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이 저만치 보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다가, 미용이 다 끝났다는 동물병원의 문자를 받고 나온 참이었다. 아마 나의 반려견 루비는 밖이 내다보이는 유리창 앞에서 우두커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발걸음을 재촉했다.
병원 앞 횡단보도에 서니 밖을 내다보는 녀석이 보였다. 반대편에서 길을 건너려는 나를 보지 못하고 하염없이 집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처량한 얼굴로, 마치 미어캣처럼 시선을 집 쪽으로 고정시킨 채였다.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을 때, 그제야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나를 발견하고 루비는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애타게 짖어대는 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앞발로 유리문을 박박 긁어댔다. 누가 보면 며칠 만에 상봉하는 줄 알게 분명한, 너무나도 격한 환대였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를 앞두고 있어서일까. 며칠 전부터 새벽공기가 어딘가 모르게 달라졌다. 아침에 에어컨을 켜는 시간도 덩달아 조금씩 늦춰졌다. 일부러 켜지 않은 게 아니라 그만큼 아침 더위는 견딜 만해진 것이다. 하지만 한낮 더위는 여전히 집 밖으로 나서기가 무섭다. 아직 더위가 남았으니 이제쯤 한 번 더 털을 바싹 밀어주면 남은 더위는 수월하게 넘기리라 싶어 루비의 미용을 예약한 것이 바로 오늘 날짜였다. 예년보다 더 무더운 날씨에 털을 깎으려는 강아지들의 예약이 밀려 있어 두 주나 기다렸다.
동물병원 의사는 건조한 루비의 피부와 귀 상태, 그리고 발가락 등의 상태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그 잠깐을 참지 못하고 루비는 안으라고 짖고 뛰고 난리였다. 그 모습을 본 의사가 웃었다.
“얌전하게 잘 기다렸는데, 엄마 보니까 난리가 났구나!”
역시 엄마란 그런 존재인 걸까. 내 엄마가 저 멀리서 오는 것만 봐도, 내 뒤에 서 있기만 해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팔다리에 근육이 당겨지는 느낌인 거다. 하물며 강아지도 그런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엄마가 있을 때 나는 엄마 덕에 힘이 난다는 걸 몰랐다. 엄마 덕에 겁이 없다는 것도 몰랐다. 엄마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가고서야 나는 엄마가 없어 힘이 빠지고, 시도 때도 없이 겁이 덜컥 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천둥번개가 치던 어느 날, 우르르 쾅쾅 소리에 루비가 펄쩍 뛰었던 적이 있다. 오들오들 떨며 구석으로 숨었다. 나는 루비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었다.
“엄마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엄마가 없어야 무서운 거지, 엄마가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운 거야.”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천둥번개 치던 밤을 생각한다. 엄마가 없어 무서움이 많아진 나를 생각한다.
지난주는 엄마 생신이었다. 1941년생 나의 엄마는, 2017년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해마다 엄마가 없는 엄마의 생일이면, 혼자서 엄마의 나이를 가늠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 엄마 팔순이 되었네, 올해는 어느새 팔십하고도 네 살을 더 먹었네, 하는 식이다.
떠난 시간에 머물러 있는 엄마와 달리, 나는 차곡차곡 나이를 먹는다. 어느새 오십 중반을 넘겼다.
우리 딸이 벌써 오십이라니!
엄마가 있었더라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나이 먹는 일을,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열 살쯤 훌쩍 타임워프라도 한 듯이 놀라워하면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찌개에 숟가락을 담그거나, 빨래를 개다가 말고 무심하게. 엄마가 아직 내곁에서 숨쉰다면 아무렇지않게 맞이할수 있었을 그런 무심한 순간을 상상하며 혼자 그리워한다.
목욕을 하고 온몸의 털을 밀고, 약을 바르고, 주사까지 맞았으니 반은 혼이 나간 루비를 안고 집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녀석은 여전히 덜덜 떨며 발톱을 세워 내 목덜미에 매달려 있었다.
“루비야! 엄마가 있으면 하나도 무섭지 않은 거라니까! 번개가 치고, 천둥이 쿵쾅거려도 엄마가 있으면 괜찮아.”
알아듣는지 마는지, 루비는 여전히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털을 바싹 깎아 밤톨 같아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떨림이 다소 가라앉은 루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는 참 좋겠다, 엄마가 있어서….”