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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n 15. 2024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한번 다니기 시작한 미용실을 쉬이 바꾸기는 어려운 법이다. 특히 나처럼 숏컷스타일을 고수하는 사람은 보통 4주, 짧게는 3주 만에 한 번씩 커트하기로 하니 맘에 맞는 미용실을 찾았다면 그건 행운이다.      


오래 다녔던 곳의 동갑내기 미용사는 은퇴가 꿈이라고 늘 말했었다. 자립하지 못한 아들과 귀촌이 꿈인 남편을 위해 근교에 땅을 샀고, 카페와 집을 겸한 건물을 지었다. 그에 소요되는 자금은 대출로 남았으니, 실컷 책을 읽으며 오십 대를 보내고 싶었다는 그녀의 로망은 오히려 멀어졌다. 그런 사정을 언뜻 알고 있었기에 어느 날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저, 드디어 은퇴해요!”라고 전화했을 때, 이제 내 머리는 누가 잘라주나 하는 걱정은 뒷전으로 미루고 그녀의 새 인생을 응원했다.     


그 이후 몇 곳의 미용실을 전전했다. 뭘 어떻게 해도 결국 나의 문제는 나라는 걸 모르지 않을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다. 거울 속엔 넙데데한 얼굴에, 심술보도 여기저기 붙은 오십 대 아줌마가 있다. 그 어떤 신박한 솜씨로 커트를 해도 내가 십 년쯤 젊어 보인다거나, 계란형의 미인상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늘 거울 앞에선 양심이 사라진다. 그리고 매번 실망한다. 거울아! 이 아줌마는 대체 누구니?     


사실 나는 미용실이 중요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사람을 가리는 편이라는 걸 고백해야겠다. 아무리 나를 십 년 젊은 외모로 만들어 준다고 해도 불편한 사람과 매달 보고 싶지는 않다. 사람에 대한 이런 내 편식은 타고난 것이 분명해서 미용실뿐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고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굳이 고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행히 집 근처의 미용실에서 맘에 맞는 헤어디자이너를 만났다. 그녀는 첫 만남에서 꼼꼼히 내 습관이며 취향을 질문했고, 시원스러운 손놀림으로 커트를 완성했다. 거울 속의 나를 보았을 때 직감했다. 이곳이다!

그 이후 매번 그녀에겐 어디를 어떻게 잘라주세요, 할 필요가 없었다. 세 번째인가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며 평소와 같이 인사했다. 다음 달에 또 뵈어요. 그런데 그녀가 근처의 다른 지점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매교역이라면, 멀지는 않고 지하철을 타고 가도, 시내버스를 타고 가도 된다. 운동을 겸하겠다고 맘먹으면 작심하고 걸을 수도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길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곳에 있지 않다는 건 솔직히 부담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맘에 드는 미용실을 찾았다면 나는 ‘을’이 된다. 내가 가야지. 그렇게 해서 매교역 앞의 그녀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주로 금요일 미사가 끝나고 성당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갔다. 작년 무릎 골절 수술 이후 아직도 내 다리는 예전과 같지 않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다치지 않았더라도 저절로 노화로 삐거덕거릴 다리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맘먹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종종 맞닥뜨린다. 

계단보기를 호환 마마 보듯 하고 있으며, 애초에 양반은 아닌지 양반다리는 꿈꾸지 않는다. 학창 시절 백 미터 달리기를 24초에 뛰던 전력의 소유자라서가 아니라 무릎 속에 박힌 핀 때문에 뛰는 건 엄두도 못 낸다고 핑계를 대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 지하철은 타지만 아직 시내버스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정류장마다 급정거로 서고, 급출발로 다시 달리며, 사람을 내려놓기 바쁘게 부앙~ 출발해 버리는 시내버스는 여전한 공포다.     


미용실 예약 당일까지 망설이다가 시내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아주 오래된 나의 좌우명은 ‘두려움에 맞서라’이다. 크고 작은 두려움에 끊임없이 맞서며 살아온 (이라고 쓰지만 딱히 그랬던 것 같지는 않은) 내가 아니던가. 언제까지 시내버스를 멀리하겠어. 해보자!


이렇게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시내버스 정류장에 섰다. 저 멀리서 92-1번 버스가 다가왔다. 다행히 요즘 버스는 대부분 저상버스인 건 맘에 든다. 조심조심 올라타자마자 역시 버스는 기다리지 않고 급출발.      

기둥을 꼭 붙잡고 섰는데 기사님은 그 와중에 핸드폰 통화에 여념이 없었다. 비록 핸즈프리를 꼈지만, 운전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서너 통의 전화를 계속해서 받으며 내가 내릴 정류장에 버스를 세웠다. 서둘러 내려보니 인도와 차도의 경계벽 앞이었다. 앞에 버스가 두 대나 더 서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연석 위아래로 아슬아슬하게 걸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버스들은 휙휙 우리를 지나쳐 갔다. 인도로 올라선 뒤에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배차시간을 지켜야 하는 그들의 바쁜 마음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본 여행에서 경험한 시내버스를 생각하면 씁쓸했다.      


일본의 시내버스들은 정류장 맨 앞에 도착한 버스만 문을 열어 승객을 태울 수 있었다. 뒤차가 맨 앞으로 올 때까지 승객은 여유 있게 기다리면 되었다. 내릴 때도 미리 일어나 문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정류장 앞에서 버스가 멈춘 뒤에야 승객은 일어섰다. 우리의 시내버스 문화는 아직 거기까지는 먼 것일까.

이제 익숙해진 미용실의 그녀가 시원스레 커트를 해주고, 또 다음 달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길엔 지하철을 탔다. 코앞 아니라 현관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더라도 시내버스는 타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시내버스 앞에서 내 좌우명은,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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