와 배려의 문제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전의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